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시절 단짝이었던 한 친구는 영어를 곧잘 했는데,
녀석이 영어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는 오롯이 ‘마이클잭슨’ 덕분이었다.
어느날 마이클잭슨의 노래에 ‘꽂히게’ 된 친구는 오래잖아 모든 노래 가사를 줄줄 외워 따라부르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고, 이어 여러 장르의 팝송으로 관심을 옮겨갔다.
다른 과목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영어만은 늘 만점이어서 영어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특정한 영어 숙어나 문법을 이야기할 때 늘상 “무슨 노래 가사 중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는 식으로
설명해주던, 평소에는 조용하다가도 영어만 화제로 나오면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열변을 토하던
친구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중국어에 능통한 어떤 분에게 중국어 입문의 계기를 물으니 ‘저우룬파(周润发)’라고 했다.
우리 세대에게는 ‘주윤발’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하게 들린다.
썬글래스에 쌍권총을 듣고 성냥개비를 입에 문 주윤발의 모습은 우리 또래 누구에게나 우상과도
같았지만, 유독 ‘빠져드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역시 주윤발이 등장하는 영화의 비디오테이프를 구입해서 대사를 따라하고 또 따라하며 흉내
냈다고 한다.
나중에야 그것이 광둥어(广东话)라는 것을 알았는데, 어쨌든 주윤발을 통해 중국 영화와 중국 음악에
심취하였고, 당시에는 비인기학과였던 중문과에 입학하게 되었단다. 지금은 대기업의 중국
전략팀에서 일하고 있다.
◆ 배움의 희열감을 아는가!
무언가에 꽂히고 빠져드는 것은 이렇듯 새로운 활력을 낳는다.
지난 몇 년간 내가 부족하나마 중국 근현대 역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거의
전적으로 성공회대 김명호 교수의 덕택이었다.
<중앙일보> 주말판 섹션에 인기리에 연재중인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사>를 읽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2007년 연재를 시작하여 벌써 200회를 훌쩍 넘겼다.
2008년 여름에야 김명호 교수의 연재글을 처음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날의 환희감은 온 몸을 전율케
했다. 어쩜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들이 있을까, 밤을 새워 지난 70여편을 몽땅 다 읽어버렸다.
그후로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말이 다가오면 설레고 기쁘다.
김명호 교수의 글이 전해지는 주말이기에.
A4용지 한 페이지 남짓 하는 글을 읽고 또 읽다가 성이 차지 않아 연재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중국어 독해 공부의 시발점이 되었다.
바이두(百度)에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친절하게도 그에 대한 많은 것이 백과사전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고작 몇 문단을 읽느라 하루 온종일 끙끙거린 날도 있었지만 ‘조금 더 알게 되었다’는 희열감은
겁 없이 나를 자꾸 바이두 앞으로 이끌었다.
장선푸(张申府)를 검색해보고, 쉬베이훙(徐悲鸿)을 뒤적여보고, 리쭝런(李宗仁)에 대해서도
파헤쳐보고…….
그러한 중국어 공부는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일부러 단어를 외우려 애쓰지도 않았다.
일단 문장의 뜻을 이해하였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나중에 그 단어가 어딘가에 또 등장하여
사전에서 찾게 되었을 때에는 ‘맞다, 예전에도 보았던 단어이지!’하면서 넘어가고,
다시 나오면 또 찾고, 또 찾고, 또 찾고…… 그러다보니 자주 쓰이는 단어가 자연스레 눈에 익었다.
요즘에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곧장 인터넷 사전에 검색하여 찾아볼 수 있으니 정말로 행복한
세상이다. 스트레스 받으며 공부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나는 멍청하다’는 사실을 깨끗이 인정해버린 상태에서 찾고 또 찾다보면 자연히 대뇌 옆 귀퉁이
창고에 어휘들이 쌓이게 된다.
중국 근현대 역사 속의 인물들을 검색하다보니 신기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특히 중국 혁명사에는 이름이 하나뿐인 사람이 오히려 드물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오쩌둥(毛泽东)만 하여도 마오룬즈(毛润之)라는 다른 이름이 있고, 룬즈(润之) 이전에는
용즈(咏芝), 즈런(子任)이라 불리기도 했다.
아명은 스산야즈(石三伢子)이고, 필명으로 ‘28획 선비(二十八画生)’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사용
하기도 했다. 마오쩌둥의 번체자 한자가 모두 28획(毛澤東)이라서 스스로 지은 필명이다.
마오의 재치와 익살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밖에도 혁명운동중에는 마오스산(毛石山)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기도 하고, ‘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뜻을 담아 리더셩(李德胜)이란 이름을 사용한 기간도 있다.
한국전쟁때 중공군 총사령관이었던 펑더화이(彭德怀).
그의 이름이 왜 더화이(德怀)인지 아는가? 원래 이름은 더화(得华)였다.
혁명에 뛰어들고나서 개명(改名)했다.
논어 이인(里仁)편에 나오는 ‘군자회덕(君子怀德) 소인회토(小人怀土)’ -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땅(재산)을 생각한다’는 말에서 따온 이름이다.
혁명가로서 평생을 검소하고 의연하게 살겠다는 다짐이다.
그것을 그대로 실천하였다. 말년은 눈물겨웠지만.
◆ ‘남자 5호’ - 저우언라이
펑더화이와 더불어 가슴아픈 최후를 맞은 류샤오치(刘少奇)의 원래 이름은 류위에황(刘渭璜)이었다.
역시 혁명에 뛰어들면서 이름을 바꿨다.
“젊은 시절(少小)에는 고귀한 뜻(奇志)을 품어야 한다”는, 바로 그다운 의미가 담겨있다.
중국 혁명의 영웅호걸들 가운데 깨끗한 혁명의지를 가진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류사오치를
선두에 앞세우고 싶다. 그와 함께 저우언라이 역시 ‘고결한 혁명가’라는 이미지에서 빼놓을 수 없다.
저우언라이의 필명은 재미있게도 우하오(伍豪)이다.
‘5호(五号)’라는 말과 중국어 발음이 같다.
저우언라이는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각오사(觉悟社)라는 운동권 조직을 만들었는데,
남녀 각각 10명씩이었다.
조직 보안을 위해 1호, 2호, 3호 하는 식으로 번호를 붙여 서로를 불렀다.
저우언라이는 ‘남자 5호’였다. 그래서 ‘우하오’가 되었다.
참고로, 저우언라이의 평생 동반자가 된 덩잉차오는 ‘여자 1호’였다. 필명은 이하오(逸豪).
1935년 홍군이 대장정을 마치고 옌안(延安)에 도착한다.
그후로 베이징에 입성하기까지 10여년간 옌안은 ‘혁명의 수도’였다.
수호지의 호걸들이 양산박으로 모여들 듯, 혁명에 뜻을 품은 청년들이 옌안으로 몰려들었다.
옌안에 들어서면서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름을 바꿨다.
먼훗날 1980~90년대 8대 원로로 활약한 펑전(彭真) 또한 그중 한 사람이다.
원래 이름은 푸마오공(傅懋恭)이었다. 평생 진리를 따르고 진리에 복종하겠다는 뜻으로 이름을
전(真)이라 바꿨다. 이름값을 하다가 문화대혁명때 고초를 겪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총리였던 리펑(李鹏)도 옌안으로 가는 길에 이름을 바꾼 사람이다.
원래 이름은 리웬펑(李远芃)이었다. 동지들이 芃(펑)자는 흔히 쓰이는 글자가 아니라며 하루에
구만리를 날아간다는 전설 속의 새 대붕(大鹏)의 펑(鹏)으로 바꿔주었다.
펑청완리(鹏程万里) - ‘전도유망하다’는 뜻도 담겨있다.
어려운 한자로 된 이름을 쉽게 바꾼 대표적인 인물이 리리산(李立三)이다.
원래 이름은 리중즈(李隆郅)인데, 류샤오치가 “노동자들이 외우기 쉽고 쓰기 쉬운 이름으로
바꾸자”며 리리산이 되었다. 가명을 짓던 당시 그들의 면전에 3명의 노동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리산리(李三立)라고 할까 하다가, 왠지 어색하다며 리리산이 되었다.
단순한 이름만큼 혁명을 단순하게 성공시키려 서둘렀다가 큰일을 치고 만다.
이밖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개명의 사연들이 있다.
중국 혁명 1세대 인물 가운데 이름이 하나뿐인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단 한 명도 없다.
덩샤오핑(邓小平) 역시 원래 이름은 덩센셩(邓先圣)이었고, 나중에 덩시센(邓希贤)이 되었다가,
지하활동을 하던 중에 샤오핑이 본명처럼 굳어졌다.
중국 10원수 가운데 한 사람으로 초대 상하이 시장을 지낸 천이(陈毅)는 굳센 의지를 뜻하는
중국어 이리(毅力)를 소재로 하여 이름을 바꿨고, 신사군의 군장이었던 예팅(叶挺)은 소학교 졸업
당시 ‘용감하게 앞장서 중국을 구원하라(挺身而出,拯救中华)’는 뜻에서 팅(挺)이 되었다.
성(姓)까지 바꿔버린 경우도 흔하다.
지금 상하이시 당서기인 위정성(俞正声)의 아버지 이름은 황징(黄敬)인데,
본래 이름은 위치웨이(俞启威)이다.
한때 황징과 연인 관계였던, 훗날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江青) 또한 원래 성씨는 리(李),
이름은 윈허(云鹤)이다. 이름은 예뻤지만, 지금도 중국인들은 악녀(惡女)의 대명사로 여긴다.
◆ “오늘부터 우리 함께 미치자”
이런 이야기들이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혹시 누군가에게는 밤을 새워 찾아보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앞에서 내가 소개한 이야기는 무슨 특별한 연구나 조사를 해서 나온 결과물이 아니다.
그저 인터넷 검색 몇 번만으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중국어 까막눈이었던 내가 차츰차츰 독해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처럼 ‘계기’가 중요한 것이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어는 참 재미있어서, ‘미치다’라는 말에는 ‘돌아버리다’라는 뜻과 함께 ‘일정한 수준에 다다르다’
는 두 가지 뜻이 담겨있다. ‘불광불급’은 흔히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라고 기막히게 풀이된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중국어 공부도 마찬가지다.
무언가에 미쳐야 중국어에 미친다.
그 계기가 나처럼 중국 역사와 정치가 되었든, 내 친구 동필이와 같이 중국 여행이 되었든,
혹은 중국 음식이 되었든, 중국에서의 사업이 되었든, 중국 영화나 노래, 전통극에 미치게 되었든,
하여튼 무언가 하나에 단단히 ‘꽂혀야만’ 중국어에 미치게 된다.
중국에 미치는 것도 그렇다. 미쳐야만 미칠 수 있다.
오늘부터 우리 함께 미치자. 무언가에 미쳐야 중국에 미친다.
미친 당신이 세상을 바꾼다. (bitdori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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