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지린성 창춘시 파파스 이기영 사장, 랴오닝성 선양시 백제원 여태근 사장, 선양시 신생활화장품 안봉락 사장 |
"지평선 너머로 이어지는 넓은 밭을 느릿느릿 매고 있는 사람들, 아침부터 점심까지 겨우 한 고랑을 매고 있는 미련한 사람들... 이것이 바로 중국 사람들이다."
80년대 후반 고교시절 교장선생님께서 전교 예배시간에 하신 말씀이다. 나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중국에 대한 첫인상을 가졌다. 중국인의 특징을 표현하는 '만만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머리 속에 그렸던 광활한 들판에 선 농민을 연상했다.
한중 수교 17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함께 하며 광활한 대륙에서 한 고랑만 매온 한국인이 있다. 지린성 창춘시 파파스 이기영 사장, 랴오닝성 선양시 백제원 여태근 사장, 선양시 신생활화장품 안봉락 사장. 대륙에서 성공한 한국인으로 꼽으라면 나는 이 분들을 꼽는다. 그들의 중국 사업 공통점을 통해 오늘 대륙에 선 우리의 생활과 사업에 값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미련한 농민의 근성
50대 중반을 살고 있는 그들의 첫번째 공통점은 중국에서 15년 이상 생활했다는 것이다. 30대 후반, 40대 초반에 중국에 진출해 한중 수교의 세월을 함께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그 세월 동안 오로지 한 길만 파 왔으며 파파스, 백제원, 신생활이라는 이름 석자에 그 세월의 무게를 담아 왔다.
계절마다 새로운 간판을 내거는 일부 사업가들에 비하면 그들은 참으로 미련한 길을 걸어왔다. 그들이 진출했던 시기에는 현재의 중국과 비교해 외국인이 생활적으로 적응하기도 힘겨운 시기였다. 타국 생활과 사업에 있어 힘겹고 분통 터지는 일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하루에도 열두 번은 모두 때려치우고 돌아가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고랑을 떠나지 않고 지루하게 버텨왔다. 마치 미련한 중국 농민과도 같이 말이다. 돌아보면 그것은 미련한 것이 아니라 대륙에서 성공할 수 있는 지혜이자 비법이었던 것이다.
중국에서 몇 년 생활하고 느낀 것 중에 하나가 "중국은 거함이라면 한국은 모터보트"라는 것이었다. 모터보트인 한국은 빨리 달리고 빠른 방향 전환이 가능하지만 거함인 중국은 방향 전환이 느리고 모터보트에 비해 속도가 느린 반면 대양을 건널 수 있는 힘을 가졌다.
모터보트에서 거함에 올라 탄 재중한국인들 중에는 모터보트를 모는 마인드와 방식으로 거함을 움직이려 하니 거함을 타고도 대양을 건널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사업 성공의 축하주는 긴 세월 숙성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파파스, 백제원, 신생활은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맨 주먹의 돈키호테
맨 주먹의 돈키호테. 그들의 두번째 특징이다. 그들은 한국에서 돈 싸 들고 와서 사업한 것도 아니며 든든한 투자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의 종자돈은 몇 천만원 수준이었으면 그 수준에 맞춰 씨앗을 뿌리고 밤낮으로 가꾸며 키워왔다.
파파스, 백제원, 신생활은 한국에서 온 브랜드도, 중국인의 토종 브랜드도 아니다. 한국인이 만든 중국 토종 브랜드이다.
파파스는 많은 한국인들이 "고객에게 돈을 집어 던지는 종업원을 보라"며 불평할 때, 중국에서도 한국 못지 않은 서비스가 가능함을 실천적으로 입증했다. 또한 한중 문화, 나아가 동서양의 음식을 비벼낸 '퓨전 문화와 음식'을 일찍이 90년대 후반에 선보였다.
백제원은 중국 코리아타운 1번지인 선양 시타의 원조이다. 한국식 회, 사우나, 술안주, 음식 등을 처음 선보이며 중국인에게 한국 음식문화를 소개하고 돈을 벌어온 한국 음식점이 백제원이다. 선양에서 일식을 대중화시킨 업체는 일본 업체가 아니라 백제원이며 중국 시장에 맞춰 한국 음식을 꾸준히 개발하며 ‘한식 세계화’를 펼쳐온 곳도 백제원이다.
중국 미용시장에 한국의 많은 화장품 회사가 진출했지만 중국 현지에서 독자 브랜드를 구축하고 중국 전체 시장을 파고들어 대규모 매출을 올리고 있는 신생활. 중국 여성들의 피부마사지가 사치라고 여기던 시절, 고객을 직접 찾아 피부마사지를 해주며 화장품을 판매했다. 신생활은 중국 미용업계의 문제점을 발전의 기회로 삼은 창조적이고 긍정적 마인드와 전략으로 발전을 모색했다.
그들은 한국에 있는 것을 그대로 가져다 중국에서 선보이는 사람들과 달랐다. 한국 것을 가져다 중국 현지 문화와 소비자의 요구를 배합해 업그레이드해냈다. 남들이 '미친 짓'이라고 하는 일을 고집 부려 성공시켰다. 파파스, 백제원, 신생활은 창조의 땀방울을 먹고 자라났다고 할 수 있다. 창조! 이것이 성공한 그들의 두번째 공통점이다.
처음부터 내수시장 공략
그들의 세번째 공통점은 처음부터 내수시장을 공략했다는 것이다. 지난 십수년간 중국은 한국 기업에게 있어 ‘제조 대행국’이었다. 땅값 싸고, 인건비 싸고, 세금이 싼 데다 특혜까지 있으니 중국에서 물건을 만들어 한국 혹은 제3의 시장으로 수출하기 위해 중국에 진출했었다.
중국 경제의 고속성장으로 ‘제조 대행국’으로 삼던 한국 기업들이 중국을 ‘야반도주’하듯 떠났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중국 소비자를 상대로 내수시장을 파고들었으며 한국의 금융위기, 세계적 금융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중국 경제의 고속성장세를 타고 발전해왔다.
한국의 서비스와 제품이 상대적으로 앞서 있던 시절, 그들은 중국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하고 한국의 것을 중국화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다. 한국의 대기업도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투자에 비해 수익률이 높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그들의 시장 침투와 수익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사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성공할 만큼 성공하고 고생할 만큼 고생한 그들이지만 고랑을 떠나 그늘에 앉아 쉴 생각을 않고 아직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돈을 버는 비결은 자본이나 아이디어, 기술이 아니다. 투자로 따지자면 태평양에 모래 한 삽 붓기 정도가 될 정도로 중국 자체의 자본은 거대해졌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현지인이 낚아 채가고 좀 앞선 기술은 기술자를 빼 가서 기술경쟁력을 잃고 만다.
그 비결은 미련한 농민의 근성으로 중국 시장에서 가치를 창조해낼 수 있는 창조적 마인드이다. 파파스, 백제원, 신생활, 그들의 성공이 값진 이유는 바로 그들은 값진 교훈을 실천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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