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중국과 친해지기

중국의 베니스 상인 산시 상인

주님의 착한 종 2008. 12. 12. 10:59

'나에게는 세 딸이 있다.

하나는 돈을 사랑했고 또 하나는 권력을 사랑했으며,

나머지 하나는 중국을 사랑했다."

 

홍콩 영화[송가황조/宋家皇朝]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혁명 지도자 손문의 동지이며 재정적 후원자인 저장의 재벌

쑹야오루는 중국 근대 역사상 자녀 교육을 가장 잘 시킨 아버지로

추앙 받고 있다. 그는 평소 주위 사람들에게 힘주어 말했다.

 "백 명의 아이들 중에 하나만 위대한 인재로 키운다면

중국은 4백만 명의 위인이 생긴다.

그러면 그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현재 중국 대다수의 가정은 살림 형편 때문에 전심전력을 기울여

자녀 교육을 시킬 수 없다고 불평하지만,

나는 그 어떤 사업보다 자녀 교육에 투자할 것이다."

 

쏭야오루의 세 딸 가운데 돈을 사랑한 첫째 아이링은

산시[山西] 최대의 금융 재산가인 쿵샹시와 결혼 하였으며,

중국을 사랑한 둘째 칭링은 중국 혁명의 아버지인 손문과 결혼 하였으며,

권력을 사랑한 막내 송미령은 국민당 총재인 장개석과 결혼 하였다.

쑹야오루의 말은 현실로 이루어 졌다.

 

20세기 전반 중국사는 쑹씨의 세딸과 그녀들의 남편들이 쓴

역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맏딸 아이링과 쿵샹시의 결혼은 중국 남부를 대표하는 재벌과

북부를 대표하는 재벌간의 결합을 의미하였다.

아이링은 정치나 경제 방면의 뛰어난 수완가이며

사랑다운 사랑을 할 줄 알았던 살림꾼 이었다.

 

산시뿐만 아니라 화베이 지역 최대의 자본가인 쿵샹시와 결혼한 그녀는

한발 앞서는 감각으로 은행업을 시작하여 

중국 전역의 경제력을 장악하였다.

그녀의 남편 쿵샹시도 훗날 장개석의 2인자 격인 행정원장 겸

재정부장을 맡아 돈줄을 한 손에 거머쥐고 국민정부를 좌지우지하는

중국 경제계의 대부가 되었다.

 

그런데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 하나 있다.

장개석의 영원한 맞수인 모택동도 공산 정부의 재정1부장 자리를

보이보라는 산시 출신에게 떠 맡겼던 것이다.

 

보이보는 지금 유일하게 생존한 중국 혁명의 제1세대원로로서

그의 큰 아들 보시라이는 현재 중앙 위원 겸 요녕성 성장을 맡고 있으며

5 세대 지도자의 한 명으로 손꼽힌다.

 

하여튼 국민당이거나 공산당이거나 불문하고

20세기 중국의 금고는 모두 산시출신이 장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