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 공지

감사합니다. 교우 여러분

주님의 착한 종 2009. 9. 12. 15:55

 

그래도 이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란다..

네가 있고, 네 형제들과 누이들, 손주들이 있어

이 세상은 이토록 아름답구나..

 

이 세상이 추한 것 보다 아름다운 것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시고

나를 존재하게 한 작은 하늘이었던 제 어머니가

홀연히 떠나가셨습니다.

항상 곁에 계셨기에

영원한 이별이란 생각도 해보지 못했는데..

 

한 평도 못 되는 땅에 묻고 돌아오는 길

죄인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숨죽여 흐느꼈습니다.

슬하의 자식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음이 슬프고

자식들과의 이별이 서러우신 어머니의 눈물이었는지

발인 전날 하늘에선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습니다.

 

청도에 와서 그래도 하루에 한 번쯤은 전화를 드렸건만

어머니는 별 일 없다. 비싼 국제전화 빨리 끊으라

전화를 끊곤 했었는데..

이제 전화를 받고 싶어도, 하고 싶어도,

받아줄 어머니가 안 계십니다.

 

문득 광야에 팽겨쳐 버려진 아이처럼

망막하고 외로워 집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더 잘 해 드릴 걸

유치하기만 한 문구만 되뇌입니다.

 

생자필멸이라고 하던가요?

누구나가 언젠가 겪어야 할 일이라지만

내 어머니와의 이별은 왜 이리도 힘이 드는지요..

한동안의 시간이 흐르기 전까지는

그리움에 가슴이 많이 저릴 것 같습니다.

 

"어머니, 하늘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 영혼의 안식을 위해 매일 매일 기도 드리겠어요.”

 

 

작년 가을, 악성림프종양을 판정 받았던 어머니였습니다.

여덟 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으시고, 지난 6월 담당교수는 완치되셨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얼마나 기뻤던지요..

그런데 두 달 남짓한 시간에 재발되어 입원하신 지 꼭 열흘 만에

하느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질긴 것이라 했으니, 금방이야 돌아가시겠나..

바쁘다는 핑계로 머뭇거리다가

"큰 아들이 보고 싶다"는 말씀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갔을 때,

어머니는 왔구나..” 하시고는

그 다음부터는 말씀을 하시지 못하셨습니다.

 

왔구나..” 이것이 어머니가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었습니다.

 

병자성사는 입원하신 다음 날,

평소에 존경해 오던 서울 구로3동 성당의 주임신부님께서 집전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2009 9 5일 토요일 새벽 3시 경

급격히 위독해지셔서 아버지와 6남매와 며느리, 사위 손주들까지 모두 모여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봤습니다.

바이탈 사인이 위험수준을 알릴 때,

아내 실비아가 어머니의 귀에 대고 인사를 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잘 모실 테니 걱정 마시고 편히 가세요…”

 

평생 어머니의 가슴에 못질만을 해대신 당신의 남편이 그래도 걱정되었을까요?

큰 며느리의 인사말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으셨던 것이지요.

 

이어 임종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권사님들이신 두 분 누님은 나름대로

무늬만 신자인 두 동생은 묵상으로..

저와 막내 부부, 그리고 손주들의 떨리는 임종기도가 끝나고..

아멘 소리에 맞추어 숨을 멈추셨습니다.

 

청도 본당 전 세바스티아나 수녀님이 제게 주신 나무 십자가는

돌아가신 후에도 어머니의 손에 들려있었습니다.

왼쪽 손목에는 반질반질 손에 닳은 묵주가 걸려 있었습니다. 

 

이번 가을에는 꼭 청도로 모시고 와서 구경시켜 드리겠다 약속했었는데

그리고 내년 5월 어버이날 어머니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릴 때까지만이라도

사시기를 바랬는데..

어머니는 차라리 조용한 미소까지 머금고는 무엇이 급한지 서둘러 가셨습니다.

 

어머니의 깊은 신앙과 봉사활동의 덕이었던가요?

4일 동안 연도는 그치지 않았고, 어머니의 입관 예식 때는 100 명이 훨씬 넘는

교우분들께서 지켜봐 주셨습니다.

 

8일 아침 병원을 떠난 어머니는 30여 년간 정들었던 본향 구로3동 성당에 들러

장례미사를 드렸고, 많은 친구 분들의 눈물을 뒤로하고 용인 선산, 양지바른 곳에

누우셨습니다.

 

그동안 저와 저의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 드립니다.

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조금도 고통을 느끼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계속 편안해 보였고, 열흘 동안 계속 잠만 주무셨습니다.

이렇게 편히 가시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서먹했던 형제들과의 관계까지 완벽하게 복원해 놓고 가셨으니..

얼마나 복이 많고 자식 사랑이 지극하셨던 분이신가요..

 

이제 어머니는 세상 어느 곳이나 가시고 싶은 곳은 다 가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꼭 한국이 아니더라도, 이곳 청도에서도 어머니는 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자주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죄 많은 자식놈의 가슴 한쪽에 어머니의 자리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영원히 제 가슴에 살아계신 어머니로..

 

다시 한 번,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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