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2007년 6월 5일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주님의 착한 종 2007. 6. 5. 08:34

6월 5일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마르코 12,13-17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들은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충격>


예수님의 등장은 당시 유다 사회 안에서 참으로 큰 혼란을

래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기존의 사회 질서와 가치관을 완전히 뒤엎는

너무나 새로운 것들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너무도 파격적인 분, 너무도 충격적인

새로움이었기에 자신들의 고착된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고

간직해왔던 율법을 계속 파기하는 모습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분신, 목숨과도 같았던 안식일 규정을 밥먹듯이

깨트리셨습니다.


그뿐이었습니까?

예수님은 유다인들이 벌레처럼 여기고 상종조차 하지 않았던 나병환자,

창녀, 세리, 이방인들과 서슴없이 만나시고 친구가 되셨습니다.


더욱 유다인들이 못마땅했던 일은 예수님께서 틈만 나면 자신들의 아픈

곳을 끊임없이 찔러댄 것이었습니다.


"이 위선자들아! 겉은 그럴 듯 해 보이지만 너희는 마치 회칠한 무덤

같구나. 동족들에게 큰짐을 지워놓고 너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구나!"

 

예수님의 정곡을 찌르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미칠 지경이 된 유다인들은

그분이 선포하시는 말씀들을 한 마디 한 마디 귀담아들었습니다.

마음에 새기고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트집 잡아 올가미를

씌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새로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 과거 지향적이고 보수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으며, 또 안주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란 새로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 자신을

겸허하게 낮추고 비울 줄 아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늘 어제의 낡은 우리와 결별하고 늘 새로움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려는

노력, 매일 변화되고 쇄신되려는 노력, 그것만큼 신앙인에게 필요한

노력은 없습니다.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신부 ▣

                

 

                                                 

 

(마침 오늘은 인천교구 교구장이신 최 보니파시오 주교님의 영명축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