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중국과 친해지기

중국기차 여행에 대하여

주님의 착한 종 2007. 10. 8. 11:34

중국기차 여행에 대하여

 

중국에서 제일 편리한 교통수단은 기차다.

철도망이 일찍부터 잘 갖추어진 것은 물론 정시성이 잘 지켜지며,

여행의 정취를 더해주는데도 기차만한 것이 없다.

세계적인 기행문학작가인 폴 써로우도 열차로 중국을 일주하고 나서

그의 눈에 비친 중국의 인상을 담은 여행기를 저술한바 있다.

 

중국에서 기차여행을 무난히 해낼 수 있으면 이미 반 중국인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표를 사기부터가 쉽지 않은 것은 물론, 장거리여행 때

이용하게 되는 침대열차는 나름대로 규칙과 방법이 있어서 중국여행을

하려는 사람은 이 '열차문화'를 잘 숙지할 필요가 있다.

중국어로 치처(汽車)는 자동차의 뜻이요, 기차는 훠처(火車)라고 한다.

속도에 따라 터콰이(特快), 즈콰이(直快), 푸콰이(普快)로 등급이 구분되고

침대칸은 루안워(軟臥)와 잉워(硬臥),

좌석칸은 루안쭤(軟座)와 잉쭤(硬座)가 있다.

루안쭤는 잉쭤에 비해 좌석이 크고 시트가 씌워져 있어 쾌적한 편이다.

장거리 여행은 당연히 침대칸을 이용하는 것이 편안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학생들이나 서민들은 먼 거리 여행도 값싼 잉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장시간 앉은 채 고생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이

민망스럽기 짝이 없다.

루안워와 잉워는 다같이 침대칸으로 누울 수가 있지만

잉워는 객차 한 칸이 방 구분 없이 사이드의 통로를 빼고는 모두 3

침대로 채워진다.

루안워는 침대시트(그리 깨끗한 편은 아니다)가 있고 마주보는 2층 침대

한 쌍씩 그러니까 4개의 침대가 방 한 칸으로 격리되어 진다.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없으면 장거리 여행의 경우 외국인들은

일반적으로 터콰이 루안워에 탑승하게 된다.

루안워 객실은 여행길에 중국인과 담화하고 펑요(朋友)로 사귀기에도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만약 일행이 네 명이어서 이 루안워 객실 한 칸을

다 차지한다면 참으로 편안하고 쾌적한 여행을 즐길 수 있으리라.

침대열차에 탑승하면 일단 승무원이 와서 열차표를 번호표로 바꾸어준다.

승하차역을 확인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다.

한밤중에 취침중에도 내릴 역에 도착할 때쯤이면 승무원이 깨워주고

하차준비를 요청한다. 그리고 번호표는 다시 원래 표로 교환한다.

루안워든 잉워든 침대는 아래칸(下鋪 샤푸)이 선호되는데 고속주행시

수면 중에도 흔들림이 적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화장실에 다니거나 열차 내에서 지내기도 오르내리는

불편이 없기 때문에 매우 편리하다. 당연히 표값도 소액이지만 비싸다.

그러나 모두 샤푸을 원하기 때문에 노인이나 어린이 동반 부녀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지고 복수발권의 경우에 한 장씩 끼워주는 식이다.

 

그러나 샤푸는 사람들의 내왕도 많고, 낮시간 동안 윗 침대 사람들이

내려와 앉아있는 등 번잡스러워 도리어 조용하게 쉬려는 사람들에게는

윗침대가 나을 수도 있다.

열차 내에서 최고 책임자는 열차장인데 여행중의 불편사항이나 건의는

승무원이나 이 열차장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

특히 침대표를 구하기 어려운 열차의 경우 일단 잉쭤 등의 좌석표를

구입해 일단 탑승한 다음, 열차장에게 이야기하여 침대칸으로 옮기는

방법을 취할 수 있다.( 이것은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외국인임을

알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대부분 배려한다 ) 없다던 침대칸 자리가 사실

타보면 여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여러번 시도하여 거의 실패한 적이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열차가 출발 역을 떠난 지 약 한 시간이 지나 차내가

정돈되고 승무원들이 한숨 돌리고 나면 남은 침대 칸을 판매하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때 지정하는 객차로 가 차액비용과 수수료를 지불하면

좌석표를 침대표로 바꿔준다.

명절이나 여름 휴가시즌과 같이 승객이 넘쳐나는 때에는 이 차내 '반짝'

판매도 경쟁이 심하므로 동작이 빠르지 않으면 밤새 앉은 채 고통스런

여행을 해야 한다.

중국에서 기차표 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역에 나가 줄을 서서 표를 사기란 시간도 오래 걸릴 뿐 아니라 무질서한

줄서기와 암표상들의 사재기 등으로 머리 아픈 일이 된다.

북경이나 대도시의 경우 외국인 전용창구를 개설하고 있는 곳도 있지만,

출발일 사흘 전부터 만 판매하기 때문에 때를 놓치면 금방 원하는

날짜의 기차표가 동이 나버린다.

역에서 구입하는 암표는 간혹 가짜도 있으므로 외국인들은 호텔이나

여행사를 통해 표를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역까지의 왕복 택시요금 정도의 수수료를 받는다.

열차에는 스낵이나 도시락, 잡지신문을 파는 판매원이나 카트가 수시로

왕복하고 식당차도 있지만 위생면이나 맛이 크게 환영 받지 못하는

편이어서 대부분 먹을 것을 지니고 탑승한다.

아니면 수시로 정차하는 역에서 식품이나 과일을 사서 먹기도 한다.

물론 세면실과 화장실도 있다.

또한 치안을 담당하는 승무경찰도 탑승한다.

몇 년 전 열차 내 수하물의 인화물질에 의한 대형 폭발사고가 있어서

많은 인명손상을 입은바 있다. 이 사건 이후 중국 철도국은 비교적

탑승객의 화물검사가 엄격한 편이다.

동북지역에서 우리 보따리 상들이 위험품으로 분류되는 다량의 라이터를

박스포장으로 지니고 열차를 탑승했다가 중도역에서 하차 당하고 지역

철도공안의 조사를 받은 일이 있었다.

또 중국에서는 마약이나 도박과 같은 봉건시대의 폐습에 대해서는

과민할 정도로 단속을 하는 편이어서, 열차에서 가볍게 푼돈 놓고

고스톱이나 '섰다'를 즐기던 한국승객들이 승무경찰에게 적발되어 벌금을

무는 일이 가끔 있다. 중국 승객들도 포카 카드놀이를 즐기는 편이지만

절대 돈을 놓고 하지는 않는다.

중국에서 10시간의 기차여행은 별난 일이 아니다.

한국에 온 중국인 교수 한 분이 기차로 부산여행을 간다니 학생들이

기차는 4시간 넘게 걸려 매우 힘드니 항공편을 이용하라고 권하는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웃었다고 한다.

필자에게도 사실 서울-부산의 기차나 버스여행은 힘든 일이었지만,

중국과 인연을 맺고부터는 이상하게도 몇 시간의 국내여행길은 아주

가볍게 느껴지고 있다. 역시 사람은 환경에 길들여지기 나름인 것 같다.

한번은 산동성 청도에서 사천성 청뚜까지 56시간의 기차여행을 한 적이

있다. 매주 두 편 있는 항공편을 날짜가 맞지 않아 포기하고 기차를 타게

된 것이다.

간선이 아니다 보니 터콰이는 없고 즈콰이가 운행하는데 여행사

이야기가 아침에 출발해 저녁에 도착한다기에 그래도 익일 저녁이면

다음 항공편보다는 먼저 도착하리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탑승 후 확인해보니 익일 저녁이 아니라 사흘째 저녁

도착이었던 것이다. 지방도시간 연결노선이다 보니 아마 중앙 철도국에서

병목현상을 보이는 쩡조우(鄭州)와 시안(西安)을 거치지 않는 우회

노선으로 배정한 것 같았다.

 

산동에서 하남, 섬서를 거쳐 사천으로 들어가면 도저히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없는 열차가 산동에서 강소, 안휘, 하남, 호북, 섬서

남부를 크게 우회하여 사천으로 들어가다 보니 무려 56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더구나 즈콰이라 정차역이 많고, 터콰이 만나면 비켜주고...

다시는 찾기 어려운 안휘, 호북의 수많은 시골역들을 거쳤다.

56시간 끔찍한 여행의 동반은 청도 큰 요식업소의 두 요리사였다.

사천성으로 출장길이라고 했다. 산동 사투리가 물씬했지만 대개의 경우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인생에서 누구와 먹는 문제에 관해 그렇게 장시간, 깊이 있고 다양하게

토론을 나눈 것은 아마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리라.

루안워라 객실에 또 하나의 침대가 있었지만 내내 단타 승객이어서

우리의 고아(!)한 담론에는 끼지 못하였다. 대화 속에서 풍성하고 훌륭한

식탁을 차리곤 했지만, 현실세계에서 그들과 번갈아 가며 산 식당차의

식사는 정말 형편없었다.

지금도 필자는 청도에 가면 든든한 두 명의 요리사 친구가 있다.

침대차를 타다 보면 가까운 침대에 남모르는 이성이 탑승하는 경우가

많다. 묘령의 여인이라도 접하게 되면 괜히 긴장하기도 한다.

또 중국 아주머니들은 그 대담함이 한국 아주머니 저리 가라다.

일단 탑승하면 먼저 체육복이나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데, 남자가 보건

말건 내의가 내비치건 말건 상관치 않는다.

그런데 쓸데없이 신경 쓰고 긴장하는 건 외국인들만의 일인 것 같다.

중국인들은 이런 일에 그저 태연할 뿐이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침대칸을 남녀로 나눌 수도 없고 말이다.

최근 중국의 기차는 그 서비스 향상과 함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추세다. 황금 철도관광 노선인 북경-우루무치는 한때 터콰이로 72시간이

걸리는 중국 최장 철로구간의 하나였지만 지금은 대략 48시간이면

주파한다고 한다.

철도국은 향후 주요간선의 주행속도를 최고 160km까지 끌어올릴 계획

이라고 한다. 그래서 5km 정도의 구간은 아침출발 저녁귀환,

1km 구간은 저녁출발 아침도착, 2km 구간은 출발 하루 만에 도착을

모토로 삼을 것이란다.

또 서부 대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현재 유일하게 철로운수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서장(西藏)지역까지 5년 기간을 목표로 철도부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 포탈라궁으로 유명한 서장의 수도 라싸 (拉薩)

기차를 타고 관광할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은 것이다.

 

출처 : 무역카페, 주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