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Judgement - GIOTTO di Bondone
1306.Fresco, 1000 x 840 cm (full fresco).Cappella Scrovegni (Arena Chapel), Padua
위령慰靈 의 날
All Souls’ Day
Commemorazione di tutti i fedeli defunti
Commemoratio Omnium Fidelium Defunctorum
위령의 날(11월2일)에 대하여
위령의 날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례력 안에서 모든 죽은 이를 기억하는 날로
추사이망첨례(追思已亡瞻禮)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통상 11월2일에 거행하며 만약 11월2일이 주일이라면 11월3일로 옮겨 거행하기도 한다.
이날은 무엇보다도 아직 연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영혼들이 빨리 정화되어
복된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그들을 위한 위령미사를 봉헌하는 날이다.
비잔틴 전례를 거행하는 동방교회에서는 성령강림 전 토요일과 칠순절 전 토요일을
각각 위령의 날로 지내며 아르메니아 전례는 부활절 다음 월요일을 위령의 날로 지낸다.
고대 로마의 관습에는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한 기념행사가 있었다.
특히 기일에 무덤에 모여 죽은이를 추도하며
헌주를 하고 음복을 나누는 것은 대중적인 일이었다.
시이저 시대까지 일년의 마지막 날로 여겨졌던 2월, 즉 2월13일부터 22일 사이에
가족 중에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념하는 위령제(Parentalia)를 지냈으며
2월 마지막 날인 22일에는 죽은 이들의 가족들이 모여 함께 음식을 나누며
죽은 이를 추모하는 가족행사(Cara cognatio)를 거행하였다.
이러한 관습을 받아들여 로마교회는 4세기부터 베드로좌에 모였고 베드로를 추모하였다.
이날이 오늘날까지 베드로 사도좌 축일로 남아있다.
초대 교회는 로마의 이러한 이교 관습을 그리스도교적으로 재해석하여 수용하였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세례로 시작된 부활을 향한 파스카 여정의 완성으로 여겼으므로
찬미와 감사의 마음으로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고 미사도 봉헌하였다.
교회가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위령의 날이 공식 전례 축일로 선포된 것은 상당히 후대의 일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전래 이전에 이교도들의 위령의 날에 행해졌던
죽은 이들을 향한 미신적인 관습이 상당 기간 동안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중세 초기에 수도원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수도자들을 기억하던 관습에서 시작되었고
이를 지역 교회가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위령의 날이 전례 안에 등장하게 된다.
세비야(Sevilla)의 이시도로(Isidorus +636) 시대에
스페인에서는 성령강림 후 월요일을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날로 지냈다.
그러나 998년에 이르러 클뤼니 수도원의 5대 원장이었던 오딜로(Odilo +1048)는
자기의 관할 밑에 있는 모든 수도자들에게 모든 성인의 날(11월1일) 다음날인 11월2일에
죽은 이를 위해 특별한 기도를 드리고 성무일도를 노래할 것을 명함으로써
위령의 날이 11월2일로 정해지게 되었고 이것이 서방교회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11월1일(모든 성인의 날)은
하느님 나라를 완성한 성인들을 기념하는 축제의 성격이 강하다면
그 다음날인 위령의 날(11월2일)은
연옥영혼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다.
모든 성인의 날과 위령의 날은
살아있는 이들에게 삶과 죽음을 묵상하게 하는 기회를 주며
특히 전례력으로 연중 마지막 시기인 11월에 자리잡음으로써
종말에 성취될 구원을 미리 묵상하게 하는 날이라 하겠다.
위령의 날에 모든 사제들은 3대의 위령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 특전을 받았다.
이 특전은 15세기의 스페인의 도미니꼬 수도회에서 시작되었고
1748년 교황 베네딕도 14세에 의해 이 특전이 승인됨으로써
스페인, 포르투갈, 남미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교황 베네딕도 15세는
많은 전사자들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하여 모든 사제들에게 이 특전을 주었다.
그러나 3대의 미사 중에서 첫째 미사 하나만 미사 예물을 받을 수 있으며,
둘째 미사는 모든 영혼을 위하여,
셋째 미사는 교황의 지향에 맞춰 봉헌하여야 한다.
중세를 거치면서 위령의 날과 관련된 많은 전설이 생겨났다.
위령의 날에 이미 죽은 이들이,
살아있을 때에 자기에게 나쁘게 대했던 사람들 앞에
도깨비불, 두꺼비, 마녀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전설이 대표적인 것이다.
또한 이 위령의 날에 연옥영혼을 위한 미사가 많이 봉헌되었으며
특별한 음식을 먹거나 특별한 놀이를 하는 등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풍습이 전해진다.
오늘날까지 서구의 많은 본당들이 묘지까지의 행진을 하고
친지들의 무덤을 방문하여 꽃과 초를 선물하는 등의 관습을 보존하고있다.
참고문헌
A.Cornides, All souls’ day 1, p.319/
P. Jounel, Le culte des saints pri re 4, Paris, 1983, pp.124-145/
D.Borobio(ed.), Ritmos y tiempos la Iglesia> 3, Salamanca, 1990/
F.Sottocornola, La celebrazione cristiana della morte
2, pp.420-428, Brescia 1984
- 이완희 신부님께서 인천 가톨릭 대학 신학교 홈페이지
신학강좌 - 전례 자료실에 올려주신 자료입니다
Last Judgement, detail of Jesus-GIOTTO di Bondone
1306.Fresco, 1000 x 840 cm (full fresco).Cappella Scrovegni (Arena Chapel), Padua
위령성월
1. 위령성월의 의의와 유래
11월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기억하며
연옥에서 정화 중인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와 선행을 하는 달이다.
죽은 이들을 잊지 않고 그들이 하느님 안에서 부활의 기쁨을 누리도록
도와주는 이 신심은 가톨릭의 가장 큰 신심 중의 하나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르는 것이며,
단련받는 영혼의 처지를 도와주는 사랑의 행위이므로
교회에서는 특히 11월 한 달 동안
연옥 영혼이 천상의 행복을 누리게 되도록 기도해 주고 있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구약성서의 마카베오 후서이다.
기원전 163년 유다 민족의 지도자인 마카베오는
전쟁터에서 죽은 유다인들을 장사 지내면서
그들이 지은 죄가 용서될 수 있도록 애원하고 기도와 헌금을 바쳤다.
기원 후 2세기부터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가 일반신자들 가운데 보급되었으며,
특히 이 관습은 로마 카타콤바 안에 새겨져 많은 기도문,
즉 죽은 이들이 죄의 사함을 받아 천상 행복에 들게 해 달라는 내용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최초의 카타콤바는 1세기에 설치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고
2세기 초부터 가족 묘지로 출발하였다가 3세기부터는 신자들의 공동묘지로 사용되었다
카타콤바의 벽에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벽화들,
즉 초기 신자들의 종말론적 사상을 표현한 그림들이 그려졌는데,
그 중심 주제는 하느님에 의한 구원, 천국에서의 희망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구세, 내세의 신앙, 그리스도의 신성, 세례, 성체,
죽은 이를 위한 전구, 모든 성인들의 통공 등을 표현하였다.
죽은 이를 위한 최초의 공식기도문은 211년에 떼르뚤리아노가 쓴 저서에 나온다.
그는 이 저서에서 ’죽은 자들의 기일’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그날 특히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실시된 관습이라고 하였다.
또한 3세기에 교회가 사용한 ’히뽈리토의 미사경문’에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문이 나왔으며
4세기에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문을 전례기도, 공식기도, 개인기도 등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2.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와 선행의 의미
’모든 성인의 통공’에서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가 가능해 진다.
우리는 연옥에서 단련을 받고 있는 죽은 이들과 천국의 성인들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루며 서로 도움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러한 통공은 우리가 죽은 이들을 위하여 대신 기도하고 속죄함으로써 그들이 죄벌을 용서 받게 된다.
이것은 구약시대로부터 있던 일이다.
"경건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이야말로 갸륵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2마카 12, 46)
마치 감옥에 갇힌 사람이
스스로 사면을 받을 수 없어 형벌을 마치고 출옥의 날만 기다리듯
육체를 벗어난 연옥 영혼들은 다만 연옥에서 되도록 빨리 벗어날 희망만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연옥 영혼들을 대신하는 우리의 기도와 속죄 행위를
하느님께서는 받아주시고,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속죄하는 것은 그들이 진 빚을 대신 갚아 주는 것과 같다.
그들이 살아 있었을 때, 우리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범죄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상에 있는 우리가 그들을 대신하여 기도하고 속죄함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때문에 하느님께 진 그들의 빚을 대신 갚음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과 같다.
사도 요한의 말대로 우리는 죄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1요한 1,8)
남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다.
우리도 연옥에 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그들이 천국에 갔을 때 우리의 기도와 희생을 잊지 않고
우리에게 필요한 은총을 빌어 줄 것이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은 인간이 사랑으로 서로 돕는 것을 즐겨 하시기 때문에
서로 공을 통할 수 있도록 섭리하시어
우리의 기도와 성인들의 기도를 받아 주시는 것이다.
3. 위령의 날
위령의 날’을 11월 2일에 지내는 것은 11세기에 클뤼니 수도원의 오딜로 원장이
다른 수사들과 함께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다음 날
죽은 자를 위해 성무일도를 바친 일에서 유래한다.
그 후 이 관습은 일반 신자들 가운데 널리 보급되었으며, 라틴교회에서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이날 사제들은 세 번의 미사를 바칠 수 있도록 허락되었는데,
이는 15세기에 스페인의 도미니코회 수사들이 시작한 것이며,
1748년 교황 베네딕토 14세의 인준을 받은 후 유럽과 남미에 급속히 전해졌다.
위령의 날에 드리는 세대의 미사 중에서
사제는 한 대를 개인적인 지향으로,
또 한 대를 죽은 이를 위해,
나머지 한 대를 교황의 지향에 따라 봉헌한다.
이 세 대의 미사전례 주제는 ’죽은 자를 위한 청원’이다.
이 주제의 배경에는
’죽음의 엄숙한 현실’,
’육신의 부활’,
’그리스도의 심판’,
그리고 ’영원한 생명’ 등
그리스도교의 가장 근본적인 교리 주제가 깔려 있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수도회홈에서 www.ofmconv.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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