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중국과 친해지기

중국인 그들은 누구인가? (9) - 商人

주님의 착한 종 2009. 4. 24. 15:31

흔히들 중국인들은 장사에 뛰어나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화교들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사실이지 그들의 장사기질은 경재대국을 이룩한 일본인들도 인정하는 바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배경이 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을 商人(상인)이라고 하는데

원래 뜻은 「商()나라 사람」이다.

()나라는 우리에게 殷()나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후에 周()나라에 의해 망한다.

앞서 말한 伯夷(백이) 叔薺(숙제)는 바로 상나라 말기 때의 사람이다.


武王(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새운 것은 기원전 1,111년이었다.

나라가 망하고 전답을 몰수당한 은나라 백성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무런 생산기반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장사로 연명해야 했다.

商人(상인)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상인의 등장은 지금부터 3천년이 넘는 셈이다.

다시 말해 중국 사람들은 3천년 전부터 상업에 종사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라면 극도의 혼란기이다.

 

 

중원은 온통 제후들의 땅 빼앗기 싸움으로 전쟁의 도가니에 빠지고 말았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지만

묘하게도 사상과 상업만큼은 크게 성행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이른바 諸子百家(제자백가)와 재별의 출현으로 나타난다

 

정경유착은 지금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 점은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재벌이 출현하였으며 콩쯔같은 성인도 돈많았던 제자 쯔꽁(子貢<자공>)이 있었기에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자연히 황금만능주의가 풍미했다.

 

당시 정치재벌의 대표는 단연 뤼 뿌 웨이(呂不韋<여불위>)를 들 수 있는데

요즘의 재벌은 땅투기를 즐겨하지만

그는 놀랍게도 사람, 즉 천자의 자리를 투기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예리한 투자안목으로 쯔추(子楚<자초>)라고 하는 진나라의 왕자에게 자신의 애첩을 바쳤다. 그녀는 이미 임신중이었다. 얼마 안 있어 아들을 낳으니 이가 훗날의 진시황이다.

그러니까 진시황은 뤼 뿌 웨이의 아들인 셈이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사람은 진시황이지만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은 상인,

즉 재별의 힘이 아니었을까.


중국은 땅이 넓다. 그러다 보니 장단점이 동시에 있다.

 

半寒帶(반한대)부터 열대까지 있어 생산되지 않는 물건이 없는 것은 좋은데

워낙 넓다 보니 이것을 각지로 실어 나르는 일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없는 것(無有무유)이 두려운 게 아니라

고르지 못한 것(不均불균)이 두렵다고 했다.

고르게 하는 것, 그것은 요즘말로 “유통”이며 그것을 담당한 사람은 다름 아닌 상인이었다

 

이밖에도 중국에서 상업이 발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배경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인들은 일찍부터 장사에 눈을 뜰 수 있었으며

그들의 재능은 현재 세계 각지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현재 중국대륙의 상업은 우리에게 뒤져 있지만

그것은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중국인들의 상업기질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이

그들 특유의 금전관과 계산감각이다.

 

하기야 상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을 좋아하지 않는 민족은 없다.

그러나 돈에 대한 중국인들의 애착은 그 정도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예를 들어 화교들은 장사에 뛰어나 돈을 많이 버는데

일단 돈이 수중에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모른다고 한다.

돈이 늘어나면 이제는 의심이 많아 방바닥을 파낸 다음 묻어둔다는 것이다.

물론 과장이 섞인 이야기겠지만 그들이 돈을 중시하는 일면을 말할 것이라 하겠다.


중국인들이 돈을 중시하는 풍조는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등교하기 전에 가게에 나가 일을 거든다.

물론 책가방은 한쪽 구석에 놓아둔 채 일을 한다.

부모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돈을 버는 것”을 중국어로 “쫜치엔”이라고 하는데 대화중에 쉽게 들을 수 있다.

심지어는 강의중인 교수도 돈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낸다.

돈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지만 점잖은 신분에

가급적이면 입에 올리지 않으려는 우리와는 다르다.


중국에서 구정만큼 큰 명절은 없다.

왁자지껄하고 요란하다.

설날에 우리들이 즐겨 하는 덕담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다.

중국인들은 그게 아니다. “꽁시 파 차이”(恭禧發財공희발재= 돈 많이 버십시오)

 

중국인들은 수많은 신을 섬긴다.

아마도 그들만큼 다양한 신이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에 신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상신은 물론 땅의 신, 집의 신, 화장실 신, 대문 신, 심지어는 부뚜막의 신도 있다.

이런 형편인데 돈의 신이(錢神전신)이 있으며 그보다 한 수 높은 재신(財神재신)도 있다.

각종 재산을 담당하는 신인 셈이다.


중국인들이 돈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사실 그들만큼 전쟁과 재앙을 많이 겪은 민족도 드물 것이다.

오죽했으면 량 치 차오(梁啓超양계초)가 戮民(육민)이라고 했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국이 불안하면 금값이 폭등한다.

전쟁이든 재앙이든 가장 안전한 피난처는 돈밖에 없다.

외양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돈에 대한 이같은 인식은

정확한 계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놀랍게도 중국인들은 계산관념에 있어서도 가히 세계 제일이다.

무려 26백년전부터, 그러니까 공자시대 이전부터 수

학은 군자가 익혀야 할 기본과목으로 되어 있었으며,

원주율 3.14를 계산해낸 것은 무려 1 8백여년전의 일이다

 

계산을 중국어로 「쏸」(算산)이라고 한다.

꿍꿍이 속을 신쏸(心算심산)이라고 하며,

쏸러(算了산요) 하면 「계산이 완료된 것」으로서 관계가 끝난 상태를 말한다.

심지어 그들은 점을 보는 것도 계산하는 것으로 여겨 쏸밍(算命산명)이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운명을 계산한다」는 뜻이 된다.

그들에게는 운명조차도 「계산」의 대상이 되는 셈이다.


계산하는데 필요한 주산을 쏸판(算盤산반)이라고 하는데,

기록에 의하면 원나라 이전부터 사용했다고 하니까 7백년은 족히 된 셈이다.

계산기가 발달한 지금도 주산은 여전히 애용되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어린아이의 돌잔치다.

상을 푸짐하게 차리는 것은 우리와 같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돈과 연필, 그리고 실을 잔치상에 올리는 데에 비해

그들은 붓과 함께 주산을 올려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