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마음을 열고

뽀야 안녕

주님의 착한 종 2018. 3. 12. 11:02


이름 : 뽀야


견종 : 비글


나이 : 14


특기 : 많이 먹기


취미 : 먹는 것, 냄새 맡기, 비둘기 쫓아 내기


특징 : 잘 생긴 미남.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은 기억함.

         겁이 많음


큰 딸 보영 (루시아)가 대학 3년 초에  

눈도 제대로 못 뜬 강아지를 품에 안고 데리고 왔다.

아마 어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듯 하다.


아내 실비아는 기겁을 했지만

나와 작은 딸 소영(글라라)는 기쁜 마음으로 이 아기를 받아들였다.

이름은 보영이의 字를 따서 뽀야라고 지었다.


한 달간 큰 딸은 이 아기를 품에 안고

우유를 먹여 키웠다.

그리고 학교를 휴학하고 외국으로 연수를 떠났다.


큰 딸이 출국하는 날은

마침 아내 실비아가 이스라엘, 로마 등으로 성지순례 중인지라

작은 딸이 품에 안고 공항으로 배웅을 나갔었다.


시간이 흘러..

큰 딸이 귀국을 했을 때는 뽀야는 엄청나게 큰 성견으로 자랐고

짖는 소리는 과히 굉음에 가까웠다.

물론 실비아와도 정이 새록새록 쌓였고..

(앞 집, 윗 집, 아랫 집 분들이 모두 좋으신 분들이라

 뽀야의 굉음은 다행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뽀야가 보영이를 알아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런데 보영이를 보는 순간,

뽀야는 마치 엄마를 만나는 것 같이 얼마나 반가워 하던지..    


개는 그 집에서의 권력서열을 본능적으로 안다고 하는데

그래서 말을 잘 안 듣거나 할 때

실비아가 나에게 야단을 치거나 불러가라고 하면

뽀야는 내 말을 잘 듣는 듯 했지만,

실제 느낌으로 뽀야는 보영이에게 가장 잘 순종했던 것 같다.

보영에게는 엄마의 추억이 있었을 테니..


정년 퇴직을 하고 몇 달 동안 아침마다 등산을 다녔는데

이때 동반자는 역시 뽀야였다.

산 속 외진 곳에서 뽀야는 목 줄 없이 자연을 만끽했었다.


중국에서 일을 하다가 실패하고 돌아왔을 때

처진 어깨에 관계없이 반겨주는 놈 역시 뽀야였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뽀야는 의리를 지켰다.

단, 먹을 것 앞에서는 빼놓고..  ㅎㅎ


만 14년이란, 햇수로는 15년의 세월을 

뽀야는 우리 가족 구성원의 하나로 살아왔다.

뽀야에게 우리 가족은 아빠, 엄마, 큰 누나, 작은 누나가 되었다. 

혹시 어디라도 아프면

엄마, 누나들은 병원에 데리고 다녔고

털이 길어지면 큰 덩치 때문에 미용비가 비싸다며 투덜거리면서도

엄마는 몇 달에 한 번씩은 미용을 시켰다.


(참 잘 생긴 뽀야)


(작은 누나는 침대도 여러 번 바꾸어 주었다)


(뽀야는 사랑을 듬뿍 받았고

우리 가족에게 웃음을 주는 활력소였다.

 작은 누나와 눈 사람 만들고..)



뽀야는 식탐이 아주 심했다.

배가 터지도록 먹어도 먹어도 또 먹으려 했다.

설날이며 추석날, 부모님 기일은

뽀야에게는 잔칫날 이었다.

워낙 동물들을 좋아하는 우리 형제들인지라

고기며 과일이며 전이며 

그만 주라고 해도 걸떡 거리는 뽀야에게 아낌없이 주었기에

동생 가족들이 오면 뽀야는 자기의 저녁은 먹지 않고

친척들이 모두 모여 둘러 앉을 잔칫상을 기다렸다.  ㅎㅎ 


안 먹을 떄가 몇 번 있었는데

제 몸이 안 좋을 때...

병원에 다녀오고, 엄마가 황태국 끓여 먹이고 하면

뽀야는 곧 거뜬하게 일어나서 왕성한 식욕을 자랑했다.


(뽀야는 엄청난 탐식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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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점차 기력이 쇠약해짐에 따라

내가 휴일에 운동을 나가면 꼭 따라나서던 녀석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갈까? 말까?

가면 간식이 있지.  

산에서 아빠 일행들이 막거리 잔 나눌 떄의 안주..


내가 맨 몸으로 나서면 무조건 따라 나서는 놈이

배낭을 매면 한 참 머뭇거리다가 결정한다.

아마 컨디션을 생각했었나?

아하,  아빠 배낭에 내 간식을 넣더라...

그런데 산은 힘 들어

그래도 간식이 있는데..

갈까 말까?


(2주 전, 2월 24일 (일) 뽀야의 마지막 소래산 등산)



어디 아픈 곳도 없고, 먹는 것 역시 잘 먹고..

몇 년은 더 살거야..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애견 프로그램에서 강아지와 작별하는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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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제 그러니까 2018년 3월 10일 토요일

저녁 밥 잘 먹고,  

밤에 엄마가 출출하다고 딸기 먹는 것 달라고 해서

한 입 얻어먹고

고구마 말린 간식도 얻어 먹고.

충치 예방 껌 하나 준 후

엄마는 침실로 가고..


그후 나에게 또 간식 달라고 칭얼대는 뽀야에게

내일 먹자.. 가서 자..


그게 뽀야와 나의 마지막 대화였다.


어제 일요일 새벽.

이날은 영흥성당에서 연령회 시흥안산지구 회합이 있는 날,

8시에 집을 나서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서

휴일이지만 일찍 일어나 복음 묵상을 블로그에 정리해야 했다.


7시 경,

실비아가 거실로 나와서 

뽀야 밥 줬어요? 묻기에

안 줬어요..


그러자

뽀야 밥 먹자.. 

하고 엄마가 부르는데..


그런데 대뜸 벌떡 일어나야 할 놈이 가만히 엎드려 있다.

자기 집이 아닌,

엄마가 음식을 하면 늘 엎드려 엄마를 바라보던 그 곳에서

꼼짝 않고    


여보 뽀야가 이상해요..


어디가 아픈가?


뽀야 일어 나.. 하며

다가가 만져보니..

아직은 체온이 따뜻하긴 한데.

뽀야는 미동조차 않았다.


떠 나기 전에 몸을 깨끗이 하고 싶었을까?

화장실에 들어가 마지박 변을 많이 봐놓고

어제 밤,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얻어 먹은

고구마 말림과 껌을 조금 토해놓고.


그리고는 엄마를 바라보던 그곳에 엎드려서

엄마가 아침 식사를 하러 나오는 것을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이별이 아쉬워서일까?  눈물 자국을 남긴 채..


엄마가 오열을 하며

딸들에게 전화를 하는 동안

나는 임종하신 분들께 하는 것처럼

수시를 했다.

항문 주위를 깨끗이 닦고

눈물 자국도 닦고

채 감기지 않은 눈도 감겨 주었다.


(엄마가 음식을 만드는 동안

  엄마를 바라보던 바로 그 자리에 엎드려

  엄마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뽀야는 눈을 감았다.

   눈물 자국을 남긴 채)


인천에 사는 작은 딸 부부가 달려오고

가평에 여행갔던 큰 딸 가족이 오는 동안

화장 예약도 하고..


하지만..

만 14년의 세월동안 켜켜히 쌓인 정.

그걸 어찌 하누...


가족들의 오열 속에 화장을 했다.




그리고 뽀야의 유골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잠들고 계시는

용인 선산에 가지고 가서

할머니가 심어 놓으신 단풍나무 아래 묻어 주었다.


개에게도 영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혼이 있다면

천국에서도 행복하게 잘 살아..


그래도 너는 우리 가족과 함께 있어서 행복했지?

물론 우리가 너로 인해 받은 웃음이 더 크지만..


뽀야, 정말 

아프지 않고 고생 않고 생을 마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네가 아프면 너도 우리 가족도 힘들 뻔 했으니까..


천국에는 말이다.

아픈 일도 없단다.

그러니 네 건강이 안 좋을까봐 많이 못 준 음식들..

거기서는 실컷 먹어도 돼.

할머니, 할아버지 만나면 꼬리 치며

많이 달라고 해라.


그리고 행복해라...





이렇게 뽀야는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실비아는 뽀야 없는 집에 혼자 있을 수가 없답니다.

뽀야가 있어 든든했는데

그 애가 없으니 겁이 나서...


어제 밤에  살비아는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군요.

저도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당분간 퇴근 하면 약속 같은 것 하지 말고

곧장 집으로 오랍니다.


뽀야의 빈 자리가 채워지려면

한참의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습니다. 


2018년 3월 12일 새벽에..



(뽀야와의 추억들)



(꼬랑지 김밥 있으면 좀 줘요 엄마... 

 내일 야외 나가서 먹을 거야. 안 돼)


(뽀야 나이 세 살때 쯤...  제부도에서..)





(뽀야가 어릴 때는 가족 품에서 잘 잤다.)




 아마 뽀야 생일 파티였나보다..






 (원래 엄마는 강아지를 싫어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뽀야는 엄마의 마음 안에

   사랑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