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호스피스 일기

호스피스 일기 (10) -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 (2)

주님의 착한 종 2007. 9. 6. 14:10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에요...2

 

그런데 진짜 문제는 2차 항암치료를 받고 나서부터였어요.

치료를 받고 난 후에 의사 선생님이 보자고 하시더니

더 이상의 치료는 무의미하다고 하더군요.

너무 빠른 속도로 전이가 많이 돼서 가망이 없으니 치료해도 소용

없다. 그냥 집으로 퇴원을 하라는 거예요.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매달려도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하는 수 없이 친척 의사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어요.

아이에게 뭐라고 설명을 하긴 해야 하는데 엄마 입에서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죽을 수밖에 없다는 말은 차마 못 하겠더라고요.

친척 분이 오셔서 아이에게 설명을 잘 해주셨어요.

 

“수정아 힘들지? 

 “예! 

 

 “너에게 사실대로 말하마. 네가 지금 앓고 있는 병은 암이라는 병인데

일찍만 발견되면 별거 아니야. 그런데 너는 조금 늦게 발견이 되었어.

목 밑에 혹이 있었던 것 너도 알지? 그것을 잘라내고 항암치료를 해도

암세포들이 여기저기 떠다니면서 다른데 가서 달라붙어서 커지곤 해. 

 

지금 네 겨드랑이하고 배에도 혹 같은 게 생겼지?

그것도 암인데 하나만 있어도 치료하기가 힘이 드는데 지금 여기저기

혹이 생기니까 의사 선생님이 치료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대.

네가 잘 참아내도 또 다른데 생길 확률도 크고,

더 이상 치료는 하지 못 해도 마지막까지 아프지는 않게 할 수 있대.

수정아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러면 저 죽는 건가요?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만 못 고칠 수도 있어. 그렇다고 포기해선 안 돼.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우리 하느님께 기도하자. 

 

“흑흑......

 

아이는 조용히 흐느껴 울었습니다.

엄마도 아빠도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난 딸아이는 엄마를 바라보았습니다.

 

“알았어요, 엄마. 자꾸 몸이 안 좋아지고 암 덩어리가 여기저기서 생기는

것을 보고 짐작은 했었어요. 어차피 가망이 없다면 집에 갈래요.

집에 가서 동생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요.

 

아빠가 딸아이의 손을 잡으며, 

“그래 수정아. 지난번에 TV에서 봤는데 어떤 젊은 사람이 암에 걸렸는데

얼굴로 암이 퍼지는 바람에 고생을 많이 했나 봐.

그런데 그 부인하고 온 가족들이 함께 지내면서 간병을 해주는데

서로 위로하고 기도해주고 같이 눈물을 흘려주는 모습이 정말 보기가

좋았어."

 

"그 환자도 가족들이 함께해주니까 덜 힘들어하고 마지막까지 잘 지내는

것을 봤단다. 너도 우리 가족들이 함께 있어주면 훨씬 나을 거야.

네 말대로 집에 가자.

가서 가족들이 함께 기도하고 위로해주고 간호해줄게.

이 아빠가 항상 네 옆에 있어줄게, , 수정아.

 

“네. 알았어요. 아빠. 안 무서울 자신 있어요.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다 해주셔야 돼요? 

 

“그럼. 꼭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마.

 

딸아이는 정말로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담담하게

받아들였어요. 오히려 그렇게 잘 받아들이는 것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고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이해를 못 한 것은 아닌지, 혹시라도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지만 집에서 지내는 몇 달간의 삶을 보고서야 딸아이가 정말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딸아이는 집에 돌아와서 정말로 자신이 평소에 갖고 싶어 하던 것,

먹고 싶었던 것을 사달라고 졸랐어요.

그래 봐야 1~2천 원짜리지만요.

하지만 평상시보다 모든 것을 10배 이상으로 진하고도 충만한 삶을

살았어요. 먹는 것이라고 해봐야 별것 없지만 김칫국 한 숟갈을 먹고는

마치 세상의 맛있는 것은 혼자 다 먹은 것처럼,

“와~~무 너무 맛있다. 

 

떡볶이를 해주면

“이제껏 먹은 것보다 정~말 최고 최고예요.

 

딸아이는 말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맛을 음미하며 팔을 가슴에

모으고 감동과 행복에 젖은 표정을 지었어요.

누가 봐도 정말 세상에서 그 순간만큼은 최고로 행복한 아이였어요.

비록 토할까 봐 많이 먹을 수 없었던 것을 안타까워했지만

 

항상,

“나, 내일 또 해줘요. 알았죠?  하며

내일 또 맛있는 것을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지난번엔 쇼핑을 하고 싶다기에 나가서  T셔츠를 하나 사주었더니,

 

“우와~ ~무 이뻐요. 이렇게 예쁜 것을 가져도 돼요?

~ 너무 너무 행복해요!” 하며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지난번에 마지막으로 서울 코엑스를 데리고 갔어요.

선물용이나 작은 액세서리를 전시했는데 아마 그것이 딸아이에겐

세상에서의 마지막이자 최고의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었을 것 같아요.

 

걸을 기운이 없어서 휠체어를 타고 행사장을 돌았는데

많은 물건들이 진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너무너무 신기해했어요.

가게마다 돌면서 물건 하나하나를 관찰하는데 뭐라고 혼자 계속

중얼거리면서 좋아하는데 가끔씩 뒤돌아 보면서,

 

 “엄마! 이거 보세요. 너무 이쁘죠? 정말 멋있어요.

 

때로는,

 “엄마!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하며, 마치 세상에서 보고 싶은 것 다 보고, 갖고 싶었던 것 다 가진

아이처럼 행복한 모습으로 행사장을 돌고 나왔습니다.

나올 때 손에 든 것은 조그마한 노트와 종이가방, 캐릭터 한 장,

열쇠고리가 고작이었지만 온 세상을 다 얻은 아이 같았습니다.

 

그런 딸아이의 표정을 보면서 기쁘기도 하고 마음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평생 살면서 맛보아야 될 행복을 단 몇 달 사이에

다 누리고 가려는 것 같았어요.           

 

                                         <계속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