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운전기사 김형태씨의 회고
"틈만 나면 달동네·판잣집 들르자 하셔"
"빨리 가자, 왜 급정거 했나… 불평 한번 안 하셨죠"
김수환 추기경의 자동차를 30년 동안 운전한 김형태(71·세례명
요한)씨가
'백미러를 통해 본 김 추기경'을 이야기했다.
김 추기경의 선종 후 슬픔에 잠겨 있던 김씨는 본지 기자에게
추기경을 모신 자랑스러운 세월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사진 촬영에는 한사코 응하지 않았다.
나는 김 추기경님의 발이었습니다.
1978년부터 전국 곳곳 안 다닌 곳이 없었죠.
그 중 달동네와 '하꼬방'(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판잣집)을 참 많이 갔습니다.
교구
일과 성당 일로 정신 없을 때도 틈만 나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하러 가셨지요.
처음 그분을 뵀을 때, 굳게 다문 입이 매섭고 차가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정 많은 분이라는 게 들통이 났지요.
어린아이들과 청년들 앞에 서면 아이처럼 웃으시는 통 에요.
그럴
때는 말수도 많아지셨습니다.
물론 힘든 때도 있었죠.
시절이 뒤숭숭하던 유신 때는 차를 타셔도 한마디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원래 음악은 안 들으셨고. 몇 시간이고 기도만 하셨지요.
나는
앞만 뚫어지게 보고 운전했고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분이 기도하실 수 있도록, 살금살금 무사고
운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딸이 셋입니다.
12년 전 정년(58세) 때 이미 그만뒀어야 했는데 애들 결혼 다 시키고
손주 볼 나이까지 일하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일흔 노인이 모는 차, 그거 불안 해서 어떻게 타느냐고 하실 법도 한데 말이지요.
주례 잘 안 서시는 분이 제 딸자식 결혼 때는 선뜻 주례도 서 주셨습니다.
아,자랑할 것이 참 많군요.
작년 7월 입원하셨을 때,
김 추기경님은 "잠깐만 있다 나올 것"이라면서 웃으셨습니다.
난 그 말만 믿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멍하니 아무 것도 못하다가 밤이 돼 정신을 차리고 성당에 왔습니다.
30년간 요구란 게 없던 분이셨습니다.
시간이 없어도 한 번도 재촉한 적이 없으셨어요.
"빨리 가자" "왜 급정거를 했느냐" 불평이나 요청 한 번 없었습니다.
30년 동안 말이죠.
추기경님, 이제는 이 늙은이가 요구해 보렵니다.
하늘나라에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서 또 제가 모는 차 타시라고요.
그 때는 사는 얘기도 많이 하자고요.
'하늘을 향한 마음 > 김수한 추기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로 사랑하십시오 (0) | 2016.10.28 |
---|---|
인생덕목 (0) | 2016.06.10 |
김수한 추기경님의 이아기 ⑬ (0) | 2016.02.11 |
김수환 추기경님 이야기 ⑫ (0) | 2016.02.05 |
김수환 추기경님 이야기 ⑪ (0) | 2016.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