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걷는 모습이, 늘 기우뚱거리는 게...
멀리서 보면, 항상 어깨를 흔들며 즐겁게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제가 자주 봉사활동을 다니던 고아원에서 저는 그녀를 처음 만났습니다...
새로 온 자원 봉사자라며, 원장님께서 소개시켜주셨고,
저희는 어설픈 눈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얼굴의 빈 곳 없는 여드름까지..
그녀의 첫 인상에 전 한 순간 눈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을 혼자서만 맑게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항상 곁에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고
배려해 줄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처음과는 달리 저는 그런 그녀가 싫지 않았습니다...
아니, 전 그런 그녀가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전 그녀의 웃는 모습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을 향해 흘리는 그녀의 웃음을 볼 때면,
전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를 보는 듯 합니다.
하루는, 고아원에서 한 아이가 그녀를 보고 물었습니다..
“누나는 왜 다리를 절룩거려? “
전 그 아이의 말에 크게 당황했습니다.
혹 그 아이의 말에 그녀가 상처를 입을까...
하지만 그녀는 살폿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더군요.
“누나는 어릴 때 나쁜 짓을 많이 해서, 하늘에서 벌을 준거야.”
“그러니까 너는 누나처럼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커야 한다.”
그런 그녀였습니다.
그녀는 비록 몸이 불편하긴 했지만
그 어떤 정상인들보다도 더 정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안개꽃을 참 좋아했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작고 하이얀 안개꽃을 보면,
마음이 맑아 진다고 합니다.
왜인지, 안개꽃이 그녀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는, 제가 그녀를 집에까지 바래다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집을 향하는 골목길에서, 불량배 두 명이
그녀와 저의 모습을 보고
“저런 병신하고 사귀는 새끼도 있네” 라는 말을 하고는
지들끼리 히히덕 거린 적이 있었습니다.
전 순간 불 같은 화가 솟구쳤지만
억지로 끄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그냥 그들을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집 앞에서,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작별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들어갔지만
저는 그 불량배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 곧장 그 불량배들을 찾아내서, 그녀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질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과 전 싸움에 이르렀고.
전 그날 숨쉴 틈 없이 그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습니다.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가 싸움을 못 하는 것에 대해
원망해보았습니다.
그때는 제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 했지만…
그녀와 제가 스스럼없이 대할만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녀가 저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며, 어렵게 말을 꺼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너무나 싫어하는 사람이, 그녀에게 결혼을 요구한다며
저에게 하루만 그 사람 앞에서 애인 행사를 해달라고 부탁해 왔습니다.
다음날 전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그녀와 함께
그녀에게 결혼을 요구했다는 그 남자를 작은 커피숍에서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저란 존재에 그 남자는 많이 당황해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걸 체념한 사람처럼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나갔습니다.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전 아무 말 없이, 쓸쓸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며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 역시도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그녀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동네 오빠라고 합니다.
어릴 때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못쓰게 된 그녀에게,
그는 유일한 친구였다고 합니다.
또래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아왔던 그녀에게
그는 늘 백마 탄 왕자처럼 그녀를 보호해 주었고...
그런 그가 얼마 전 그녀에게 청혼을 해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대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에게,
더 이상 짐이 될 수는 없다며 제게 그런 부탁을 했었답니다.
훗날 전 그 남자의 이름이'성 청심(맑은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왜 안개꽃 (안개꽃이 꽃말은 '맑은 마음'입니다)을
좋아하는 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전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녀는 외모가 예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정상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전 그녀를.
그런 그녀를..
오랜 고민 끝에 몇 일 후, 전 그 남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고 적잖이 당황해 하는 그에게
이 한마디를 던져 주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안개 꽃을 좋아한다고.... “
한 순간, 그 남자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이 제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전 그 남자를 뒤로 한 채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녀에게 그 남자는 정말로 필요한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그 남자 역시도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제 행동이 얼마나 옳은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씁쓸한 기분을, 밀려오는 답답한 가슴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갑자기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제 머리를 가득 채워옵니다.
점차 어두워지는 석양 속에서 전 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녀는 못 생겼다
그녀는 절름발이다.
나는 그런 그녀를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 라고...
제게는 절름발이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걷는 모습이 늘 기우뚱거리는 게
멀리서 보면, 항상 어깨를 흔들며 즐겁게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 버린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친구가 있습니다.
-이제는 수민이라 불리는 아이와 수민이 부모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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