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잣대라는 것이 있어서, 우리는 그 기준을 충족시키는 사람을 일러 훌륭하다고 한다.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듣고 공부도 잘 하는 모범생이라든가, 원칙에 충실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사람들은 뭇사람들의 흠모를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끔씩 우리는 흔히 아웃사이더로 불리던 이들이 세상을 감동시키고 메마른 우리의 가슴을 적셔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천국의 열쇠>에는 바로 그런 아웃사이더인 프랜시스 치점 신부가 등장한다.
비록 소설 속 세상이긴 하지만 치점 신부가 산 1차 대전 전후에, 그는 스스로 자신이 신부가 될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가 살던 시대의 잣대가 그에게는 맞지 않았던 셈. 하지만 그의 심성을 알아본 맥냅 신부의 말처럼, 그는 결국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역시 세상과 그가 평생 몸담은 교단의 잣대로 잴 때, 그는 분명 좋은 신부가 될 수는 없었다.
"천국을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천국은 여러분의 손바닥 안에 있다……, 천국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어디에나 있다……, 무신론자라고 해서 다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옥에 가지 않은 무신론자를 한 사람 알고 있다, 지옥은 하느님의 얼굴에 침을 뱉는 자만이 가는 곳이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다. 그러나 유머감각으로 본다면 그리스도 보다는 공자가 한 수 위이다……."라고 설교하는 치점 신부는 교단의 방식이 아니라 그가 믿는 대로 하느님의 방식을 실천했고, 믿음의 불모지던 중국에서 그야말로 하느님의 권능을 실현해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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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게 정직하게 하느님을 섬기고 때로는 인간으로서 자신 내부의 모순과 싸우며, 헌신하는 삶을 살던 그를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다. 아니, 알아주기는커녕 제발 핍박하는 무리나 없었으면 좋겠다고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치점 신부의 앞에는 고난이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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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치점 신부와는 정반대로 사업가나 하면 딱이겠다 싶은, 치점 신부의 고향 친구 안셀름 밀리는 교단에서 출세가도를 달린다. 밀리가 고위직 신부가 되어, 갖은 고난 끝에 중국에서 그야말로 반석 위에 참다운 교회를 세운 치점 신부에게 돈으로 신자를 샀던 전임 신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핍박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눈에서 불이 날 지경이다. |
그래서였을까? 갖은 고난과 핍박에도 꿋꿋한 치점 신부를 보며 이순신 장군을 떠올린 것은. 예전에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으며 부당한 곤욕과 핍박에도 이순신 장군이 묵묵히 일을 완수하는 것에 우리나라로서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그 모진 고난에도 자신의 굳은 의지와 신념을 지켜낸 장군이 불가사의하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천국의 열쇠>에서 치점 신부를 만나고 나니 비로소 이순신 장군이 인간으로서 이해가 되는 느낌이 든다.
인간은 분명 나약하지만, 그 약한 인간에게서 신념을 꺾는 일은 죽임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나온 길이 앞으로의 길의 이유가 된다"는 위치우위(余秋雨)의 말처럼 신념을 지켜온 인간은 어떤 고난 앞에서도 여태껏 걸어온 그의 인생이 그러했듯, 그 남은 인생도 자신은 신념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그의 존재 이유라는 것을 치점 신부의 삶을 통해 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