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중국과 친해지기

중국인 이해하기 (1)

주님의 착한 종 2009. 4. 21. 19:44

중국인은 한마디로 대륙적이다.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한국인들과는 사뭇 다른 점이 많다.
여유만만하고 스케일이 큰 특징이 있는가 하면, 상대방을 의심하고

여간해서는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다.
또 의외로 축소지향적인 측면도 엿보인다,

과연 중국인은 누구인가 ?

우리중국인들의 참모습을 속속들이 파헤쳐본다.

1. 만만디(慢慢的)
우리중국사람을 두고 흔히들 「만만디(慢慢的)」라고 부른다.

「느릿느릿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중국사람」하면 먼저 「느리다」는 느낌부터 드는게 사실이다.
약 10여년 전의 일이었다,

한국의 모 일간지의 기자가 쓴 기행문을 읽었는데 중국사람들은 워낙 느려서

소나기를 만나도  뛰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후에 알고 보니 중국사람들이 느리기는 해도 그 정도로 느리지는 않았다.
비가 오자 뛰었다. 아마도 재미있게 표현하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중국인들이 느린 것은 사실이다. 물론 나름대로의 배경이 있다.

그것은 중국인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에서 비롯된다,
그중국인들의  여유를 시간과 공간 두 분야로 나눈다면

만만디는 시간적인 여유를 뜻한다.
중국은 넓다. 남북한을 합한 한반도의 약 44배나 되는 땅이다.

넓은 땅에 살다 보니 자연히 국민성도 영향을 받게 되어 서두르지 않는다.
또 서둘러서 될 일도 없다.
옛날에는 인간관계도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고 교통수단도 발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 동네안에서 모든 생활이 이루어졌으며

기껏해야 이웃 동네 밖을 넘지 않았던 것이 그들의 행동반경이었다.


쓰촨(四川)성에 사는 사람은 평생을 걸어도 바다를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화교들은 모두가 바다를 끼고 있는 지방 출신들이다.

그런가 하면  만주벌판이라고 알려져 있는 동북(東北)평원에 사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산을 보지 못하고  일생을 마감하기 십상이다.
중국에서도 쓰촨의 나뭇꾼은 여유만만하기로 유명하다.

나무를 해서 살아가는데  시장에 지고 가서 파는게 아니라 아예 땟목으로 만들어서

양쯔(揚子<양자>)강을 타고 상하이(上海<상해>)까지 내려가면서 판다.

무려 5천KM의 대장정에 나서는 것이다.  

한 반년쯤 나무를 해서 땟목을 만들며 아예 땟목위에다 집을 짓고 채소까지 심는다.

그뿐인가 ? 닭과 오리도 몇마리 실으면 병아리를 까고, 병아리가 다시 병아리를 깐다. 이 때가 되면 땟목도 얼마 남지 않고, 닭만 잔뜩 불어나 있다.

상하이에 도착하면  이번에는 가족과 함께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한번의 장정에 족히 3년은 걸린다.

쓰촨의 나뭇꾼이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
그래서 「천천히」라는 말은 거의 일상용어가 되어 있다.

여간해서 서두른다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헤어질 때 나누는 인사가 「만쪼우」(慢走<만주>: 천천히 가세요)이며,

식당에서 요리를 내오면서 하는 말이 「만만츠」(慢慢吃<만만흘>: 천천히 드세요)다.
어쩌다 부탁받은 일을 약속날짜까지 못했으면 상대방은 대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메이 꽌시! 만만라이」(沒關係 慢慢來<몰관계, 만만래>: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서두르기도 한다.

그때 쓰는 말이 「마샹」(馬上<마상>: 즉시)이다. 

한국말로 「즉시」이기는 하지만 그 어원을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옛날에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 말(馬<마>)이었다.
「마샹」은 지금 출발하기 위해 말 안장 위에 앉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언제 떠날지도 모르고 또 얼마나 빨리 달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샹」도 한국인보기에는「한참 뒤」쯤이 된다.

2. 차 뿌 뚜어 (差不多<차부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말을 통해서도  그 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을 알 수 있다.

중국의 경우 그 대표적인 말이 바로 「차뿌뚜어」(差不多<차부다>)다.

아마 그들의 일상용어에서 이 말만큼 자주 사용되는 말도 없을 것이다.

말 뜻은 글자   그대로 「차이가 많지 않다」, 「별 차이 없다」다.

좀더 쉽게 표현한다면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두리뭉실한 면을 말하는데   

바로 중국사람들의 애매모호한 국민성을 잘 나타낸다고 하겠다.
사실 중국사람들의 특징이 행동에서 「만만디」라도 한다면

思考(사고)에서는 「차뿌뚜어」다.

무엇을 평가하거나 어떤 상태,  또는 기분을 나타낼 때 그들은 구체적이고

간단명료하기보다는 함축적이고 포괄적이다.

이것을 모를 때 당황하는 수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미술작품을 두고 어떠냐고 물었을 때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을 때 그들은 「차뿌뚜어」라고 말한다.
지금 배가 고프냐고 물었을 때 똑같은 대답을 들었다면

그것은 고프기도 하고 안고프기도 하다는 뜻이다.

사업하는 사람보고  『요즘 재미가 어때요』라고 물었을 때

거의가 「차뿌뚜어」라고 대답한다.

심지어 그들은 한국사람과 중국사람도「차뿌뚜어」라고 말한다.
다음의 경우에 분명한 의사표시를 하고 싶지 않다거나

아니면 판단이 잘 서지 않았을 때 가장 무난하고  훌륭한 대답은

「차뿌뚜어」이기 때문이다.
『오늘 식사 어땠습니까』
『요즘 어떠세요』
『지금 가면 안 늦을까요』
『비싸지 않던가요』
『힘들었지요』
『일주일이면 되겠습니까』
『조금만 더 해 주세요』
중국사람들이 「차뿌뚜어」를 워낙 즐겨 사용하다 보니

유명한 후스(胡適<호적>)가 이를 비판하는 작품을 쓰기도 했다.
「差不多先生<차불다선생>」은 따지기를 싫어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는 늘 말한다.
『세상만사란 차뿌두어면 돼, 뭘 그리 따지고 산단 말인가』
흰 설탕과 누런 설탕은 다같은 설탕이므로 차이가 있을 수 없었다.
한번은 上海히(상해)에 가기 위해 기차역에 갔다.

기차는 8시 30분에 출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분이 늦었기 때문에 기차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는 단2분을 기다려주지 않고 정시에 출발한 기관사를 이해할수 없었다.
『젠장, 30분이나 32분이나 차뿌뚜어인데, 내일 가지 뭐.

오늘 가나 내일 가나 차뿌뚜어 아닌가』  

그가 급한 병에 걸려 목숨이 경각에 달리게 되었다.

하인이 불러온 의사는 불행하게도 의사가 아니라 수의사였다.
그래도 그에게는 다 같은 의사였으므로 별 차이가 없었다.

결국 그는 죽게 되었다,

가뿐 숨을 몰아쉬면서 말한다.
『하기야 죽는 것과 사는 것도 차뿌뚜어 아닌가』
중국 사람들의 「차뿌뚜어」정신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원만한 성격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유부단하다는 좋지 못한 평가도 있을 수 있다.

3. 메이 파쯔(沒法子<몰법자>)
살다 보면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는 수가 종종 있다.

이럴 때 중국사람들은 「메이 파쯔」(沒法子<몰법자>)라고 한다.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일종의 「체념」이다.

체념 뒤의 심리상태는 대가를 보상받지 못한데 대한 불만이나 원망,

자신의 노력이 부족한 데 대한 한탄과 후회등이 있을 수 있다.

그 다음은 어떤가.
좌절 또는 자포자기가 아니다.
중국 사람들은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대항하는 사람은 드물다.

해봐야 도리가 없으니 상황을 인정하고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턱대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참는 것이다.
중국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참는다(忍<인>)는 말을 자주한다.

무조건 참는 것이 미덕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인내는 신용과 함께  그들이 장사를 하는데 있어 가장 중시했던

덕목 중의 하나였다.


그들의 인내력은 유구한 역사와 배경을 자랑한다.

황허(黃河<황하>)는 중국민족의 발원지이자 문명의 산실이다.
그들은 일찍부터 이곳을 중심으로 황허문명을 꽃피웠다.

따라서 중국사람들의 정신적 육체적인 고향은 황허인 셈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가장 숭상하는 색깔도 황색이다.
그러나 황허는 묘하게도 그들에게 문명과 재앙을 동시에 가져다 주었다.

문명이라는 화려한 선물을 준 대신 홍수라는  가혹한 대가도 요구했다.

역사상 황허는 수많은 홍수를 인간에게 안겨주었다.

엄청난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은  그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메이 파쯔다.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몰론 「참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인간에게 재앙을 안겨준 것으로 홍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 스스로가 만든 이른바 人災(인재)도 있었다. 전쟁이 그것이다.
梁啓超(양계초)의 주장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평균 2년반에 1년은 전쟁기간이었다.

인생의 3분의 1이상은 전쟁의 와중에서  살아야 했음을 의미한다.

전쟁 한번 겪지 않고 죽으면 복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중국의 역사를 「도륙의 역사」라고 했으며

중국사람을 戮民(륙민)이라고 했다.

「도륙에서 살아남은 백성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메이 파쯔일 수밖에.

천재와 인재에 시달릴대로 시달리며 살아온 중국사람들과 교제를 하다 보면

「메이 피쯔」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상대방으로서는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역시 「메이 파쯔」일 수밖에 없다.


그 말 속에는 「방법이 없으니 참으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참는 데는 이골이 나 있다.

臥薪嘗膽(와신상담)의 고사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바다.

보다 큰 목적이 있으므로 참았던 것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도 웬만한 불편이나 고통쯤은 참는 것으로 해결한다.

좀처럼 그것을 개선한다거나 불평을 토로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간해서는 감정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는다. 철저한 포커 페이스인 셈이다.
외교나 상담을 할 때 중국사람을 만나면 상대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좀처럼 의중을 드러내지 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인에게 감정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의 감정이 일단 폭발할 때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쉽게 흥분하고 가라 앉히는 우리와는 좀 다르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당나라 代宗(대종)때 차오 은(朝恩<조은>)이라는 환관이 있었는데,

세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문무백관을 우습게 알았다.

한번은 천자를 모시고 강연을 벌였는데, 강연의 내용을 빗대어

평소 미워하던 대신 세 사람을 공격했다.
천자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왕진(王晉<왕진>)이라는 신하는 노발대발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위엔 짜이(元載<원재>)라는 대신은 그저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차오 은이 중얼 거렸다.
『왜 욕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을까?

아무래도 위엔 짜이란 녀석이 마음에 걸리는데...?』
물론 후에 그는 위엔 짜이에게 죽임을 당했다.

 

작가 소개 : 설봉산 (60)

국 절강성 이우시에서 금성무역() 이사, 각종중국제품을 주문받아 보내드리는 에이전트.

시장조사, 품질관리 오다관리, 창고업무, 등 파트로형성, 글로벌 한인 커뮤니티 하이투스의

중국기자및 해외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