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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6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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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목포성지를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서둘러 순례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하겠습니다.
담양은 너무 맑고 깨끗하고 조용한 곳입니다.
살면서 외로울 것 같아 오히려 힘들 것 같은
그러나 쥐꼬리만한 연고라도 있다면
여생을 살고픈 그런 예향입니다.
죽녹원, 메타세콰이어 길.
담양은 병원이 필요 없는 곳이 아닐까..
마냥 천천히 천천히 걷다가
집으로 향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마태오 7,1-5 입니다.
들보가 무엇이지요?
예, 사전을 찾아보니 건물을 지을 때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바닥이나
천장에 대는 지지대를 ‘들보’라고 하는군요.
그러니까 들보는 크기도 해서
금방 눈에 뜨입니다.
하지만 작고 하찮은 티끌은 잘 보이지 않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남의 눈의 티끌’은 쉽게 찾아낸답니다.
그러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요.
어떤 사람이 ‘눈 속에 들보’가 있는 사람인가요?
예수님은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라고 하시네요.
그러시면서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 받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타인을 심판하기는 참 쉽습니다.
본인이 없는 곳에서 허물을 말하기는
정말 쉬운 일이고 게다가 재미까지 있지요.
그래서 뒷담화 라는 말이 회자되는것일까요?
순간적으로 방심하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자꾸 쉽게
실수에 빠지게 되고요.
하지만 그런 행위가 자신의 눈에
들보를 채우는 일이라고 하시는 군요.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할까?’
‘어찌하여 저런 식으로 행동할까?’
무의식 중에 이렇게 말합니다.
본인도 모르게 ‘비판의 시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꾸려면 ‘긍정의 시각’을
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렇게 말할 수도 있구나.’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는 자세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쁨을 갖고 살기를 원하셨겠지요?
그러기에 만나는 이들에게
‘당신의 힘’을 주셨을 터입니다.
병자들은 병이 나았고,
악한 기운에 붙잡힌 이들은 자유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러한 주님께서 심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남을 판단하는 자체가
‘삶의 기쁨’을 감소시키는 행동이기
때문 아닐까요?
예화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느 왕은 알고 싶어 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너무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은수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은수자는 왕을 보고도
하던 일을 계속하기만 합니다.
왕은 그가 일을 빨리 마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거들어 주었습니다.
착한 왕이군요.
그런데 숲 속에서 어느 환자가 비틀거리며 나왔습니다.
환자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사냥을 나왔다가 맹수에게 다쳤다고 했습니다.
왕은 그를 열심히 돌보아 주었습니다.
왕이니까 좋은 약도 많아서일까요?
며칠 후 환자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는데
그 환자는 목숨을 구해준 고마움에
자신이 왕의 원수 같은 정적임을 고백합니다.
왕을 살해하려 왕궁에 숨어들어갔다가
경비병들에게 발각되어 결투 끝에
깊은 상처를 입고 도망쳐왔노라..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성들여 치료를 하고
구완을 받았기 때문이었을까요.
이어서 두 사람은 화해를 하게 됩니다.
은수자와 지내면서 왕은 스스로 깨닫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이 순간,
내 앞에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그에게 착한 일을 하는 것이구나.’
톨스토이의 예화집에 나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멀리 있는 사람을 탓하지 않습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을 탓합니다.
모르는 사람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잘 아는 사람을 심판합니다.
서먹한 사람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친한 사람을 몰아붙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눈을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사랑하는 이의 허물을 덮어 주어야
사랑이 완성되는 것은 불변의 진리임이 틀림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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