영원한 안식/호스피스 일기

호스피스 일기 (63) - 위약효과

주님의 착한 종 2007. 12. 21. 14:14

위약효과(Plassebo)

 

지금까지 대부분의 환자들이 간호사나 의사가 주는 약보다도

내가 주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이건 특별한 약이에요.

어렵게 구한 거니까 드시면 금방 효과가 날 겁니다.

하면 약 효과 플러스에 신부에 대한 믿음이 약에 대한 효과 그 이상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한번은 육종암에 걸린 소녀가 밥도 잘 못 먹고 기침을 심하게 하는

바람에 초죽음이 되어 있을 때 영양제를 갈아서 준 일이 있습니다.

외제 딱지가 붙긴 했지만 보통 영양제가 다 그렇듯이 칼륨성분이

함유된 것과 비타민 성분이 들어있는 영양제인데

그것을 소화제와 섞어 갈아주면서 이런 얘기를 곁들였습니다.

 

“너 이 약은 정말 내가 아끼는 약인데 급할 때만 쓸려고 아껴둔 거다.

미국에 사는 사람한테 어렵사리 구한 건데 네가 쓸 줄은 몰랐다.

지금 기침이 심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으니까 이 약을 줄께.

이 약을 먹으면 기운도 나고 기침도 멎을 거야.

워낙 비싼 약이라 한꺼번에 주지는 못 하고

내가 매일 한 개씩 갈아 줄게. 알았지?

 

그러고 약을 먹이면 기침 뚝입니다.

아이가 생기가 돌고 물론 효과도 만점이지요.

이런 것을 플라쎄보 즉 위약효과라고 합니다.

사실 말기 암 환자들은 오랜 세월을 투병생활 하느라 항암제나 기타

약에 내성이 강해진 상태이고 이것저것 안 써본 약이 없기 때문에

큰 효과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위약효과도 물론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고비를 넘기는 데는

아주 적절합니다.

  

한번은 대장암 환자가 있었는데 마약성 진통제가 똑 떨어졌습니다.

난감했습니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엄청난 진통이 밀려올 텐데

어찌해야 좋을지 도저히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 자매는 통증이 오기 시작하면 정신을 못 차리고 마구 소리를

질러대니 체면도 없는 분이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아픈데 체면 차릴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래서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습니다.

 

다른 환자가 보조식품으로 먹다가 남은 것(키토산제품, 액체로 되어있음)

이 있었는데 이것은 냉장고에 보관하도록 되어있어서 차가왔습니다.

때는 여름이었고 해서 이 자매에게 먼저 선수를 쳤습니다.

 

“이건 정말 아플 때만 쓸려고 했는데 속에 들어가자마자 효과를 내는

좋은 약이에요. 워낙 비싸고 고가 약인데다가 한약제로 만든 약인데

함부로 쓰지는 않지만 지금 너무 아프다고 하니까 반만 드릴께요.

한번 드시면 최소한5시간은 끄떡없을 겁니다. 어때요? 드릴까요?

 

환자는 얼른 달라고 합니다.

그래도 바로 주지 않고 조금 더 뜸을 드립니다.

 

“이거 정말 아껴먹어야 되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먹으면 정말

효과가 좋은 약인데 지금 꼭 드셔야겠어요?

이거는 목구멍만 넘어가도 효과가 나는 건데.

 

하고 한 번 더 약을 치면 환자는 더 애가 탑니다.

지금 아파 죽겠으니까 반만이라도 달라고 사정합니다.

그때 마지못해서 컵에 따라서 반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걸 조금씩 마시라고 하고는 반응을 보았습니다.

조금씩 마시던 환자는 냉장고에서 금방 꺼내온 터라 찬 기운이 속으로

퍼지는지

 

“와! 정말 좋네요. 통증이 가시는 것 같아요.

하며 좋아합니다. 효과가 난다는 증거였습니다.

이럴 때는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아야 합니다.

 

“효과 좋다고 아무 때나 달라고 하지 마세요. 구하기도 어려운 건데

앞으로 정말 통증이 심할 때만 달라고 하세요.

그러면 몇 시간은 끄떡없을 겁니다. 아셨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듯 다 마시고 난 환자가 신기하게 통증이

사라졌다면서 환하게 웃으며 빈 컵을 내밀었습니다.

(주님! 사기 친 것 죄송하지만 눈감아주세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컵을 싱크대에 갖다 놓으면서 나도 놀랍니다.

 

‘거참 신기하네!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상자가 남았습니다.

한참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한 마음이 듭니다.

지난 번 대장암 환자가 드시다가 돌아가셨을 때 남은 것을 버릴까 말까

하다가 다른 환자라도 주면 좋겠다 싶어 남겨둔 것이

이렇게 효자 노릇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얼른 약을 구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위약효과를 노려도 어느 정도 마약성 진통제 성분을

몸 속에 넣어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예 마약성 진통제는 주지 않고 처음부터 위약효과를

노린다고 일반 진통제를 마약인 것처럼 속여서 준다고 하는데

그래서는 절대 안 됩니다.

사기도 적당히 보아가며 쳐야 하는 것이죠.

그 후로도 이 환자는 갑자기 심한 진통이 온다거나 몸을 움직이다가

암이 퍼진 부위를 건드려 극심한 통증이 갑자기 올 때는 이 약을

찾았습니다. 물론 그때마다 효과를 보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