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중국과 친해지기

신약성서 서간들의 우리말 제목

주님의 착한 종 2009. 12. 12. 12:55
신약성서 서간들의 우리말 제목
 
 
현재 한국 천주교회에서 사용하는 신약성서 서신의 제목은
수신인이나 필자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특정한 곳의 신자들에게 보낸 것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처럼
‘고을 이름 + 인(人)들에게 보낸 편지’,
 
특정 개인에게 보낸 것은 「디도에게 보낸 편지」처럼
‘수신인 이름 + -에게 보낸 편지’,
 
여러 곳의 신자들에게 보낸 것은 「야고보의 편지」처럼
‘필자 이름 + -의 편지’로 표기한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경우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이 서간의 입문 참조).
 
우리는 각각의 편지를 또 세 가지로 부른다.
예컨대 로마의 신자들에게 보낸 서신의 정식 명칭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약칭은 「로마서」, 약어는 ‘로마’이다.
(개신교에서는 제목을 「로마서」라 하고 약자를 ‘롬’이라고 한다).
 
그런데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라는 식의 표현은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로마인’은 국어 사전에 따르면 로마 시민이 아니라 로마시를 중심으로
고대 로마 제국을 건설한 라틴족을 일컫는다.
 
사실 서양말과 달리 우리말에서는 일반적으로 (크든 작든) 고을이나 도시 이름에
 ‘-인’을 붙이지 않는다.
예컨대 ‘서울인’, ‘뉴욕인’이라 하지 않고 ‘서울 시민, 서울 사람’, ‘뉴욕 시민, 뉴욕
사람’이라고 한다.
 
게다가, 사도가 글을 써 보낸 것은 로마 시민이 아니라 로마에 사는 신자들이다.
(로마 1,7). 그리고 당시 로마 신자는 전체 시민 수에 비해서 아주 소수였다.
사도의 다른 편지들도 마찬가지이다.
 
둘째,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라는 명칭은, 한자 문화권 전체의 천주교와 개신교
에서 다 같이 사용하는 「로마서」와의 관련성이 약하다.
 ‘편지/서간/서한’, 이 세 한자말이 이제 사전적 의미로는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로마서(書)」는 ‘편지’가 아니라 ‘서간(書簡)’이나 ‘서한(書翰)’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바오로의 ‘친서(親書)’ 같은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로마서」를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약칭이라고 말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사실 1940년대 덕원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펴낸 신약성서에서는
「성 바오로 종도 로마인에게 보내신 서간」이 정식 명칭으로, 「로마서」가 약칭으로 사용된다,
(개신교에서는 처음에 「로마인서」로 하다가 나중에 ‘인’을 뺀 것 같다).
 
이러한 문제들을 생각할 때 ‘필립비인들에게 보낸’이나 ‘로마인들에게 보낸’처럼 ‘
고을 이름 + 인(人)들에게 보낸’보다는 ‘고을 이름 + 신자들에게 보낸’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신자들’ 대신에 ‘교회’라는 낱말을 쓰는 것도 바오로의 의도에 맞기는 하지만
(1고린 1,2; 갈라 1,2 등 참조),
그보다는 ‘신자들’을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예컨대 제주 교구장이 한림 본당 신자들에게 서한을 보낸 것이라면, ‘한림인들에게
보낸 서한’이나 ‘한림 교회에 보낸 서한’보다는 ‘한림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이 더 낫다는 것이다).
 
‘신자’ 외에 ‘신도’나 ‘교우’를 써도 무방한데, 현재는 ‘신자’가 가장 많이 쓰이는 것 같다. 특히 초대 교회에서는 ‘믿음’이 관건이었기 때문에 ‘신(信)’자가 들어간 낱말이 더 낫다고 볼 수 있다.
 
‘편지’라는 낱말도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낱말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보통 짧고 비공식적인 글월을 가리킨다.
그리고 ‘편지’라는 말에는 위에서 지적한 사항 외에도, 특별히 글을 써 보낸 이를 존경
하거나 그 글을 존중한다는 뜻이 거의 담겨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믿음의 바탕인 ‘거룩한 글’을 여느 글처럼 예사롭게 ‘편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공식적인 글에는 예컨대 ‘(교황이) 성목요일에 사제들에게 보내는 서한’이라든가
‘대통령의 서한’처럼, ‘서한’ 또는 ‘서신’이 자주 쓰인다.
「공동번역 성서」 이전까지 천주교에서 쓰던 ‘서간’도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춘 글월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서간’은 또한 ‘편지’나 ‘서한’이나 ‘서신’보다 덜 쓰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바오로 서간’, ‘사목 서간’, ‘옥중 서간’ 등의 표현으로 곧잘 사용된다.
 
이러한 이유로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디도에게 보낸 편지」와 「야고보(의) 편지」식의 표현보다는 「필립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그리고 「디도에게 보낸 서간」과
「야고보 서간」식의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여겨져 이렇게 써 보기로 한다.
(사실 이러한 정식 명칭은 현재 책의 제목으로만 쓰일 뿐, 미사 전례에서도 「필립비서」, 「로마서」, 「디도서」, 「야고보서」처럼 약칭만 쓰인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