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중국과 친해지기

연길에는 돈부자는 있어도 마음의 부자가 없다

주님의 착한 종 2011. 9. 6. 11:24

 

▲ 연길시 시가지 풍경

 

서울에 오래 살다가 고향에 돌아와 보니 과거 가난하고 낙후하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고향사람들의 의식주행이 눈에 띄게 향상되고 마음이 펴이고 표정들이 밝아졌으며 씀씀이가 넉넉해졌다. 그 동안 부자들도 엄청 늘어나 옛날처럼 생각하고 짚었다간 망신하기 일쑤다. 곤충류로 알았는데 조류로 되어있고 파충류로 알았는데 어느새 포유류로 되어있다.

그런데 연길의 부자들에게는 남다른 특색이 하나 있다. 포식하고는 배설하지 않는 것이다. 부자임을 무수히 소문 내 놓고는 내분비문란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남들에게서 부자로 인정받고 존중받기를 원한다. 어떤 부자들은 남들이 부자로 알아주지 않으면 존중해 달라고 막무가내로 나오기까지 한다. 부자로 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부자로 인정받지 못하니 여간만 괴로운 것이 아니다.

부자로 인정받으려면 먼저 마음을 열어라. 2003년, 서울에서 조선족들로 ‘한마음협회’를 설립하여 회비를 모아 연변TV ‘사랑으로 가는 길’에 입학금이 없어 대학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성금을 보낸 바 있다. 연길에서 전달식이 있던 날 회원들은 감격에 울먹이면서 사회에 의로운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작은 정성이지만 마음을 열고 보니 마음의 부자가 된 것이다.

꾸준히 공적을 쌓으라. 주변사람들에게 술 한 잔 사주고 입던 옷 몇 벌주는 것도 좋지만 작은 것에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찾으라. 재한조선족들에게는 훌륭한 전통이 있다. 애초에 조선족유학생들이 발기하고 조선족노무자들이 가세한 고향의 불우이웃돕기는 이미 1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최근에는 조선족모임, 동아리, 사이트와 카페에서 어김없이 진행하는 활동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평소 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진정성을 보이라. 조선족들은 한국인들로부터 차별을 받기 때문에 한국인과 어울리기 싫어한다. 그러나 재한조선족들은 한국의 불우이웃을 도와 ‘장애인의 집’과 노인정 등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 위문하고 의무노동을 하며 재해지구에 가서 봉사활동도 빠짐없이 한다. 평소 인간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진정성을 보이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방법과 수단이다.

부자들은 불우이웃돕기와 봉사활동 등 자선사업을 떠나서는 부자임을 인정받을 수 없다. 또 고용창출과 사회 환원의 의무도 저버릴 수 없다.

한국에서 감동을 받은 이야기 중에 ‘행남자기(瓷器)’에 대한 미담이 있다. 2001년, 행남자기는 경영실적이 미진한 목포공장을 폐쇄하면서 오갈 데 없는 60명 종업원에게 맛김공장을 차려 일자리를 보존해 주었다는 이야기다. 이윤만 생각했으면 부가가치가 높은 김포자공장을 차릴 수 있었지만 김포자공장은 종업원 10명으로도 충분하기에 부가가치를 내기는 어렵지만 60명 종업원을 쓸 수 있는 맛김공장을 차렸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행남자기의 이야기는 연길처럼 실업자가 많은 도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자리창출은 정부와 관리들의 책임도 중요하지만 부자들이 사회 환원의 환절로 생각하고 일자리를 만드는데 정성을 들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과 자립능력이 약한 장애인, 노인을 부양할 의무가 있는 자녀들에게 먼저 일자리를 찾아주는 것만큼 사회적 부가가치가 큰 것도 없다.

사회주의 건설시기는 젊고 건장한 청장년들이 솔선수범하여 사회적 의무를 감당하는 시기였다면 시장경제시기는 부자들이 사회적 의무를 감당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부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빈부격차가 점점 심해지고 민심이 뒤숭숭해지고 각박해지며 인정이 메마른 사회로 전락한다. 또 자칫 지주, 자본가출신 부자들에게 빈하중농출신 부자들의 용속하고 옹졸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

안방에 동그라미가 무수히 붙은 적금통장이 있다고 누가 부자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나누고 베풀고 배려하면서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면서 부자다운 매너와 부자다운 인간미를 보여줄 때 뭇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존중을 받을 수 있으며 부자의 가치와 부자의 성취감도 동시에 얻을 수 있으며 마음의 부자로 거듭날 수 있다. 그때면 아마 이 사회도 인정미가 넘치는 ‘사람 사는 세상’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