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애니콜 정말 좋다!(三星anycall 很好)",
"한국 드라마 정말 재미있다!(韩国电视剧很有意思)"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처음 만난 중국인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 나면 대부분의 중국인은 한국에 대한 인상적인 '뭔가'를 꺼내놓으면서
한국인인 나에게 호감을 표시한다.
체면을 중시하고 호기심이 많은 중국인은 처음 만나는 사람과 관련된 인상적인 뭔가를 화두로 삼는다.
2000년대 진입 후 삼성의 핸드폰이 중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자
'짝퉁 애니콜'이 쏟아져 나올 정도였다.
'짝퉁' 제품은 중국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징표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처음 만나는 대부분의 중국인은 '삼성 애니콜'에 대한 관심을 보였고
이를 주제로 나에 대한 호의를 나타냈다.
요즈음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한국 드라마'이다.
현재 한국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에서부터 한국인인 나도 모르는 연예인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 드라마를 통해서 자주 보는 한국 연예인이 예쁘고 잘 생겼으니
'한국 성형과 미용'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애니콜, 드라마 등과 같이 중국 전역에서 브랜드화되고 중국인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들은
한국 시장에서 이미 검증 받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성공한 것들은 중국 소비자의 입맛에도 맞았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애니콜의 제조사는 삼성이지만
상품의 완성도는 소비자의 몫이었다는 것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자서전에서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려고 노력하다 보니
세계 최고의 제품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상품이든, 서비스이든, 영상물이든 우리 소비자들은 까다롭고 반응이 예리하며 즉각적이다.
아이폰 출시 후, 한국에서는 10일만에 10만대가 팔렸지만,
세계 최대 휴대전화 시장인 중국에서는 출시 40일만에 판매량이 10만대를 돌파했다.
애플 아이폰 3G의 경우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출시 사흘만에 100만대 가량이 팔렸다.
우리 소비자들의 새로운 전자제품에 대한 관심과 반응이 세계 최고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세계적 전자기업들은 한국에서 제품을 출시하고
전문가 수준의 매니아 소비자들이 내놓는 평가와 지적에 쩔쩔 맨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원들도 찾아내지 못한 문제점을 우리 소비자들이 찾아내고
인터넷을 통해 세상에 알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IT 관련 세계적 기업들의 한국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구글이 구글 코리아를 설립한 목적은 네이버, 다음이 장악한 한국 포탈시장이 아니라
발전이 가장 빠른 한국의 인터넷 기술과 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였다.
우리 시장과 소비자들이 세계적 기업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시장의 규모로 세계적 기업을 움직이고 있고
한국은 앞선 시장과 소비자들이 움직이고 있다.
우리 시장은 세계 시장에 선보이기 위한 '전진 기지' 혹은 '평가 시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경제의 경쟁력을 기업이나 자본력, 기술력 등에서 찾는다.
그러나 세계적 기업의 국적은 이미 불분명해졌으며
자본은 세계적 차원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있고
첨단과학기술의 인재들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 기업, 자본, 기술은 국가 고유의 경쟁력이 될 수 없다.
국가경제의 경쟁력은 이제 중국과 한국처럼 '시장과 소비자'에서 찾을 수 있다.
13억 인구의 대륙국가인 중국이 '대규모의 시장'을 무기로
세계적 기업과 자본을 움직이고 있다면
우리는 '빠르고', '똑똑한' 시장을 경쟁력으로 삼게 될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불 수준의 우리 소비자들은 신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으며,
대학 진학률 80%가 넘는 고학력 소비자들이 똑똑하고
새 것에 민감한 시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또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 능한 고학력 소비자가 시장과
기업을 주도하는 새로운 시장문화를 형성해 가고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시장'을 무기로 국가경제의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자본에 의해 분배되고 운영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 경쟁력이었다.
개발독재의 산업화 시절, 정경유착의 사회운영 시스템에서는 기업이 경쟁력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분야에서 실질적 민주주의가 실현된 현대 사회에서는 '시장'이 곧 경쟁력이다.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는 똑똑한 국민이 똑똑한 나라를 만들 듯이,
경제적 민주화 시대에는 똑똑한 소비자가 부유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
돈이 많은 중국은 세계적 기업을 인수해서 브랜드와 기술을 확보한다.
하지만 13억의 소비자 수준을 한국 소비자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중국 국내에서도 시장의 수준에 따라 기업과 자본이 집중될 것이며
시장의 수준에 따라 발전 수준도 정해질 것이다.
이미 광저우, 상하이, 베이징 등 대도시 권역의 시장이
중국 경제의 핵심적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핵심 시장들도 짝퉁 제품으로 시장 발전의 발목이 잡히고
이는 경제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가격을 중시하는 중국의 시장풍토에서는 '짝퉁' 제품이 만들어지고
품질을 중시하는 한국의 시장풍토에서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제품이 만들어진다.
소비자들에 의해서 형성되는 이와 같은 시장풍토는 곧 사람의 문제이며,
사람의 문제는 자본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현대문화와 문명의 발전속도가 빨라질수록
전세계 기업과 사업가들이 한국 시장을 주목하게 될 것이며
우리 소비자들은 세계의 제품을 평가하는 '심사 위원'의 위상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우리의 경쟁력을 보다 더 발전시키고 부각시키기 위한
국가적 정책과 국민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