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에도 웃을 수 있는 건 믿음·봉사의 삶 때문
▲ 독신으로 평생 간호사 생활을 한 후 28년 동안 꽃동네에서
봉사자로 생활하고 있는 조봉숙 할머니. 할머니 얼굴에는 늘 미소가 가득하다.
이지혜 기자
▲ 올해 초 목발을 짚고 최고령 참가자로
필리핀 세계성체대회에 참가한 조봉숙 할머니. 조봉숙 할머니 제공
"사는 게 재미 있어. 봉사할 때도 행복하고, 쉴 때도 행복해. 몸이 성한 데가 없지만 그래도 괜찮아."
85살의 나이에 "하루하루 사는 게 즐겁다"는 할머니를 만났다.
결혼하지 않고 간호사로 살다가 정년퇴직 후 오웅진 신부가 운영하는 충북 음성 꽃동네로 들어와
28년 동안 봉사의 삶을 살고 있는 조봉숙(데레사) 할머니다.
6월 24일 충북 음성군 맹동면의 한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 양 겨드랑이에 목발을 낀
조 할머니가 미소 띤 얼굴로 마중을 나왔다.
꽃동네에서 2㎞가량 떨어진 이 아파트는 꽃동네에서 봉사자와 직원, 어르신들을 위해
마련해 준 주거 공간으로 30여 가구가 생활한다.
낡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자, 꽃동네 설립에 산파 역할을 했던 최귀동 할아버지가 남긴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고
적힌 소박한 나무 푯말이 보인다.
1층 작업장으로 들어가니 한쪽의 작은 공간에 자그마한 책상과 재봉틀이 놓여 있다.
할머니는 꽃동네에서 운영하는 인곡자애병원의 환자들이 쓸 소독포를 재단하고 있던 참이었다.
"여기는 귀한 후원금으로 운영하는 곳인데 이렇게 작은 소모품들도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면 안 돼.
이거 바느질 안 해주면 다른 데 가서 사와야 해. 깨끗이 빨아서 다시 써야지."
그에게 꽃동네는 고향 같은 곳이다. 28년 동안 봉사자로 살았지만,
그는 더 젊었을 때 이곳에 왔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조 할머니는 황해도 신계에서 태어나 1951년 1ㆍ4후퇴 때 어머니와 조카 2명을 데리고
남쪽으로 피난 와 가톨릭대 간호대학의 전신인 성 요셉 간호학교 1기생으로 입학해
평생을 간호사로 살았다.
고등학교 과정이었던 성 요셉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결핵성 관절염으로 병원에 입원한다.
간호사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
그는 부평성모병원과 명동성모병원 신생아실에서 근무하다,
1970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입회한다.
평생 봉헌 생활을 하는 수도자의 삶에 이끌렸지만 첫 서원을 하기 직전에 그는 원장 수녀에게 말했다.
"저는 소임을 나갈 때 집으로 가겠습니다."
천 장사로 생계를 잇는 가족들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고,
어린 마음에 관절염 때문에 다리를 저는 모습이 수도복으로 가려지지 않는 것도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교만했던 거야."
1973년부터 성빈센트병원에서 일하다 명동성모병원으로 다시 자리를 옮긴 그는
1987년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정년퇴직했다.
그가 꽃동네와 인연을 맺은 건 우연히 꽃동네 회지를 보게 됐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는 말이 적힌
후원 항아리가 그의 마음을 뛰게 하면서다. 노후를 꽃동네에서 보내자고 마음먹었다.
퇴직 후, 그가 처음 간 곳은 음성 꽃동네 '구원의 집' 의무실이었다.
시설이 열악해 응급실부터 입원실, 중환자실 등 모든 진료가 이곳에서 이뤄졌다.
조 할머니는 암 환자를 비롯해 알코올 중독자,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 등을 치료하고 돌봤다.
사회 곳곳에서 질병과 가난으로 버림받은 이들의 손과 발이 돼 주었다.
봉사하며 삶의 큰 의미들 발견
"여기 온 거 보람 있고, 후회해 본 적 없어. 봉사하면서 사랑을 배웠으니까."
그는 위암 말기의 늙은 아내를 위해 헌신하는 남편, 연탄가스를 마시고 의식을 잃은 환자 등
삶의 끝자락에서 사랑을 나누는 이들을 만나면서 삶의 큰 의미를 발견했다.
조 할머니는 2002년에는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놨다.
모교인 가톨릭대 간호대와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학 장학기금으로 전 재산인 2억 원을 기부한 것.
조 할머니의 대녀가 마련해 준 아파트를 처분하면서 나온 돈이다.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던 그는 늘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나이가 들면서 할머니는 더 이상 환자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 병원의 중앙 공급실에서
의료 소모품을 만드는 봉사를 하고 있다.
아침마다 직접 차를 끌고, 꽃동네에 가서 오웅진 신부가 주례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안수를 받는다.
관절 수술을 받은 후 그는 왼발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 자리에 앉을 때마다 손으로 들어 옮겨야 한다.
목발은 그의 신체 일부라고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
조 할머니는 백내장과 녹내장도 앓고 있다.
목발 짚고 세계성체대회에도 참석
"하나도 걱정할 게 없어. 나 아픈 건 별로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기도할 때 예수님께 매달리지.
예수님, 나 서울에 가고 싶은데 같이 가주실 거죠?
그러면 예수님이 '그럼, 알았다'라고 해주시는 것 같아."
조 할머니는 2008년부터 캐나다 퀘벡, 필리핀 세부 등 세 차례 세계성체대회에 참석했다.
최고령 순례자로 목발을 짚고 항상 맨 뒤에서 묵묵히 따라다녔지만,
늘 순례단에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병원에서도 늘 웃음을 주고, 항상 유쾌하고 밝은 할머니는 "내가 매일 웃으면서 사니까
하나도 안 아픈 줄 안다"면서 십 대 소녀처럼 파안대소했다.
"안 웃으면 화난 사람 같잖아. 뭘 그렇게 찡그리고 살아?"
조 할머니는 "사실 항상 웃으며 살려고 노력하고, 반은 하느님께 매달리며 산다"면서
"기쁨이 넘치는 삶은 반은 내가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고 귀띔해줬다.
이어 "하느님만 믿고 살았더니 힘을 주셨다"면서 "여기 와서 이렇게 사는 건 내게 큰 행복"이라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취재 후기
아무리 가벼운 물잔도 오래 들고 있으면 팔이 아프듯, 일상에서
소소한 기쁨을 자주 느낄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을 사는 게 어렵지는 않다.
30년 가까이 봉사자로 살고 있는 조봉숙 할머니는 말 한마디에 기쁨과 즐거움이 넘쳤다.
두 발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어 두 개의 목발에 몸을 지탱해 걷지만,
목발을 짚으면서도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렇듯 삶의 작은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은 할머니 삶의 기쁨의 원천이었다.
남에게 베푸는 삶이 일상을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는 그의 미소가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내가 다리가 불편해도 휠체어를 안 타잖아. 내가 내 힘으로 목발을 짚을 수 있으니까 너무 좋지.
휠체어를 타면 누군가가 밀어줘야 하잖아."
내가 알고 있는 '너무 좋다'의 경험적 의미는 만족할 만한 수준 이상의 기쁨을 표현하는 말인데,
할머니가 느끼는 기쁨은 만족 그 이상이었다.
유쾌하고 즐거움이 넘치는 그의 일상을 엿보면서,
하루의 작은 미소가 한 인생을 기쁨으로 물들일 수 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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