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호스피스 일기

호스피스 일기 (12) -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 (3)

주님의 착한 종 2007. 9. 7. 17:19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눈에 띄게 안 좋아졌어요.

동생들을 가르치거나 놀아주는 것도 못 하게 되고 혼자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졌어요. 그런데 그런 중에서도 남을 많이 이해하려고 했어요.

 

특히 동생들이 시험을 못 보니까 많이 속상해하고

잘 볼 때는 함께 즐거워하면서 말로라도 동생을 챙겨주려고 했습니다.

자기가 더 아플 텐데도 항상 동생들 걱정을 많이 했어요.

 

“엄마! 내가 동생들을 못 챙겨줘서 미안해. 엄마가 다하려니까 힘들지?

내가 조금만 더 건강해도 도와줄 수 있을 건데......

 

하면서, 죽어가면서도 맏이 노릇을 하더라구요.

차라리 응석받이로 있다가 가면 사랑이라도 실컷 받고 가니까

가슴이 덜 아플 것 같은데 이런 아이를 보내려니 더 미칠 것 같아요.

흑흑......

 

엄마는 계속 눈물만 흘렸습니다.

하도 울어서 이제 눈물이 말랐을 것 같은데도 딸아이를 떠나 보내야

하는 엄마의 가슴엔 새로 눈물샘이 터진 것 같았습니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아마도 이 아이의 엄마는 자신의 눈물샘에 사랑하는 딸아이를 조금씩

묻어가며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루는 저에게

“신부님......무서워요......눈을 감으면......자꾸 뭔가 보여요.

“뭐가 보이는데?

“시커먼 옷을......입은 사람이 서 있어요......가라고 해도 안 가고......

무서워요.

 

“그래? 나타나더라도 무서워할 것 없어. 절대로 너한테 해코지는 못 해....

이 집에 누워 있는 사람들도 가끔씩 본대.

다음에 또 나타나면, 예수님 저 사람 안 나타나게 해주세요. 무서워요,

하고 기도해. 그러면 괜찮을 거야. 알았지?

“네.

 

사실 임종을 앞둔 많은 환자들에게서 이와 같은 얘기를 듣습니다.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기 전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한 발을 내세에 들여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어쩌면 시커먼 옷은 입은 사람은 저승사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공통적으로 기분 나쁘다, 무섭다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그리 좋은 존재는 아닌 듯싶지만 어쨌든 환자들에게 이런 현상은

죽음을 앞두고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들이기에

영적으로 위안을 주고 영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임종 전 날>

점점 상태가 안 좋아졌습니다.

의식도 혼미해지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보입니다.

간간히 몸을 뒤척이고 신음소리만 낼 뿐 이제 임종이 가까워 옴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잠깐 정신이 맑아지고 약간의 물도 받아 마시는 반조

현상을 보였습니다.

 

“엄마......조금만 참아......내가......천국 가면......기도......할게

......사랑해......

“그래. 우리 딸 착하지. 너무너무 고생 많았다. 엄마도 계속 기도할거야.

저녁 무렵부터 혼수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임종>

다음날 오전에 임종호흡을 시작하더니 오후 5시쯤

19살 작은 소녀의 가슴에서 숨이 점점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아빠, 할머니, 사랑하는 가족들이 오열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어린 소녀의 영혼은 하늘나라로 향했습니다.

 

“잘 가! 천국에서 보자.

“고생 많았다. 어린 것이 잘가그래이......

“언니......잘 가.

 

사랑하는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는 아이의 입가엔

그간의 고통이 끝났음인지 엷은 미소가 어려 있었습니다.

아마도 천사가 마중을 나와서 아이를 데려갔나 봅니다.

 

“이렇게 일찍 죽으려고 애가 애답지 않게 컸나봐요......

어떤 때는 어른이 부끄러울 정도로 생각이 깊은 아이였어요.

내 딸이긴 했지만 정말 자랑스러워요.

 

친구들이 수능시험을 치르기 5일 전에 아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도 천국에 가기 전에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학교에 들러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떠나갔을 것입니다.

 

장례를 치른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딸을 잃은 슬픔은 컸지만 한 가지 위안을 받는 일이 있었는데

지난번 꿈속에서 두 번이나 딸의 모습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인데요?

“할머니하고 손을 잡고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오는데

흰 모자에, 흰 드레스를 입고 있었어요.

그런데 엄마를 쳐다보면서 활짝 웃는데 진짜 너무너무 예뻤어요.

 

두 번째 꿈에서도 엄마를 보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데

딸이라서가 아니라 너무 예쁜 모습이..

꿈속에서도 내 딸이 천국에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하고 좋아 보였어요.

 

“그래요 제 생각에도 분명 천국에 갔습니다.

전에도 여기서 돌아가신 가족 중에 몇몇 분이 환자가 천국에 갔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꿈 얘기를 해주는 것을 보면

흰 옷에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더라고요.

따님도 천국에 갔을 겁니다.

그래도 그런 꿈이라도 꾸니 좀 견딜 만하시죠.

 

“예. 안심이 돼요. 비록 오래 살지는 못 했어도 준비를 잘 하고 갔고

또 행복한 모습으로 꿈속에서라도 보니까

어쩌면 이 힘든 세상 짧고 굵게, 순수하고 깨끗하게 살고 갔다고

생각이 되네요. 감사해요. 정말.

 

“그래요 수정이는 정말 작은 일 하나하나를 세상에서 마지막인 것처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얼마 안 남은 시간을 정말

예쁘게 살았어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요.

 

죽음을 앞둔 19살 어린 소녀는 라면국물을 한 숟갈 먹으면서도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을 먹고 있고,

열쇠고리 한 개를 갖고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지요?

 

이 아이는 화장장으로 치러졌고 딸아이의 관이 화구로 들어갈 때

부모는 다시 한번 가슴에 딸을 묻어야 했습니다.

요즘 젊은 청년들이 전에 비해 많이 죽습니다. 자살도 증가 했고요. 

자녀들에게 관심을 많이 보여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