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변한 것은 아내

주님의 착한 종 2007. 3. 16. 14:24
 

                        변한 것은 나의 아내


그냥 왔다가 가는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

왜 왔는지, 왜 가는지를 알고자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어린 시절엔 법당 안 깨끗이 니스 칠된 곳에 노란 방석을 깔고 앉아

기도 드리는 스님의 모습이 좋았고,

영화「파계」속의 수녀원 생활이 신선하게 느껴졌으며,

처음 찾았던 성당 2층에서 미사의 거양성체 광경을 보았을 때는

퍽 감동적이었다.

 

청년시절 신앙생활은 봉사활동과 함께 시작되었다.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이 예능분야라 성당 안에서 할 일은 세상일 못지

않게 많았다. 천성 때문인지 맡은 일마다 정성을 쏟아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하느님 말씀을 통한 영신적 성장보다는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교회의 봉사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보석 같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나에게 큰 축복이었다.

 

부모님이 맺어준 인연으로 결혼했다.

처음 아내는 신(神)의 존재를 부정하는 편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나 열심히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더 현실적인 삶이 아닐까요?”

하지만 7년의 세월이 흘러 아내를 포함해 장인어른 장모님,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아들까지 세례를 받았다.


몸이 약한 아내는 손에 힘이 없어서인지 그릇 등을 잘 깨뜨렸다.

한 번은 화를 내지 않는 나를 보고 왜 화를 내지 않느냐고 묻기에,

다음과 같이 그럴싸한 대답을 한 적이 있다.

 

“그릇은 생명체가 아닌데 그게 무슨 가치가 있겠소.

 또 아깝다고 생각한들 이미 깨어져 버린 것이고 ,

 그래도 당신 몸이 다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오.”

 

 “이해심이 굉장하네요.”

 

아내의 대답이 감동을 받은 듯 하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하기에

그럴싸한 대답을 이어갔다.

 

“하느님을 믿으면 사람이 너그러워지고 보는 시야도 달라지지요.”

 

그날 이후 빠른 속도로 신앙의 힘이 붙은 아내는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을 생활에 적용시키면서 뜻 있는 시간을 가지는

듯 했다.

얼마쯤 지나 아내는 취미생활이 거의 없는 나를 보고 재미없다며

결혼 전에 절친했던 친구를 만나러 미국에 갔었다.

친구와 그리운 시간을 함께 한 뒤 돌아온 아내의 이야기는 한숨  뿐이었다.

 

“친구는 변했어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친구는 온통 남편 흉보는 이야기,

 자식들 자랑하는 이야기 외에는 할 줄 아는  말이 없었어요.“

 

어른이 되어 살아가면서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우친

아내에겐 친구와의 대화가 무미건조하였고,

변한 것은 친구가 아니고 나의 아내였다.

나는 그렇게 변한 나의 아내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여보! 부부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요?”

 

“잘난 사람이 대답해 보시지요.”


약간 퉁명스러운 말투였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당신과 내가 단지 한 방에서 지낸다고 부부가 되는 것이 아니오. 

 내가 당신의 마음을,  당신이 나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부부가 되는 것이오. 

 더 완전한 부부는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꿀 수 있을 때 가능하지요.“

 

아내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럼, 당신은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어요?”

 

대단히 중요하고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목숨이 열 개라도 다 바칠 수 있지요.”


사랑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데,

사람들은 그 어려운 사랑을 쉽게 생각하고

헤어지는 일 또한 쉽게 행하고 있다.

목숨과도 기꺼이 바꾸는 사랑을 실천했을 때 비로소 부활이 가능하며

이 진리를 전하고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부활의 신앙이 우리 부부에게 진정 이해가 되었을 때

우리 부부는 아들을 성소의 길로 인도하기로 했다.

성소(聖召)란 부모님의 극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누구의 뜻인지 아들은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나는 평소 우리 나라에는 돈 있는 사람, 학식이 높은 사람, 전문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은 많으나 정신적 지도자는 그렇게 많지 않으며,

우리 나라가 수 천 년의 역사 속에서도 선진국으로 부각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훌륭한 정신적 지도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부모로서의 욕심이 있다면 나의 아들을 그 쪽으로 인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놀란 듯이 질문을 하곤 한다.

아니, 하나 뿐인 아들을 하느님께 바치다니?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나의 깨달음을 자식이 함께 깨달아 세상에

전했으면 하고 바랬다.

37년 전 깨달은 교리문답 첫 번째 내용이 내가 살아온 50년 인생의

확실한 답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났느뇨?

  사람이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세상에

  났느니라!

 

아들아! 이 진리를 온 세상에 알려다오.

살면서 가장 안타까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는 이유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세상을 한 번 살펴보자.

10대 아이들은 머리에 염색약을 입히고, 강렬한 무스로 머리카락을

치켜세우며, 여자아이들은 T셔츠와 바지의 높낮이를 잘 조화시켜

자신의 배꼽을 예쁘게 노출시키기에 정신이 없다.

 

또한 어른들은 짧은 시간에 많은 재산을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즐기기 위해 룸싸롱 앞에서, 모텔의 출입문 앞에서 오늘도 서성거리고

있다.

생각함으로써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흥청거리며 존재하는 것이

인간이란 말인가?

왜 사느냐고 물으면, 우리들은 아직도 모른다고 대답해야 할 것인가?

 

                                         이 갑우 님 - 보령제약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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