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중국과 친해지기

홍위병 보시라이의 대권 승부수?

주님의 착한 종 2011. 7. 25. 12:04

▲ 보시라이 충칭시 서기 photo AP
2011년 중국 부동산 시장의 최대 화두는 부동산세(房産稅)다. 매년 두 자릿수로 급등하는 집값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부동산 보유세는 지난 7년여 동안 도입 논의가 무성했다. 명목상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토지공개념을 채택해 토지이용권만을 인정해왔다. 이에 그간 부동산 취득과 등록에 따른 비용은 있었지만 주거용 부동산 보유에 따른 보유세 부담은 없었다.
   
   부동산세는 집값의 최대 80%를 은행대출을 끼고 구매하는 중국 현지의 거래 특성상 그 도입이 차일피일 미뤄져왔다. 부동산세가 도입될 경우 부동산 보유부담 증가에 따른 가격하락을 유발할 수 있고, 이로 인한 국유은행들의 대량 부실채권을 유발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간 부동산세 도입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비유됐다.
   
   하지만 지난 1월 9일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은 “재정부가 충칭(重慶)시의 분양 주택을 대상으로 한 부동산세 징수에 원칙적으로 동의 의사를 밝혔다”고 전격 보도했다. 신화통신 보도 다음날인 지난 1월 10일에는 황치판(黃奇帆) 충칭시장이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충칭시의 부동산세 징수 입장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밝혔다. 충칭시는 중국의 4대 직할시다.
   
   현재 충칭시는 144㎡ 이상의 분양주택을 대상으로 해당 연도 시장가격의 0.5~1.5%를 보유세로 물리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는 충칭시 분양주택의 약 6%에 해당하는 물량으로, 본격 징수는 1분기 이후 이뤄질 것으로 현지 언론은 밝혔다. 충칭시의 부동산세 도입으로 상하이(上海)에서도 올 1분기 안에 주거용 부동산에 대한 부동산세 도입이 확실시된다.
   
   
   보시라이 서기의 선제 공격
   
   그간 부동산세는 집값 급등을 주도한 상하이나 선전에서 먼저 도입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충칭시의 부동산세 도입으로 다른 지방 정부도 충칭시의 눈치를 보게 됐다. 이번 부동산세 도입은 보시라이(薄熙來·62) 충칭시 서기의 전격 결단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다.
   
    부동산세 징수 발표로 보시라이 충칭시 서기를 보는 눈도 달라지고 있다. 보시라이 서기는 지난 2007년 말부터 인구 3200만명의 세계 최대 도시 충칭시의 당서기를 맡고 있다. 보시라이 서기가 돌연 부동산세 도입을 들고나온 것도 “부동산값을 잡으면 2012년 차기 대권구도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내외신들은 평가하고 있다.
   
   깔끔한 외모에 세련된 매너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보시라이는 ‘중국의 케네디’란 별명을 갖고 있다. 인터뷰를 극도로 꺼리는 다른 공산당 간부들과 달리 언론 노출에도 비교적 관대하다. 이 때문인지 2007년까지 중앙정부 상무(商務)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보시라이 서기는 서방 언론으로부터 ‘차기 공산당 총서기감’이란 평가를 듣기도 했다.
   
   부동산세 도입으로 보시라이 충칭시 서기의 좌향좌(左向左) 행보도 가속화하고 있다. 보시라이 서기는 지난 2009년부터 ‘타흑제악(打黑除惡·어둠을 타격하고 악을 제거한다)’을 기치로 ‘흑사회(黑社會·조직폭력배) 토벌’을 주도하며 일약 스타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당시 충칭시 공안국은 조직폭력배 3348명을 잡아들여 104개 폭력조직을 해체하고 24억위안(약 4300억원)의 범죄자금을 압수했다. 또 공무원과 기업인 등 50여명을 체포해 이 중 24명을 사법처리했다. 당시 충칭시 원창(文强) 사법국장은 재임 중 여대생을 강간하고 1211만위안(약 21억원)을 뇌물을 받은 죄로 사형이 집행됐다.
   
   또 지난해 8월에는 관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농촌생활을 체험하는 사회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을 권장해 구설수에 올랐다. 대학생 대상의 농촌체험 프로그램이 고(故)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주도한 ‘하방(下放)’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하방은 대학생과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보내 육체노동에 종사케한 마오쩌둥의 사회정책이다.
   
   더욱이 지난해 1월에는 당 원로간부와 상이군인들을 대상으로 모두 6억위안(약 1080억원)에 달하는 ‘홍바오(紅包·빨간봉투에 든 돈)’를 나눠주는 정책을 실행해 당 원로들의 지지를 받았다. 또 최근에는 충칭시 관내 방송국을 대상으로 저녁 7시30분에서 11시 사이 황금시간대에 드라마 대신 혁명 관련 프로그램을 방영하라는 압력을 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홍위병 본색 드러내는 것 아니냐”
   
▲ 보시라이의 부친인 고(故) 보이보 부총리. photo AP
 
이에 보시라이가 “홍위병(紅衛兵) 본색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베이징대 역사학과를 졸업한 보시라이는 홍위병 출신이란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홍위병은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을 추종한 준군사집단이다. 더욱이 그의 부친은 덩샤오핑(鄧小平)의 측근으로 8대 원로 가운데 한 명이었던 고(故) 보이보(薄一波) 부총리다.
   
   보이보는 6·4 톈안먼사태(1989년)를 전후로 후야오방(胡耀邦)과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를 퇴진시키는 데도 관여했다. 보이보의 막내아들인 보시라이에게는 ‘태자당(太子黨·공산당 간부자제 집단)’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보시라이를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끌어올린 것도 보이보와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간의 막후협상 결과란 관측이 무성하다.
   
   덩샤오핑의 차기에 장쩌민을 낙점함으로써 장쩌민의 차기 혹은 차차기를 보시라이에게 넘긴다는 것이다. 실제 장쩌민 집권기 때 보시라이는 다롄(大連)시장과 다롄시 당서기, 랴오닝(遼寧)성장을 거쳐 상무부장으로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김정일의 극비 방문으로 국내에도 유명해진 다롄을 ‘북방의 홍콩’으로 키운 사람이 보시라이다.
   
   하지만 보시라이는 지난 2007년 1월 보이보가 타계한 직후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실제 보시라이는 아버지가 죽던 2007년 10월 당 중앙정치국에는 입성했으나 권력의 ‘핵(核)’인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진입에는 실패했다. 그후 그는 항일전쟁 때 장제스가 전시(戰時)수도로 삼았던 충칭에서 와신상담하며 암중모색 중이다.
 
 
2012년 차기 대권구도 향방은?
   
   시진핑·리커창 구도에 ‘부동산세’ 변수로
   
   부동산세 징수 발표에 따라 오는 2012년 차기 대권구도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보시라이가 파급력이 큰 부동산세 도입으로 배수진을 쳤기 때문이다. 올해 62세인 보시라이가 오는 2012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입성에 실패할 경우 그의 정치생명은 사실상 끝나게 된다.
   
   현재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 차기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으로, 리커창(李克强) 부총리가 국무원 총리로 유력하다. 하지만 리커창 부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으로 방향을 틀 경우 보시라이에게도 공간이 생기게 된다. 보시라이는 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서열4위) 혹은 선전·이데올로기 담당 상무위원(서열5위)에도 거론된다.
   
   한편 부동산세 징수에 따른 반발 움직임을 극복하는 것은 보시라이의 장기 과제다. 부동산세 징수에는 위헌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 현지 언론은 “1986년 개정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에 따르면 ‘비상업용 주택은 부동산세를 면제한다’고 돼있다”며 “주거용 분양주택을 대상으로 세를 부과하는 것은 위헌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유력 부동산개발상인 화원(華遠)그룹의 런즈창(任志强) 회장도 지난 1월 12일 “중국은 아직 근본적으로 부동산세를 징수할 기초가 덜 돼있다”며 “부동산세로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한 각국의 사정으로 볼 때 부동산세로는 중국의 부동산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 이동훈 기자 flatron2@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