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중국과 친해지기

중국인 그들은 누구인가? (2) - 「차뿌뚜어」(差不多)

주님의 착한 종 2009. 4. 22. 19:44

중국인 그들은 누구인가? (2) - 「차뿌뚜어」(差不多)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말을 통해서도

우리는 그 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을 알 수 있다.

중국의 경우 그 대표적인 말이 바로 「차뿌뚜어」(差不多<차부다>).

 

아마 그들의 일상용어에서 이 말만큼 자주 사용되는 말도 없을 것이다.

말 뜻은 글자 그대로 「차이가 많지 않다」, 「별 차이 없다」다.

좀더 쉽게 표현한다면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두리뭉실한 면을 말하는데

바로 중국인들의 애매모호한 국민성을 잘 나타낸다고 하겠다.


사실 중국사람들의 특징이 행동에서 「만만디」라도 한다면

思考(사고)에서는 「차뿌뚜어」다.

무엇을 평가하거나 어떤 상태, 또는 기분을 나타낼 때

그들은 구체적이고 간단명료하기보다는 함축적이고 포괄적이다.

 

이것을 모를 때 당황하는 수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미술작품을 두고 어떠냐고 물었을 때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을 때

그들은 「차뿌뚜어」라고 말한다.

지금 배가 고프냐고 물었을 때 「차뿌뚜어」라는 대답을 들었다면

그것은 고프기도 하고 안고프기도 하다는 뜻이다.

사업하는 사람보고 『요즘 재미가 어때요』라고 물었을 때

거의가 「차뿌뚜어」라고 대답한다.

심지어 그들은 한국사람과 중국사람도「차뿌뚜어」라고 말한다.

 

                                      그렇다는 건지..아니라는 건지..

 

필자가 국립대만사범대학 석사반을 다닐 때 中國詩學(중국시학)이라는 강좌가 있었다.

할아버지 교수가 강의를 맡고 계셨는데

매주 七言律詩(칠언율시) 한 수를 지어오는 것이 과제 였다.

강의 시작 전에 평가를 받는데, 한참 훑어보시더니 하신다는 말씀이

「차뿌뚜어」였다. 「보통」이라는 뜻이다.

 

이러다 보니「차뿌뚜어」는 듣는 사람에게는 보통 고역이 아니다.

히 분명한 대답을 원하는 서양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들의 국민성을 알고 나면 그것처럼 편리한 단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음의 경우에 분명한 의사표시를 하고 싶지 않다거나

아니면 판단이 잘 서지 않았을 때

가장 무난하고 훌륭한 대답은 「차뿌뚜어」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차뿌뚜어」를 워낙 즐겨 사용하다 보니

유명한 후스(胡適<호적>)가 이를 비판하는 작품을 쓰기도 했다. 「差不多先生<차불다선생>」은 따지기를 싫어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는 늘 말한다.

『세상만사란 차뿌두어면 돼, 뭘 그리 따지고 산단 말인가』

 

그래서 그에게는 모든 것이 별 차이가 없었다.

「十<>」자와 「天<>」자는 한 획 차이뿐이므로 마구 섞어서 썼으며,

흰 설탕과 누런 설탕은 다 같은 설탕이므로 차이가 있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