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해줘서 고마워
새로 지은 꽃마을로 이사를 온지 한 달이 지날 무렵
체구가 작고 예민해 보이지만 깔끔한 성격의
구강암 말기 환자가 입원을 하셨습니다.
대체로 첫인상을 보면
그 사람의 일생이 어떠했을까를 짐작할 수 있는데
아픈 가운데에서도 청결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구강암이었기 때문에 오른쪽 뺨과 입이 천공 상태가 되어
진물이 자주 흘러 내렸는데 그때마다 닦아 달라고 했고
옷에 조금이라도 묻으면 갈아입으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옆에 있는 다른 환자들에게
자신에게서 나는 냄새 때문에 혹시라도 불편을 줄까봐
배려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평생을 다른 사람에게 손해 끼치는 일없이
살아 온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계모의 슬하에서
배다른 형제들을 위해 학업도 포기한 채 돈을 벌어야 했다고 하는데,
계모는 남이 다 가는 군대까지 안 가도록 손을 써가며
가정을 위해 네가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며
돈을 벌어 올 것을 요구했다고 했습니다.
평생을 머슴처럼 일만했고 그렇게 해서 벌어다 준 돈은
모두 계모의 손에 들어가 쓰여 졌습니다.
그 와중에서 살아남아야 했기에
여유 있는 삶은 꿈도 꾸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늘 깐깐한 성격에 절약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어
그것을 자식들과 아내에게까지 요구를 하였는데
디자인을 공부하는 딸에게도 12시 넘어서 까지는 불도 켜지 말라고
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아무튼 그러한 생활환경과 스트레스들이 쌓여
결국 암에 걸렸고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집에서 투병하는 동안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워했는데
항상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물조차 넘길 수 없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이 살갗만 스쳐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팠다고 했습니다.
오죽하면 30분만이라도 앉아서 편하게 자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던 차에 성모꽃마을로 오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함께 동거 동락하던 아내와 함께 있기를 원했기에
환자 옆에서 지내도록 해 드렸는데, 부인은 신앙심 깊은 아내였습니다.
남편에게는 언제나 조용조용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고
미소를 지으며 간호하는 모습이 예뻐 보였습니다.
꽃마을에 오신 날부터 안정을 찾으시더니
다음날은 아내와 함께 꽃마을 마당을 산책하며
바깥 경치를 즐기셨습니다.
그러면서 “여기가 천국이야. 고생하면서 살아온 게
이렇게 마지막에 좋은 곳에서 보내려고 고생한 것 같다”며
시골의 전경과 맑은 공기에 흠뻑 취해 지냈습니다.
딸이 사준 중절모를 쓰고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할 때
간호사가 멋있다고 하면 활짝 웃어주며 답례를 할 정도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눈 주위가 빨갛게 부어 오르도록 울고 있는 부인을
간호사가 보았습니다.
간호사는 남편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려니 하는 측은한 마음에
다가가 등을 감싸 안고 물어 보았습니다.
“많이 힘드시죠?”
“네! 힘들기도 하지만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너무 서럽고
어디에 마음 둘 데가 없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흐르네요”
“왜 무슨 일이 있었어요?”
“ 아픈 남편을 이해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아요.
평생을 남편의 뜻대로만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에요.
조금의 여유도 없이 숨죽이며 살아 왔는데,
신앙생활의 자유도, 나만의 시간도
제대로 가져 본적이 없었어요.
돌이켜 보면 부부간의 신뢰심도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어려울 때 격려나 위로도 없이 오직 남편의 계획과 뜻대로만
살아 왔는데.... 그렇게 살다 보니 내 존재감 마저 상실한 것 같아요.“
자신의 삶이 그저 순종하는 아내로 너무도 마음 졸이고 산 것이
지금도 서럽다며 한참을 우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병으로 신음하는 남편을 보면
또 한편 마음이 아프고 저리다고도 했습니다.
아마도 강했던 남편의 병든 모습을 보면서
모든 서러움과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곧 마음을 추스리고는 남편 곁으로 돌아가
다시 미소를 머금고 손을 잡았습니다.
환자는 늘 말은 별로 없었지만
눈으로, 표정으로 무언가 예민해져 계시구나 하고 느끼기에
충분한 기운을 풍겼습니다.
어떤 날은 밝게 웃으며 인사드려도,
“오늘은 어떠세요?” 하고 여쭈어도
미풍이 일 듯 잠깐의 시선만 주고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을 지나던 봉사자에게
“저~ 자매님! 잠깐만!
내가 대꾸도 잘 안하고 표현이 적은 것을 이해해줘요.
너무 아프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어떤 것에도 마음 쓰질 못하겠어서 그래요. 이해하지요?“
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아까 자매님이 얘기 했던 그 책 제목이 뭐더라?
여기 신부님이 쓰셨다는 호스피스 책 ‘이 목 좀 따줘!’
나도 그거 읽고 싶으니 구할 수 있으면 내게도 갖다 줘요. 하며
밝게 웃기까지 하십니다.
“네 갖다 드릴테니까 꼭 한번 읽어 보세요.
남은 시간을 정리하시는데 많은 도움이 되실 거에요.
형제님 같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암선고를 받고
투병 생활하시다가 이곳에 계시면서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남은 시간들을 보내다가 가셨는지 잘 나와 있으니까
아마 도움이 되실 거에요”
“고마워요! 창 밖에 경치가 아주 좋아요 정말 그림 같아.
참! 좋은 곳이에요.” . 하고 미소도 짓고,
때로는 돌봐드리는 중에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장난을 걸기도 하고
주변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살아 온 나날 중에
제일 마음의 여유를 가졌었던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루는 사랑하는 딸들이 모두 아빠를 보러 왔습니다.
그런 딸들을 보고 행복감을 느꼈는지 손을 잡으며
“얘들아 미안해! 그리고 고맙구나! 잘 자라 주어서. ”
아내 곁에 늘 함께 있을 딸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안심이 되시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 쉬셨습니다.
“당신 나 만나서 고생 많이 했지?
옛날에 처음 만났을 때 당신 모습 참 곱고 예뻤는데....
당신에게 정말 미안해!
노후에 고생시키지 않고 살려고 했는데
그렇게 해 주질 못해서 미안해... ”
부인의 손을 잡으며 한참을 들여다 봤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결혼 후에 최초로 아내에게 바치는 사랑 고백이고
마지막 작별 인사라는 것을 본인도 알았을 것입니다.
누구나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는
진실 하고픈 욕구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 나 ! 이제 준비다 했어,
애들 다 봤고,
당신은 내 곁에 꼭 있어 어디 가지 말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탁하는 남편의 얼굴에서
이제 죽음에 대한 준비를 다 마쳤다는 것을 알게 했습니다.
아내의 눈에도 눈물과 함께 남편에 대한 사랑이 북받쳐 올라왔습니다.
그간 살아오면서 겪었던 마음 속 서러움도 봄 눈 녹듯 녹아 내렸고,
한이 될 뻔 했던 미움과 원망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로부터 좀 더 잘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으로
서로를 그렇게 이해하고 걱정하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환자는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아 갔습니다.
비록 점점 커져만 가는 암 통증과 심해지는 구강의 냄새와 진물은
환자를 마지막까지 힘들게 했지만
인상을 찡그리거나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간호사가 구강의 상처 부위를 소독하다 보면
천공이 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드레싱의 오물이 입으로
들어가는데도 인상도 찡그리지 않고 잘 참아 내셨고
소독을 하는 동안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소독이 끝나면 항상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고,
병실을 드나들 때마다 천사님 왔냐는
따뜻한 인사까지 빼놓지 않았습니다.
옛날 성격에 비추어보면 전혀 딴 사람이 된 느낌입니다.
그렇게 남을 시간을 행복한 마음으로 보내시다가
한달 열흘이 지날 무렵부터 점점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하셨습니다.
임종이 점점 가까워지자 남편은 부인에게
“함께 해줘서 고마워! 마지막까지 내 곁을 지켜줘서 고맙고....
당신한테 많은 짐을 지우고 가는 것을.. 용서하고...
하늘나라 가서라도... 꼭 기도할 게 여보 미안해...”
온 힘을 다해
부인에게 마지막으로 마음에 남겨 둔 말을 토해 냈습니다.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꼭 잡아 주던 남편은 의식이 혼미해 지더니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딸들과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부인은 그래도 남편이 마음 편히,
그리고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마지막에라도 보여주고 가서
정말 고맙다고 했습니다.
후기: 임종 전에 상태가 많이 나빠지면서 자신은 수요일 날 하늘나라
갈 거라며 종이에 글씨를 써 주었는데,
실제 임종하신 날은 월요일이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찾아 온 부인은
오늘 남편을 장례 치르고 왔는데 수요일을 가리킨 것은
임종날짜가 아니라 자신이 천국에 가는 오늘을 가리킨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문상객 중에 남편의 친구가 찾아왔는데
꿈에 남편이 찾아와 작별인사를 하고 갔다며
귀뜸을 해주었다고 했습니다.
꿈을 꾸었다는 날짜가,
남편이 임종 전에 3일정도 혼수상태에 빠진 그 시각과 비슷한 것이
아마도 보고 싶은 사람을 꿈에라도 찾아가서
작별인사를 한 것 같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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