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마음을 열고

할머니의 욕

주님의 착한 종 2016. 3. 29. 08:41



시내 한 패스트푸드점 카운터.

40대의 한 여성이 주문에 익숙하지 못한 듯 시간을 끌고 있다.

뒤쪽에 서있던 소녀가 친구에게 거침없이 소리친다.

", 지금 어떤x년이 메뉴를 고르지 못하고 버벅대고 있어.

 x! 존나 짱나 미치겠어.
xx...
알지 못하면 처먹지를 말던지..."

순간 40대의 그 여성은 찬물을 뒤집어 쓴 뜻 황망히 사라졌고

10대의 소녀는 여전히 한쪽 다리를 달달 떨며 통화를 계속했다.

지하철 안

곱상하고 가녀린 10대 소녀가 전화기에 대고 하는 말..."

우리 엄마 정말 미친x 이야....맨날 저녁마다 나가...."

그 말을 듣고 있던 주변의 사람들은 그 소녀의 표현대로 "허걱!"했다.

그 소녀의 통화는 30분이 넘도록 욕설로 시작해서 욕설로 끝났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적 통화"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한마디 참견 이후에 되돌아 올 끔찍한 언어의 폭력과

스스로 감당해야 할 참담함이 두려웠을 것이다.


10대들이 사용하는 "또래언어"라고 하는 욕설 중에는

기성세대들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들이 많지만

"재섭는 x" "졸라 씨x".. 등등 쌍시옷과 쌍기역으로 점철된 것과
"
씨바" "졸라" "뻐뀨" 처럼 일부 음소(音素)를 탈락 시켜버린

2의 욕설들은 인터넷 웹진 등을 통해 널리 유포되면서

10대를 넘어 전 국민들의 일상생활에까지 침투하여

독버섯처럼 번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하긴 그들도 시간이 가면 우리처럼 이야기 할 터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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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라이 늙어 죽을 놈들"....

세월이 흘러 당신이 떠나신 지도 아마 삼십 년은 지나지 않았을까?


대학시절 즐겨 찾던 학교 앞 대포집에서  

할머니가 노상 우리에게 하셨던 그 한마디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배어 나온 사랑의 마음이며
욕 같은 억양을 빌렸으되 전혀 욕이 아닌 사랑의 언어였음을

지금에 와서야 헤아리게 되었다.

늙도록 살다 죽으란 것이 어디 욕인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 같은 학생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당신의 절절한 사랑이지.

그 할머니는 늘상 외상 술을 먹는 우리에게

돈 안 낸다고 욕하지는 않으셨다.


오늘날 정화되지 못한 언어들이 만연하고

흉포화된 감정의 토사물들이 범람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기억 속에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할머니의 얼굴


유신 시대에 난무하던 최루탄 가스에

화끈거리는 얼굴이며 눈두덩이를 수돗물로 씻어 주시고

온종일 몰려다니고 도망치다가 먼지투성이 강아지 꼴이 되어

구두 한 짝 벗겨져 잃어 버리고는

해거름 녘에서야 시장기와 목 마름을 느끼고

돈 한푼 없이 대포집 문을 들어서는 우리를 보며


"예라이..늙어 죽을 놈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라며

웃음 띤 얼굴로 우리를 꾸짖으시던 할머니
늘 젖은 손을 앞치마에 비비고 뒷짐을 지며 허리를 펴시며

한 손으로 막걸리 주전자를 내오시던 그 모습이

이즈음 들어 사무치게 그리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