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2009년 3월 21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주님의 착한 종 2009. 3. 21. 17:29

2009년 3월 21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제1독서 호세아 6,1-6

1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2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3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4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5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찍어 넘어뜨리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로 그들을 죽여, 나의 심판이 빛처럼 솟아오르게 하였다. 6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복음 루카 18,9-14

그때에 9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어떤 형제님께서 인도 마술사의 주문이 붙어 있는 `원숭이의 손'을 손에 넣었습니다. 글쎄 이 원숭이의 손에 손을 얹고 무엇이든지 자기가 소원하는 일 세 가지를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렇게 멋있는 것을 손에 넣은 노동자는 집에서 원숭이의 손에 손을 얹고 첫 번째 소원을 심각하게 말했지요.

“돈 500만원 생겨라!” 그랬더니, 곧바로 어떤 신사가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돈 500만원 있습니다. 선생님의 아들이 공장에서 뜻밖의 사고로 사망하셨기에 조의금을 이렇게 가져왔습니다.”

그는 깜짝 놀랐지요. 더군다나 자기의 소원인 500만원을 위해서 아들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이 자신을 더욱더 힘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원숭이의 손에 손을 얹고 “내 아들이 돌아오게 해 달라.”는 두 번째 소원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아들이 아니라, 죽은 아들의 영혼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은 다시 이 세상에 온 사실에 대해서 너무나도 괴로워하였습니다.

기가 막힌 이 형제님께서는 허탈감에 빠져 마지막 소원을 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아들이 편안히 잠들게 하라.”

많은 사람들이 이 형제님처럼 헛된 것을 추구하며 기도합니다. 특히 단번에 부자가 되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자기 자신이 부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주님께 설명하는데 바쁩니다. 하지만 그러한 허망한 기도는 이루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이루어져도 그로 인해 불행해질 수밖에 없음을 앞선 이야기는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를 비교해주십니다. 즉, 바리사이의 기도는 자기를 내세우고 높이는 기도이며, 세리의 기도는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가 됩니다. 기도로써 의롭게 된 사람은 세리라는 것이지요.

자기를 내세우고 높이는 기도는 하느님의 자리를 만들 수가 없어서 헛된 기도가 됩니다. 그러나 자기를 낮추는 기도는 결국 하느님의 자리를 만들어 드리기에 하느님과 함께 하는 진정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인해 의롭게 되는 것이지요.

지금 내 자신이 바치고 있는 기도에 대해서 우리 모두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헛된 것을 추구하는 기도인지 아니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진실한 기도인지, 또 자기를 내세우고 높이는 기도인지 아니면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기도인지를…….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당신의 거울이다.(캔 키즈 Jr)



실패는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미래가 없다(정문술, '왜 벌써 절망합니까' 중에서)

실패는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다. 그러나 때론 실패조차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다. 실패는 고통과 함께 많은 가능성을 남겨 준다. 고통에만 눈에 멀어 숨어있는 가능성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다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미국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총 714회의 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무려 1,330여회에 달하는 삼진아웃을 당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삼진 한 번을 당할 때마다 그는 반드시 실패요인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또한 삼진을 당할 때마다 느꼈을 심한 외로움과 열패감은 결과적으로 그를 강인하게 키워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330여 회의 삼진아웃은 714회의 홈런을 가능하게 했던 밑거름이었다.

나는 우리 엔지니어들에게 무엇이건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권하고, 실패하더라도 진심으로 격려한다. 한번 실패한 엔지니어는 오너에게 미안해서라도 실패요인을 분석하고 성과물을 뽑아둔다. 그렇게 축적된 성과물들은 산만하게라도 우리 주변에 남아 있게 마련이다. 언젠가는 그 성과물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성공을 이루어낸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