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Clare - SIMONE MARTINI
1317.Fresco,Cappella di San Martino,Lower Church,San Francesco, Assisi
아시시의 클라라(1193-1253)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이상을 여성적으로 표현한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녀의 이름은 “현명한 사람”(the enlightened one)이라는 뜻을 지닌다.
그녀의 삶은 종종 프란치스코의 철저한 복음적 삶에 반대되는 배경을 지니는 것처럼 비춰진다.
그런데 클라라가 프란치스코의 이상에 아주 특별한 공헌을 한 사람으로 부상되게 된 것은 최근의 일로서,
1993-94년에 클라라 탄생 800주년 기간에 있었던 일이다.
클라라는 자신을 종종 “복되신 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라고 불렀다(회칙 I,3; 유언 37; 49).
그녀의 이상은 프란치스코의 이상에 부합하는 것이기는 하나,
복음에 대해 참으로 여성적인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며,
철저한 복음적 삶이
남성들의 사도적 영성에 있어서만 적용되는 특권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녀의 삶을 간략하게 살펴 볼 것이고,
그 다음으로 동시대의 다른 위대한 여성들의 역할에 필적하는
훌륭한 신비주의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낸 이 독자적인 중세 여성에 대해 잘 묘사해 주고 있는
그녀의 글들을 연구하기 시작할 것이다.
클라라의 관상의 삶은
외적으로 설교를 하러 다녔던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의 삶을 보충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프란치스코가 관상의 삶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대전기 12장 2항에서 보나벤투라는 프란치스코가 관상과 사도적 설교 중
어떤 삶을 택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하느님의 뜻을 찾고 있던 그 중요한 순간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프란치스코는 실베스텔 형제와 클라라 자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이 두 사람은 같은 대답을 하게 되었다.
즉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의 사자(herald)로서 설교하는 것이” 하느님의 원의라는 것이었다
성 프란치스코-양평 성클라라수도원.2000년.이태리.원목조각
그리스도의 연인,우리의 연인!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작은형제회 한국 관구장)
- 클라라의 향기 2002. 제2호에서
....(중략)
교회는 그녀가 이 지상에서 하늘로 옮아가신 지 750년이 되었지만
그녀를 새롭게 조명하고 그녀의 귀천 750주년을 성대하게 준비하고 기념하려고합니다.
그것은 성녀의 이름이 의미하듯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와
두분의 데레사 성녀와 함께 역사에 빛나는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성중심적 사회와 문화를 비판하고 여성의 위대성과 그 역활을 새롭게 들추어내는 요즈음
이 운동의 선구자들 중에서도 가장 앞서신 분으로 성녀 클라라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클라라 성녀가 모든 여성의 선구자인 이유가 당시 여성을 연약한 존재로 치부하고
그래서 기존의 수도 생활 회칙을 받아들이라는 교황들의 요청을 죽을 때 까지
거부하고 끝까지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였기 때문만은 아니고, 요즈음 여성 운동처럼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싸웠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성녀가 남성 중심적 문화가 강요하는 대로의 그런 여성적 여성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그런 남성들과 싸우는 남성적 여성도 아닌, 즉 하느님적 여성이었기때문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면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적 여성이었습니다.
성녀는 남성을 혐오하지도, 남성과 싸우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프란치스코를 지극히 사랑하였고, 그것은 그녀와 프란치스코가 만나 대화를 나눌 때에
사랑이 타올라 마치 집에 불이 난 듯 멀리서도 환할 정도였습니다.
신문을 보면 만인이 우러러 볼만한 연인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일컬어 세기적 사랑이라고 떠들썩하는데,
그녀와 프란치스코의 사랑이야말로 세기적 사랑 중에서도 세기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자신을
’그의 작은(나무)가지’라고 할 정도로 존경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서로를 닮게 하고 마침내는 하나가 되어 같은 것을 바라보게 하지만 서로를 ’그’로서 있게 합니다.
이것이 풋사랑과 다른 점입니다.
미숙한 사랑은 서로에게만 머물고, 서로에게 빠져 서로를 삼켜바리는 것으로 끝나지만,
진정한 사랑은 삼위일체의 사랑과 같이 따로 또 같이 존재하고 바라보며,
’우리의 사랑’을 ’우리 너머의 사랑’ 에로 확장케 합니다.
성녀는 프란치스코가 바라 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고,
프란치스코가 사랑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녀의 일생은 프란치스코가 바라보고,소명을 받은 다미아노 십자가의
그 예수 그리스도를 관상하는(바라보는)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거울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꾸밈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갔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프란치스코가 ’제2의 그리스도(alter Chriti)’라 불린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적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임종을 앞두고 한 형제가 갖가지 병고의 기나긴 형극의 길에서
마지막으로 인내하라고 격려하였을때,그녀는 매우 편안한 어조로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그분의 종 프란치스코를 통하여 한 번 알게 된 다음부터는
어떠한 고통도 나를 괴롭히지 못했고,어떠한 고행도 격렬하다 할 것이 못되었으며,
아무리 병이 들었어도 힘들지 않았습니다.나의 사랑하는 형제여!"라고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프란치스코가 죽기 전에 두 가지 은총을 주십사고 청한 것을 상기시킵니다.
프린치스코는 사랑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이 얼마나 큰지 할 수 있는 한
많이 느끼고, 그러한 고통을 감수할 정도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할 수 있는 한 많이 느끼게
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 결과 프란치스코는 오상을 은혜로 받았는데, 성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사랑(Passion)을
수난의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는 은총, 고통의 두려움을 몰아내는 강인한 사랑의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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