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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제품 아닌 브랜드 전략에서 애플에 밀려"

주님의 착한 종 2011. 8. 29. 11:23

U.C. 버클리 명예교수 데이비드 아커
'머스트 해브(must have)' 제품·서비스로 경쟁 없는 시장을 만들어라


뉴욕에 본사를 둔 브랜드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는 2001년부터 매년 세계 100대 기업 브랜드

(Best Global Brand)를 발표하고 있다.

2001년 첫 조사에서 한국 기업으로 유일하게 100위권에 들었던(42위) 삼성은 2005년 소니를 제쳤고,

지난해 세계 19위에 올랐다(18위는 말보로, 20위는 혼다).

2005년 처음 순위권에 진입한(84위) 현대차는 5년 만에 19계단 상승해 지난해 65위를 기록했다.

 

 

한국 기업 브랜드에 대해, 세계적인 브랜드 전문가 데이비드 아커(Aaker) U.C. 버클리 하스

경영대학원 명예교수의 평(評)도 후하게 시작했다.

"삼성은 30년 전부터 일찌감치 브랜드 전략을 실행해왔고

2000년대 중반까지 휴대폰과 평면 TV 분야에서 특히 잘했다.

현대차 역시 미국에서 '10만마일 보증 서비스' 전략을 히트시키며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아커 교수는 현재 삼성의 브랜드 전략에 대해 10점 만점에 7~8점을 줬다.

현대차에 준 점수(8~9점)보다 오히려 낮았다.

아커 교수는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품질 개선, 광고, 올림픽 후원 등을 통해 외형적으로 성장했지만

전략 면에서는 애플 같은 경쟁자에 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애플 스토어(Apple Store)'를 예로 들었다.

애플 스토어는 전 세계 330여 곳에 있는 애플의 직영판매점. 애플이 매장 디자인, 제품 전시 방법을

직접 관리한다.

"애플 스토어에 가보면 그곳 매니저들은 당신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준다.

우리 동네에 있는 애플 스토어에서 몇 명이 일하는지 아나? 무려 40명이다.

반면 삼성은 자기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제시되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

삼성 브랜드를 전달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내 경험으로 보면 가전제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전제품 판매자였다.

그들이 이해하는 건 오로지 어떤 제품을 팔면 내가 돈을 더 버는가 하는 것뿐이었다."

아이팟서 아이패드까지 애플은 지난 10년간 새로운 카테고리 생산
소비자들의 눈에 오로지 자신의 브랜드만 보이도록 만들어

박한 평가를 이어가던 아커 교수가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기업이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지속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며

오른손 검지를 세웠다.

"새로운 카테고리(제품·서비스를 통칭하는 것)를 만들고

소비자들의 눈에 오로지 당신의 브랜드만 보이게 해야 한다.

그리고 진입장벽을 만들어 경쟁자들로부터 그 카테고리를 보호하라.

다른 방법을 택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아커 교수는 아사히맥주가 '수퍼드라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기린맥주를 따라잡고,

크라이슬러와 도요타가 '미니밴'이나 '하이브리드 자동차'(프리우스)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

10년 이상 별다른 경쟁자 없이 시장을 지배했던 전략을 한국 기업이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브랜드 자산'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든 백발의 경영학자는 '프로핏(Prophet·예언자)'이라는

브랜드 컨설팅 회사의 부회장이기도 하다.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초청으로 방한한 그를 24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아커 명예교수와의 대담에는 한국마케팅학회 회장인 고려대

경영대 이두희 교수가 참석했다.

―기업인들은 솔직한 의견을 좋아한다.

대표적인 한국 기업인 삼성과 현대차의 브랜드 전략을 0점부터

10점까지 점수로 매긴다면?

"삼성은 7~8점, 현대차는 8~9점 정도다.

삼성이 경쟁하는 시장은 아주 다이내믹하다.

휴대폰, 평면TV 같은 가전 시장이 얼마나 빨리 변하나.

삼성은 30년 전부터 브랜드 전략을 실행해왔고, 잘 해왔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에서는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현대차도 자동차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15~18% 미국인들은 차를 살 때

현대차라는 브랜드를 떠올리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기업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시장 점유율 경쟁에만 집중해 우리 브랜드가 저 브랜드보다

더 나은가 아닌가에만 온 신경을 쏟는 경우다.

장기적으로 승리할 수 없는 전략이다.

품질을 올리고, 가격을 낮추고 광고를 늘리는 노력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런 전략만 쓰면

일정 시점이 지나 비용과 시간만 까먹을 뿐 매출과 이익이 정체된다."

―한국 기업들은 경쟁사의 신제품을 빨리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으로 지금

위치에 올랐다.

우선 시장점유율을 늘린 다음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드는 전략이 유효한 게 아닌가?

"과거 일본 가전업체의 전략이 그랬다.

멋진 DVD 플레이어의 가격이 80달러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가격을 무기로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경쟁은 결국 시장 자체를 망쳐버렸다.

15년간 시장이 파괴되다시피 했다.

혁신적인 제품, 예를 들어 '스페셜 DVD 플레이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려면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브랜드끼리 벌이는 시장 점유율 경쟁에서는 돈이 안 남는다.

그런 전략에서 스페셜 DVD를 만들 돈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겠나."

―그렇다면 어떻게 차별화해야 하나?

"삼성이나 LG가 꼭 애플의 모든 방식을 따라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애플이 그랬듯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냥 새로운 것은 안 된다.

거기에 사람들의 머스트 해브(must have·꼭 가져야만 하는 것)가 담겨야 한다.

경쟁 없는 시장을 만들고, 장벽을 만들어 경쟁자로부터 자신의 이윤을 보호해야 한다.

그 장벽이란 특허가 될 수 있고, 강력한 브랜드, 판매 채널, 충성스러운 소비자가 될 수도 있다.

현대차가 미국 뚫은 건 도요타 브랜드보다 현대차의 브랜드가 강해서가 아니다
10만마일 보증이라는 차별화된 서비스로 성공

한국 기업은 그럴 능력이 있다.

예를 들어 현대차가 미국에서 했던 10만마일 보증 서비스는 어떤 소비자에게는 꼭 필요한 머스트

해브다.

현대차가 제로(0)에 가깝던 미국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린 것은 현대차의 브랜드가 도요타 같은

다른 브랜드보다 강해서가 아니다.

10만마일 보증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현대차뿐이었고, 말 그대로 그런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에게

다른 브랜드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쟁자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머리에서 경쟁자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 브랜드 전략·마케팅 분야의 대가인 데이비드 아커 U.C. 버클리 하스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은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

고객의 머릿속에서 경쟁 브랜드의 이름을 지워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 전기병 기자

아커 교수는 이런 전략을 '브랜드 연관성 전략'이라고 부른다.

같은 카테고리에서 여러 브랜드 가운데 자신의 브랜드를 선택하게 하는 '브랜드 선호도 전략'과는

다른 접근법이다.

자동차 회사가 경쟁사보다 더 품질 좋은 세단을 내놓고 고객을 설득하는 게 브랜드 선호 전략이라면,

미니밴처럼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고 미니밴이 필요한 사람은 처음부터 A라는 브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것, 그래서 경쟁사와 미니밴의 연관성을 끊어버리는 것이 브랜드 연관성 전략이다.

◆경쟁 브랜드와 싸우지 말고 브랜드의 새끼를 쳐라

―시장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통신 장비에서 최고의 브랜드였던 노키아는 애플에 밀리고, 세계 최초의 휴대전화 제조사인

모토로라는 구글에 팔렸다.

"그런 변화 역시 브랜드 연관성 전략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애플 아이폰의 성공은 애플이 강력한 브랜드여서, 혹은 그들이 최고의 기술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든 덕분이다.

스티브 잡스는 불과 10년 만에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튠스(애플의 온라인 장터)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냈다.

마찬가지로 노키아가 실패한 원인도 이들의 브랜드가 약하거나 제품의 질이 나빠서가 아니다.

새로운 하위 카테고리를 만드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흔히 애플의 성공 원인을 제품의 높은 완성도, 디자인에서 찾는 것과는 다른 접근이다.

"한 소비자가 스마트폰을 산다고 치자. 우선 브랜드가 눈에 띄어야 하고 동시에 제품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가장 먼저 원조(元祖)인 애플을 떠올리고 삼성 같은 다른 브랜드를 생각할

것이다.

노키아도 스마트폰을 만들지만 노키아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일까?

소비자의 머릿속에 애플과 삼성과 같은 일부 브랜드만 스마트폰이라는 카테고리에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관점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대응이 늦었던 노키아는 카테고리(스마트폰)와의 연관성이 끊어진

것이다. 노키아는 경쟁에서 진 것이 아니라 경쟁을 해 보지도 못하고 진 셈이다."

많은 기업이 끊임없이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낸다.

문제는 성공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아커 교수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성공하려면 그 안에 소비자의 머스트 해브가 될 만한 특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점이 새로운 콘셉트를 만들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핵심이라는 것이다.


아커 교수는 '브랜드 연관성'이라는 책에서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4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썼다. 새로운 콘셉트를 만들고, 콘셉트를 평가하고, 카테고리 및 하위 카테고리를 정의하고,

경쟁업체에 대한 진입장벽을 만드는 것이다.

―세계 제조업을 호령하는 일본 기업은 왜 애플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을까?

"예를 들어 소니라는 브랜드는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브랜드로 남아 있지만 실제 1980년대 이후

제대로 된 혁신을 내놓은 적이 없다.

다른 기업에 비해 조직 내의 사일로 멘탈리티(silo mentality·곡식이 담은 저장 창고인 사일로처럼

남과 벽을 쌓고 자기 이익을 챙기는 부서 이기주의)가 강했던 것이 원인이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소니라는 브랜드가 왜 이렇게 강력한가는 지금도 나에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톱 브랜드가 되는 길은 경쟁자 이기는 게 아니라
소비자의 머리에서 경쟁자를 지우게 하는 것

―브랜드 연관성을 창출해내려면 조직은 어떻게 해야 하나?

"3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새로운 아이디어에 투자하고, 기다려주고, 문제가 생겼을 때 도와주는 제도와 분위기다.

둘째, 그러면서도 새로운 트렌드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것도 필요하다.

첫째와 둘째는 늘 균형이 필요하다.

셋째, 중앙집중적인 자원 배분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사일로 멘탈리티 때문에 때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자원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게 새로운 플랫폼이라고 판단이 되면 그곳으로 돈이 흘러들게 해야 한다."

―아사히맥주가 '수퍼드라이'를 만들고, 크라이슬러가 '미니밴'을 만드는 전략은 어쨌든 산업 안에서

이뤄지는 혁신이다. 반면 요즘 기업은 아예 판을 바꿔서 바이오·에너지·건강 분야에서 신성장동력을

찾으려 한다. 이런 전략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GE, 지멘스가 했던 방식의 변화 말인가?

아주 멋진 전략일 수 있지만 동시에 몰락의 지름길일 수도 있다.

기업이 처해 있는 조건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하기 쉽지 않다.

다만 이런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첫째 그 분야는 모든 기업이 하려는 분야다. 그 말은 경쟁자가 줄을 서 있고, 아무도 돈을 벌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이런 트렌드가 실제 계속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15년 전 미국에서는 '3년 뒤면 수표가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수표를 쓴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