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우는 매미
길을 지나다 예쁜 옷을 차려입은 학생들을 볼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프다.
내가 오래도록 가르친 아이들은 그렇게 예쁜 옷을 입지 못했다.
많은 아이들이 하늘과 맞닿은 산동네에서 가난하게 살았고
아침에 화장실에 가기 위해 줄을서서
본능과 힘겹게 싸워야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부잣집 아이들은 사과 한 개를 자기 혼자서 먹을 수 있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은 서너 명이 나눠 먹어야 했다.
그래서 그런 가난한 집 아이들은 정도 많고 눈물도 많았다.
하루는 한 여학생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어릴 적부터 새벽에 일어나 청소일을 하는 아버지를
동생과 함께 도와드렸는데 요즘은 다른 사람들과
눈 마주치는 게 싫어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옛날처럼 동생과 장난도 칠 수 없다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아이의 손을 꼭잡아주었다.
아이는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지친 노동에 어린 딸들이 얼마나 커다란 위안이었는지를......
그리고 사랑하는 딸의 속눈썹에 뽀얗게 내려 앉은 연탄재를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눈물로 가슴속에 쌓아 놓으셨는지를......
그래서 그 아이는 강물처럼 끝도 없이 울었을 것이다.
마음의 한쪽을 무너뜨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잃어버린 희망을 찾아가면서 끝도없는 절망에빠지기도 한다.
가수 정태춘의 노래 중에 <우리들의 죽음>이라는 노래가 있다.
슬픈 실화를 그린 이 노래를 통해 우리들은,
가난의 아픔이 사람을 어디까지 불행하게 할 수 있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었던 가난한 부부가 있었다.
그들에겐 다섯 살 된 딸과 말도 못하는 세 살 된 아들이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어린 자식들이 먹을 점심밥상과
요강을 준비해 주고 밖에서 방문을 잠그고 일을 다녀야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어린아이들이 성냥을 가지고 놀다가 방에 불에 붙어
미처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3평짜리 방에서 둘 다 질식해 숨졌다.
다섯 살 된 딸 혜영은 방에 엎드린 채 그리고 아직 말을 못하는
세 살 된 아들 영철은 옷더미 속에 코를 묻은 채 줄음을 맞이했다.
이 가슴 아픈 이야기에 '깨어 있는 소리꾼' 정태춘은
우리 사회에 고인 눈물로 슬픔을 찍어 노랫말을 붙였다.
여기에 그 노랫말을 적은 것은,
단지 가없은 죽음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상처 난 우리의 몸뚱어리를 마땅히 우리가 바라보자는 것이다.
엄마 마빠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 게 없었네
낮엔 테레비도 안하고 우린 켤줄도 몰라 잠이 들다 깨다,
인지도 모르게 성냥 불 장난을 했었어 배가 고프기도 전에
밥은 다 먹어치우고 오줌이 안마려운데도 요강으로 우린
그런 걱밖엔 또 할 게 없었내, 동생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성냥불은 그만 내 옷에 옮겨 붙고, 내 눈썹,내 머리카락도 태우고
여기저기 옮겨 붙고 훨훨 타올라 우리 놀란 가슴,
두 눈에도 훨훨 엄마 아빠! 우리가 그렇게 놀랐을 때
엄마 아빠가 우리와 함께 거기 있었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마 여기 불에 그을린 몸뚱이를 두고 떠나가지만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리 다시
하늘 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하늘도 쩡쩡 얼어붙은 이른 새벽,
소처럼 하얀 입김을 내뿜는 청소부 아버지의 힘겨운 수레..
거기에 매달려 백합처럼 미소직던 어린 소녀..
그 소녀가 어느 날부터인가 남들의 시선이 부끄러워 고개 들지 못하고 있네요.
하느님, 그 아이의 가녀린 어깨 위에
당신의 고운사랑 달빛처럼 곱게, 아주 곱게 내려 주소서.
정태춘,우리들의 죽음
출처 : 가톨릭 인터넷
'하늘을 향한 마음 > 마음을 열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우체국앞에서 / 윤도현 (0) | 2007.10.30 |
---|---|
참새와 허수아비 - 조정희 (0) | 2007.10.30 |
물소리 바람소리 - 법정스님 (0) | 2007.10.30 |
가을男子, 그리고 때론 孤獨한 가을女子 (0) | 2007.10.29 |
외딴 마을의 빈 집이 되고 싶다 / 이해인수녀님 (0) | 2007.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