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구유 만드는 풍습은 왜 생겼을까?
성탄절을 앞두고 흔히 지나쳤던
모습들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대림환, 대림초, 크리스마스 트리에 이어
오늘은 마지막으로 구유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본당마다 구유를 만드느라 분주합니다.
저희 집도 딸들이 어렸을 때는
거실 한쪽에 구유를 만들어 불을 밝혀놓고
아기 예수님 탄생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성탄절 풍습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요?
오늘 공부할 내용입니다.
구유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1223년에 이탈리아의 그레치오 성당에
처음 설치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베들레헴 순례 때
예수님이 탄생한 마구간 구유를 보는 순간,
하느님의 아들이 가난한 모습으로
인간에게 오신 데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제 첫 방송을 한
세상 끝의 집을 보셨지요?
카르투시오 수사님들의
청빈한 삶의 의미가
바로 가난한 예수님의 실천이라고…
아무튼 프란치스코 성인의 구유 설치 사실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위층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아기 예수를 안는 성 프란치스코. 지오토 디 본도네 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난 유명한 중세화가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6?~1337)가
성인의 생애를 묘사한 28개 프레스코화 가운데
13번 째 작품<그림>을 통해서 입니다.
그림 속 프란치스코 성인은
무릎을 꿇고 양 팔을 벌려
아기 예수를 안고 있습니다.
그의 작은 형제들(수사)과 신자들은 물론이고
소와 염소까지 구유 옆에 앉아
이 엄숙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인들도 문가에서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를 보고 있습니다.
또 좌우 양편에서 수도복을 입은 수사 4명이
고개를 들고 목청 높여 찬미 노래를 부르고 있군요.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고
걸식으로 살아가던 탁발 수도자 프란치스코가
이처럼 구유 예절을 엄숙하게 거행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당시 유럽 사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카타리파(Cathari)라는 이단 종파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웠다고 하는데.
카타리파는 인간이 사는 현세는
악의 창조신에 의해 지배되는 곳이기에
결혼, 물질, 육식, 재산 소유 등을 배척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가 살과 피를 지닌
인간으로 태어났을 리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단지 영적 존재라는 게
이들 카타리파의 주장이었습니다.
이들은 교계제도조차 거부했습니다.
카타리는 '청정파(淸淨派)'라는 뜻이라고 해요.
문제는 이들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이
적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급진적 성향의 개혁가,
청빈과 금욕의 이상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이들을 추종했고 특히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중남부에서 혼란이 심했다고
교회 역사학자들은 전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에 대항해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성탄 구유를 생각해냈다는 것입니다.
문맹자가 많은 중세시대에
그림이나 구체적 형상은 교육적 효과가 높았겠지요.
이렇게 해서 시작된 구유는 빠르게 확산돼
오늘날 빼놓을 수 없는 지구촌 성탄절 풍습이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성 프란치스코의 구유는
이단 확산과 교회 분열을 막는 데도 기여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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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공현축일의 구유 모습 - 동방박사들의 경배)
여기에서 제 의견 하나를 말하자면…
동방박사들은 어디에서 예수님을 만났을까요?
성당의 구유는 성탄절이 지나고
주님공현축일까지 보여집니다.
공현은
‘그분의 탄생을 이방 민족들 모두에게
밝히 드러내 보이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날이 되면,
이방 민족들을 대표하는 동방박사들의 형상을
구유에 설치하는 것입니다.
세 동방박사들은 우주의 창조주를 경배하는
모든 백성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구유를 찾았을까요?
동방방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아
베들레헴으로 오다가
예루살렘에서 헤로데 왕을 만나느라 지체 됩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에 도착하는데
그 모습을 마태 2,9-11에서
다음과 같이 보여줍니다.
9ㄴ.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여기서 동방박사들은 구유가 아닌
집으로 들어가 경배한 것이지요.
제 생각으로는 예수님이 구유에서 태어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고
여관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떠나자
여관이 비었겠지요.
당연히 더 쉬어야 할 성모님을 위해
요셉 성인은 서둘러 여관으로 인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이 도착했을 때는
예수님은 구유가 아닌 집에 계셨을 것 같습니다.
그냥 제 생각입니다. ㅎㅎ
괘념치 마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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