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마음을 열고

미꾸라지와 꼴뚜기 그리고 망둥이

주님의 착한 종 2007. 4. 13. 10:05

 

   조선시대 태종 때, 고려 개경에 있던 시전(市廛)을 그대로 본떠 한성 종로(鐘路)를 중심으로 중앙 간선도로 좌,우에 관설상점가(官設商店街)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점포를 대여, 상업에 종사하게 하였으니 그 것을 육의전(六矣廛)이라고 합니다. 정부에서는 그들로부터 점포세, 상세(商稅)를 받는 대신 사상인(私商人), 즉 난전(亂廛)을 단속하는 금난전권(禁亂廛權)을 부여하니 이들은 막대한 부(富)를 축적하여 경제적, 사회적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고종27년(1890) 청나라와 일본 상인들의 침투로 상품 독점권을 완전히 잃고,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값싼 상품의 쇄도로 육의전은 몰락하였습니다. 고종31년(1894) 갑오개혁 이후에는 누구나 자유로운 상업행위를 제도적으로 보장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 전차가 운행되고 동대문 안에 전차 차량기지와 발전소가 생기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자 배고개(梨峴 종로5가~4가 사이)에 자연발생적으로 상설 장터가 생겼으니 이를 ’배우개 장’이라 불렀습니다. ’배고개’의 발음이 ’배오개’로 변했다가 다시 ’배우개’로 변하여 ’배우개 장’으로 불리우게 된 것입니다.

 

  지금의 동대문시장의 전신인 배우개 장은 그야말로 종합시장으로 싸전(곡물상), 면포전(포목상), 지전(종이가게), 옹기전, 유기전, 어물전 등 수 많은 상점과 생활용품을 사러 도처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대며 활기에 넘쳐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동, 서, 남해안에서 잡힌 각종 생선을 진열해 놓고 손님을 맞고 있는 어물전에 아무리 가지런히 잘 진열하려 해도 볼품없는 물건이 있었으니 "꼴뚜기’란 놈 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무데기 지어놓은 꼴뚜기를 보고 어떤 여자 손님이 "어머! 이건--, 무슨 생선이 이렇게 못생겼어요? 오징어도 아니고 별꼴이 반쪽이야~."라고 삐쭉거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속담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듯 어물전 망신을 시키는 못 생긴 꼴뚜기는 한자어로 골독(骨獨)이 우리말로 변하는 과정에서 꼴뚜기가 된 것 같습니다. 주로 젓갈을 담가 먹는 꼴뚜기는 볼품없고 가치 없다고 하여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속담 말고도 큰 사업에 실패하고 작은 장사를 시작한다는 뜻의 "어물전 털어먹고 꼴뚜기 장사한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만 못생기고 가치 없어 보이는 꼴뚜기가 있음으로써 고등어, 조기 등 다른 생선들의 상품가치를 높여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