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人이 미움 받는 7가지 이유 나라이고, 또한 1992년도의 韓中 외교관계 수립 이후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서 보여준 고구려사 왜곡, 빈번한 내정 간섭적인 무례한 언사는 과연 中國이란 어떠한 나라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국민성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국가규모로 확대 되어 자국중심주의가 된다. "中國"이라는 이름이 바로 그 결정적 증거이다. 객관적으로 봐서 이 둥근 지구에 중심이 되는 지점이 있을 리가 없다. 천하(세계)의 중심을 의미하는 "中國"은 지리상의 중심점이 아니라 정신적인 중심을 가리킨다. 간단하게 말하면 자신이 세계의 중심, 문화의 중심이라는 강한 망상인 것이다. 이 정신적인 중심의식으로부터 나온 것이 중화문명 지상주의이다. 있다고 하는 동심원적인 관념이 중화사상의 기본적 정신적 구조이다. 중국인은 고대부터 주변국을 경시해왔다. 이 관점은 그들의 문화가 다른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그 증거로 중국인 이외는 모두 짐승으로 여기어 주변 민족 이름엔 짐승 獸자나 벌레 ?자를 넣어서 불렀다. 당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지식인 한유는 저서에서 夷狄를 반인반수로 말하고 있으며 짐승보다는 조금 진화된 존재로 평하였다. 그 굴욕적인 三脆九叩의 예를 강요 당 하는 것이다. 아편전쟁종결후인 1842년 외국인을 夷狄로 여기는 청국에 대하여 영국은 남경조약 제17조에서 일부러 영국을 "英夷"라 부르지 말 것이라는 조항을 넣었다. 그러나 청나라가 그것을 지키지 않자 천진조약 체결 시 다시 문서화 하였다. 통상특사로 북경에 파견된 매커토니는 거꾸로 중국인을 반야만인이라 불렀다. 영국의 홍콩총독 데비스는 중국문명을 반 문명으로 칭하였고 아시아의 야만인으로 부르며 경멸하였다. 이 정도가 되면 영국인과 중국인의 에고이즘 경쟁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사람에겐 보편적인 것이 된다.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생각은 다음, 다음의 다음 정도로 애초에 고려사항이 아니다. 정치의 흐름을 보아도 1950년도에는 소련과 밀월관계를 맺고 있었음에도 60년대에 들어서는 소련수정주의의 반대, 소련사회주의타도의 슬로건을 제창하여 돌변하였다. 그리고 60년대 미일안보 및 미 제국주의 반대를 내걸고 구 일본의 사회당 및 공산당과 공동성명까지 발표해놓고 70년대에 들자 어느 날 갑자기 미일 안보찬성, 반소친미로 급변하였다. 예를 들면 옛 서독과 덴마크에서 티벳의 인권침해문제를 논의하는 의회에 압력을 넣어 그것을 결의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였다. 또 강택민 주석은 스위스에서 데모행렬을 조우했을 때 환영으로 나온 스위스 국가원수에 대해 자국관리도 못하냐는 무례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미국에 대해서도 같은 식으로 간섭을 한다. 신청했을 때 미상하원은 이씨의 방미를 찬성하는 결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 결의에 대하여 잘못된 결의라고 반성을 촉구하였다. 일당 독재, 전체주의국가인 중국과는 달리 미국의 건국이념은 민주주의이다. 의회는 민의를 대변하고 어떤 결의사항도 민의를 반영한다. 대통령조차도 무시할 수 없는 미국의회 결정에 대한 반성요구는 중화사상의 노골적 표현 인 것이다. 중화사상의 뼈대이다. 나는 대만에서 자라면서 어릴 때에는 근대 중국이 빈곤했던 것은 열강의 침략과 청조의 부패, 군벌들의 내전에 원인이 있었다 고 배웠다. 중공에서는 그것이 모두다 국민당정부의 책임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문화혁명이 끝나자 동란의 10년의 책임은 전부 4인조의 몫이 되고 모택동의 잘못엔 전혀 언급이 없이 그와 같은 대혼란의 책임을 전부 4명의 정치지도자에 전가시켰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중국인의 파렴치한 무책임의식의 표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신매매, 사기 등 6해, 7해 등으로 불리는 흉악범죄가 횡행하게 되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이런 무질서는 중국의 본래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는 국민성의 부활인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정신오염이라고 칭하여, 사회주의 신문명을 창조하라고 당 대회 등에서는 결의하고 있다. 서구열강 탓이 되었다. 근대 중국은 몰락은 아편전쟁 이후 모두 열강의 침략 의 결과로 귀속되어, 중국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는 일이 없다. 이런 책임전가는 중국문명의 우월성에 대한 고착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자기 처뿐만 아니라 자기 자식이나 형제조차도 믿지 못할 정도이다. 모택동의 극좌정책 시대에는 부모보다 주석님에게 친근감을 더 느낀다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이다. 당시는 가족조차도 계급의 적으로 간주되어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는 일도 빈번하였다. 劉少奇, 林彪등은 정적이 아니라 자기 자식에게 밀고 당해 한 사람은 옥사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도망가는 도중에 죽었다. 둘이 같이 들여다보면 상대방이 우물 안으로 빠뜨릴 수 있으므로 조심 하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런 인간불신사회에서는 살아남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병법이 횡행하게 되었다. 손자는 “전쟁은 사기이다”고 해석하였다. 중국인 기질의 최대 특색은 이 사기에 있다. 중국인은 사기의 국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남에게 속지 말라고 교육하며 항상 그것을 상기시킨다. 도난은 별도로, 약, 담배, 술, 식품 등 잘못하면 사람의 생명에도 지장이 있는 물건들의 불량복제품들이 넘쳐나며 중국정부는 打假運動이라하여 이에 대해 대대적 단속을 하지만 효과는 거의 없다. 이런 거짓이 판을 치는 인간불신의 사회에서 중국인은 위에서부터 밑에까지 서로 속이고 있다. 정부는 매스컴을 통하여 국민을 속이고 민중은 온갖 거짓말로 국가예산을 타낸다. 중국사회에서 사기꾼들이 판을 치고 가짜가 범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외국인 범죄의 반수 이상이 중국인에 의한 것이다. 어떤 자위대 대원은 일본 경찰서에 수용된 중국인에 제공하는 식사비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금액이 라고 지적하였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대도시가 중국인 밀입국자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시베리아에서도 중국인 밀입국자는 연간 50만 명에 이른다는 믿기지 않는 통계도 있다. 대만에서의 생활환경의 변화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대만에서는 2차 대전 이전에는 열쇠를 잠그지 않고 외출하여도 물건이 도둑맞는 일이 없었다. 일본인이 물러가고 대륙으로부터 200만 명의 중국인이 유입되자 대만은 금새 도둑놈의 나라가 되었다. 도둑이 많기 때문에 초고층빌딩의 최상층도 자물쇠를 굳게 잠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대만에서는 중국본토인을 보면 도둑이라 생각하라고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치게 되었다. 강도를 만나 전원 선실이 갇혀서 폭도들에 의해 태워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대만에서는 아주 유명한 사건이다. 이 때 중국정부는 이 사건이 강도 살인사건임을 계속 은폐하였다. 이등휘 총통은 격노하여 중국을 도적국가라고 비난하였다. 청나라 때 영국통상대표 매카토니는 중국엔 거지와 도적만이 눈에 들어온다 고 말했다. 중화민국초기에는 도적이 없는 산과 호수는 없다고 할 정도로 그 수는 약 2000만 명, 군인보다 많았다. 당시의 상해나 만주의 공공버스에는 무장병사가 항상 두 명 동승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안전이 확보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있으며 떼 강도와의 총격전으로 순직한 경찰은 매년 2000명이 넘는다. 왜 그렇게 도둑들이 많은가? 한마디로 그것이 그들의 전통문화인 것이다. 왕조말기에는 생활수단을 잃어버린 백성이 도적 떼가 되어 그것이 역성 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티벳 문제나 대만에 대하여서도 이 강탈행위를 정당화 하여 주변국가들과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급증하는 밀입국자로 인하여 중국인 범죄가 세계에 퍼짐에 따라 옛날 백인들이 두려워했던 황화론이 '화화론'이 되어 더욱 더 혐오감정이 증폭되어질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의 우호는 약간 다르다. 중국을 상대하는 나라에 대해서 중국이 강조하는 우호처럼 희한한 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호의 해석권이 전적으로 중국 측에 있어서 중국이 정한 우호에 범주에 얌전하게 들게 되어 있다. 따라서 우호를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면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것은 역사를 돌아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중국과의 우호는 그들이 정한 독선적 가치관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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