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이 활약했던 중국의 산동땅
대한민국과 가장 가까이 접하고 있는 중국 땅은 산동성이다.
한반도 북쪽의 압록강과 두만강에 접해있는 동북 3성에는 우리민족의 성산백두산이 있고 조선족 동포들이 집거하는 조선족 자치주정부도 있지만 남북의 분단된 현실을 감안한다면 황해 건너의 산동 땅이 우리에게는 가장 가까운 중국 땅이다.
산동은 중국 문화의 중심지로 황화 문명의 발원지이기도 하며 시대별로 많은 인재들이 배출 되었던 곳이다.
기원전 5 6세기 주나라 때에는 중국을 선도하며 이끌었던 공자의 노나라와 강태공의 제나라가 산동성의 남북을 근거지로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을 일으키며, 제자백가 시대의 찬란한 중국문화의 꽃을 피웠던 곳이었고 한반도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던 곳이다.
근래의 지난세기 중엽에는 많은 산동성 출신들이 한반도로 건너와 한국에서 화교집단의 주류를 이루었었고 냉전 시대가 끝나고 중국이 개혁 개방을 하면서, 그들이 산동으로 다시 돌아와 한중 보따리무역의 기초를 닦으면서 산동의 동편 끝자락 위해시를 중국의 변경무역 중심지중의 하나로 만들기도 했다.
중국의 개혁 개방과 함께 최초의 우리나라 제조업 투자 법인이 89년 산동성 청도에서 사업을 시작하였고, 한중간에 직항 교통로로 처음 운항되기 시작한 정기여객선도 인천과 산동의 위해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92년 한중수교와 함께 이 지역에는 집중적으로 한국기업들이 들어오기 시작 하였으며, 칭다오, 위해, 연태를 아우르는 산동 반도의 동편자락, 교동반도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밀집하여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 되었으며, 동북 삼성으로부터 30여만 조선족 동포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와서 새로운 삶의 근거지를 마련하며, 재중 한국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우리문화와 언어가 소통하는 한겨레 사회의 새로운 패턴으로 정착해 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삼국시대 때에는 연태시에 속하는 봉래 지역이 수나라와 당나라가 수차례에 걸쳐 고구려를 침공 하면서, 해군의 훈련장과 해군함선의 발진 기지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고구려 멸망 후 재당 신라인들의 활발한 활동 지역의 하나로 신라방, 신라소, 신라원, 신라관 등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던 곳이며,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승려들과 학자와 상인 들이 이곳을 통해 중국을 오가며 한반도와 문물을 교류했다.
통일신라시대, 고려 초를 거치면서 신라, 발해, 일본을 상대로 한 가장 활발했던 국제 무역항으로 의상대사와 선묘의 이야기를 간직한 봉래시, 그 북쪽의 발해만 에 있는 섬 장도에는 고조선 유적 박물관도 있다.
산동성 위해시에 속하는 영성시 석도진의 적산에는 1,200여 년 전 신라인 장보고가 전남 완도의 청해진을 중심으로, 동북아 한, 중, 일 의 해상무역을 주도하면서 불교 사원인 적산법화원을 세워 백제의 후예 고구려의 후예들을 포함한 재당 신라인들의 회합장소로도 사용하였고, 일본 승려 들을 묵게도 했던 곳으로, 일본승려 엔닌은 이곳을 근거지로 천태종 불교를 일본에 전파하며 일본 불교사의 주요인물로 지금도 높이 추앙받고 있다.
산동성의 중심부에 있는 청주시는 고구려의 유민 이정기 장군이 고구려의 후예들을 모아 왕국을 만들어 60여 년간 항당 활동을 하던 곳이었기도 하며, 장보고의 무령군 등 당나라 군대에 의해 궤멸 될 때까지의 근거지로 일부지역에는 지금도 그들의 후예들이 모여 사는 집단촌이 있으며, 그들이 한족으로 동화되었으면서도 개혁 개방이 될 때 아직 뿌리를 잊지 않고 조선족으로 바꾸어 달라는 청원을 한 적도 있었다.
산동성의 서부지역 중심 태산자락의 곡부는 공자의 고향으로 수년전부터 공자축제를 다시시작하면서 문화대혁명 때에 전면 폐지되었던 제례 법을 복원할 때 한국의 유학자들이 이곳에 와서 제례 법 복원에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청도시에 속하는 교주는 고려시대에 송나라와 교역을 하면서 고려 상인들이 많이 왕래하였던 곳이며,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이 이곳을 거쳐 북송의 수도 개봉으로 갔었다는 역사 기록이 남아있는 고려 정관이 있었던 곳이며, 지난 2,000년 말에 한중 사학자 들이 노력하여 그곳에 조그마한 고려정관 기념비를 세워 놓기도 하였다.
산동성 서남부에 면해있는 미산호의 옆 자락에 지금도 주요 수운의 통항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서주의 경항대운하의 길목은 신라청년 정념과 장보고가 활약했던 무령군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고, 명나라에 끌려와 영락제의 후비가 되었다가 어린나이에 요절한 권비 묘소도 산동에 있다.
중국의 경극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는 유일하게 우리의선조인 고구려의 막리지 연개소문이 등장하며, 당태종과 맞싸워 전투를 벌였던 지역도 산동의 연태와 청도를 잊는 길목이다.
우리나라 진주 강 씨와 평해 구씨의 시조가 모셔져 있는 강태공 사당도 이곳 산동 땅 쯔보시에 있어 매년 후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조선반도의 동학란이 원인이 되었던 청일전쟁기념관이 위해시 유공도에 있으며, 한편에 마련된 조그마한 전시실에는 전봉준의 영정과 그 당시 동북아의 정세가 소상히 기록되어 있고, 당시의 한반도주변 강대국들의 세력 다툼에 약소국 조선이 을사늑약을 체결당하며 일제의 보호 하에 들어가게 되었고, 곧이어 한일 합방으로 이어졌던 지난세기 동아시아의 아픈 우리역사를 되새기게 해주는 전시관도 있다.
이처럼 산동땅 곳곳에는 우리선조들의 역사가 배어있고, 백제의 유민들, 고구려, 신라의 유민들, 그리고 원나라에 노예처럼 끌려왔던 고려인들,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조공으로 바쳐졌던 조선의 유민들이 활동하고 거주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한중수교 후 지난 십 수 년간 한국인들이 이곳을 개척하려 몰려오기 시작했으며, 어려운 사업 환경에 성공 보다는 실패가 많았지만 장기 거주 한국인의 수는 계속 늘어나 중소도시 하나 규모의 15만여 명이 상주하고 있으며, 항공기만도 하루 십 수 차례 이곳과 한국을 오가고 있다.
세계화에 발맞추어 경제 영토를 넓히려는 의지의 한국인들이 심혈을 기울이며 찾아들고 정착하는 곳이다.
이미 우리에게 제1의 교역 상대국으로 다가왔고, 세계인구의5분의1을 가진 가장 큰 단일 시장이며, 머잖아 미국과 대등한 경제규모의 나라로 커질 것이 확실한, 한반도와는 유일하게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이제 선택의 여지가 있는 곳이 아니라 반드시극복하고 뛰어넘어야할 필연적인 과제의 대상이다.
그리고 중국인들과 함께 공존공영 하면서 세계화에 발맞추어 지구촌의 일원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아가며 살아야 할 것을 젊은 세대들에게도 일깨워 줘야 할 때다.
역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정에 일희일비 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묻혀진 역사를 찾아내어 우리 선조들의 활약상도 좀 더 명확히 정립하고, 지난시대 역사의 주인공들이 잘못 판단하여 겪었던 뼈아픈 고통의 시간들도 되새겨 보며, 미래의 후손들에겐 선조 가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깊이 생각해야 할 때다.
이곳에 문화원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다.
중국인들에게 대한민국을 적극 홍보하는 것을 기본으로, 경제 영토를 넓히겠다며 이곳에 와서 애쓰는 한국인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고, 이곳 한겨레 사회의 일원으로 묶여져가는 중국국적의 조선족 동포들을 위한 활동까지도 배려해 주는 문화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수학여행의 일환으로 산동땅 곳곳에 흩어져있는 선조들의 활약상도 소개해 주고,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이곳 중국의 저력도 피부로 느끼게 해주며, 향후 이곳으로의 진출에도 관심을 갖게 해주는 그러한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도 문화원이 지향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에 기대를 해본다.
한반도의 전체 면적 보다는 조금작지만 대한민국보다는 1.5배가량이나 더 크고 우리의 두 배가 넘는 인구 1억을 가진 산동성이 오래전부터 우리 선조들이 활약했던 무대였음을 상기하고 이곳에 현제 거주하는 한국인들을 중심으로 대 중국교류의 활성화를 더욱 꾀하고, 중국진출을 꿈꾸는 초보자들에게는 전진 기지로서의 교두보역할을 할 수 있게 다듬고, 13억 중국인들과 함께 공존공영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할 때가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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