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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1년10월22일)

주님의 착한 종 2021. 10. 21. 23:43

오늘의 묵상(2021년10월22일)

 

聖 김 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매일같이 매일 미사에서 소개되는

독서와 복음을 읽고 묵상하면서

왜 이리 묵상이 갈수록 힘들어지나요?

 

왜 주님의 말씀은 어제 읽을 때와

오늘 읽고 나서의 느낌이 달라질까요?

 

한 글자도 다름 없는 똑 같은

성경구절인데 말입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 12,54-59 입니다.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오늘 복음에서 들은 예수님의 질책입니다.

내일의 날씨는 예측하면서

내일의 삶’은 왜 덮어 두느냐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니 중국 같은 공산국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재물이 앞날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우리 곁에는 돈과 물질이 넘쳐 나고 있지만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현실을 풀이할 열쇠는 언제나 사랑이다.”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시네요.

 

종교인을 비롯하여 세상을 밝히고자 노력하는

많은 분들의 공통된 의견은

오늘날 많은 사람이 참사랑의

결핍을 느끼며 살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능의 탐닉에 빠지고,

또한 그것으로 메마른 영혼을

달래려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답이 아니지요.

사랑이 목마른 탓인 걸요.

그래서 갈증만 심해질 뿐입니다.

불안과 허무감이 더해집니다.

젊은이들이 스피드와 폭력과

성적 놀이에 빠지는 주된 이유라는 것입니다.

치유의 지름길은 사랑하는 삶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삶’이 정상적인 길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화해에서 시작된다고

오늘 예수님은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요 예수님.

싸운 적도 없는데 무슨 화해를 하란 말인가요?

 

화해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그렇군요.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행위’

그것이 바로 화해입니다.

먼저 웃고, 먼저 말을 걸고,

먼저 손을 내미는 행동 말입니다.

 

늘 만나는 사람에게 그렇게 해야 하며

그것이 이 시대의 뜻이라는 겁니다.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우리 중에 소송 중인 사람은 별로 없지요?

소송이라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왜 소송 중인 사람을

꼭 찍어 말씀하셨을까요?

 

예, 맞습니다.

소송 중인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재판관이신 주님께로

걸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당연히 현실에 안주하고 싶습니다.

보이는 것만 따라가면 편하거든요.

그러나 삶 속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훨씬 더 많은 것 역시 사실입니다.

 

깨달음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부분들이지요.

사랑도 깨달음입니다.

아픔 없이 어떻게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믿음의 길에는

십자가가 있다고 강조하는 것 아닐까요?

그러고 보면 사랑 역시 십자가입니다.

 

 

벌써 또 주말을 맞이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이러다가 금방 늙어버릴까 걱정이 되네요.

 

주말에는 날씨도 풀린다고 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