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중국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였을까!~ 열 여섯번째
글쓴이: 메네시아
문득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만약 지난 세월을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보내지 않고 한국에서 계속 치열하게 살았더라면 과연 내 인생은
지금보다 더 나아졌을까!~ 더 행복해졌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학 졸업 후 14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이미 불혹의 나이도 넘어섰지만
제 인생에 우문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보면 아직은 참으로 내 인생에서
무언가 결론을 내리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16편 2007년의 잔인한 여름 ... 그 첫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1999년 여름 어느 날..
같이 저녁이나 먹자는 사장님의 말에 무심결에 따라간 자리가
내 인생에 전환점이 될 줄은 당시에 몰랐습니다.
중국에 대해서 전혀 무지했던 사장님은 그나마 해외 생활에 어느 정도
이력이 나있던 제게 중국에 사업체를 이전하려고 하는데
너의 생각은 어떠냐!~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더군요.
나 : 중국 어느 지역에 얼마 정도를 투자하실 생각입니까?
사장님 : 천진과 청도를 생각하고 처음이니까 일부 생산 시설을 먼저
이전하여 현물로100,000 불 정도를 투자하려고 한다.
나 : 왜 하필이면 중국이죠!~
사장님 : 언어소통도 용이하고, 일단 한국과 가깝고, 인건비와 투자
여건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너무 괜찮아서 결정했다.
나 : 전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재 중국처럼 빠르게 발전하는 나라가 없는데 지금의 발전 속도라면
5년 이내에 분명히 한계 상황이 닥칠 겁니다. 발전하면 할수록 인건비
상승과 아울러 규제도 점점 강화될 겁니다. 중국에 올인 하지는 마세요.
사장님 : 그래서 말인데 .. 중국으로의 설비 이전과 여기 한국 회사를
정리 좀 해주면 안되겠냐! 마땅히 이 일을 해줄 사람이 없어..
1년만 형 좀 도와줘라!~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절을 했지만 결국은 승낙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우여곡절 끝에 약속대로 1년을 채워주고,
저도 역시 중국의 북경 지역의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어 서로 다른
길을 한동안 걷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했던 만큼 중국의 생활은 쉽지 않더군요.
결국 8개월 만에 중도 하차하여 한국으로 돌아와 반년 가까이
폐인 생활을 했습니다.
2001년 겨울에 우연한 기회로 싱가포르에서 2년 넘게 머무르면서
홍콩, 심천, 광주를 드나들면서 다시 중국인들과 거래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중국에 대해서 배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8개월의 북경에서의 생각하고 행동했던 주재원 생활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친형과의 인연이 되어 2003년 2월에 다시 천진에 왔을 때,
중국에 처음 온 사람과는 달리 아마 빠른 시간 내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것이 밑바탕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려했던 바로 제가 천진에 왔을 때에 이미 한계 상황은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회사의 투자규모는 100,000불에서 800,000불로 매출액은 3,000,000불로
처음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규모로 성장했지만 정작 중요한
기업의 수익률은 오히려 내리막길을 타고 있었습니다.
2002년부터 시작된 최저임금의 두 자리 숫자 이상의 가파른 상승에
각종 원자재와 유가의 상승, 중국 정부의 각종 행정 규제의 강화로
인한 비용의 상승으로 경기가 상승 중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업의
손실은 커져만 가는 기현상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단순한 임금을 살펴보더라도
2003년 당시 320명 정도의 인원에 지급하는 임금액이 매월 250,000
위안 좌우였지만 2007년에는 150명에게 지급하는 임금이 200,000
위안에 오히려 노동 생산성은 10% 이상 하락했습니다.
또한 달러 대비 위안화의 환율도 1달러당 8.264 위안의 고정 환율에서
변동제로 바뀐 이후 현재 7.50 위안 좌우로 절상되었고,
여기에 수출증치세의 환급율도 처음의 13%에서 11%로 떨어지더니
올해 7월부터는 그나마 5% 밖에는 환급을 해주지 않습니다.
제 회사의 경우 같은 산업 생산성과 제품 단가의 상승을 감안하더라도
2003년에서 2007년에 이르는 기간에 무려 70% 가 넘는 비용이
발생하더군요.
여기까지 어떻게 유지를 해 왔는지 생각해보면 지금도 참으로 아찔한
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에 천진에 와서 어느 정도 현지 적응 기간을 거친 후에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이 회사의 재고 관리였습니다.
현재 회사에 있는 원/부자재, 생산 라인에 투입되어 있는 각종 반제품들..
창고에 보관중인 각종 완제품 등을 회계 장부상과 실물 대비 정리하고
나서, 실물 재고에 회계 장부를 맞추는 동시에 그에 관련된 직원들에게
책임을 물렸습니다.
그런 다음 납품업체도 주요 품목에 대해서는 모두 복수 거래로 바꾸고
구매 담당자를 수시로 바꾸어 납품 비리를 최소한으로 만들고 나서
현장에 서서히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필요한 생산 인력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하여 일부 바이어와
에이전트를 정리하고, 과도한 낭비 구조의 생산성을 없애기 위하여
직접 생산 계획과 선적 일에 관여를 하여 재고를 최소화 하면서
현장 인원을 서서히 줄여 나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대외적인 일... 해관, 세무국, 노동국, 은행 등에
제 얼굴을 알리고 나서 관리의 필요 없는 지출도 줄여 나갔습니다.
1년 넘게 이런 일을 정신 없이 진행하고 나서 결과를 살펴보니
회사의 인원은 320명에서 230명으로 줄었지만 나머지 비용 절감으로
인해서 회사의 생산성과 이익률은 어느 정도 수익을 내는 구조로
바꾸어져 있더군요.
2004년 10월이 되자 사장님께서 한 가지 지시를 내리더군요.
내가 스테인레스 압연공장을 만들려고 하니, 너는 그리 알고
지금 현재의 공장의 인력과 비용을 줄여 나가면서 매출액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아라!~
결국 비용의 상승으로 지금까지 고집해왔던 직접 생산 방식을 버리고
외주 가공업체를 개발하라는 말이었습니다.
한쪽으로는 외주 가공업체를 찾고, 한쪽으로는 현 상황을 유지한다는
것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더군요.
결국 비용 때문에 중국 업체를 개발해야 하는데 중국 업체의 품질과
특유의 떼쓰기 등을 믿을 수 없고, 또한 공인들이 동요하지 않게
신중하게 보안을 유지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하여 공인들이 파업을 하고 회사에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을 외주 가공으로 간신히 위기를 넘기고
회사는 제 2공장을 세우기 시작해 2006년 봄에 공장을 완공하였습니다.
아울러 1공장은 60:40으로 외주 체제로 바꾸면서 회사의 1공장 인원은
다시 150명 정도로 줄여 놓았고 회사의 매출액은 원자재 상승만큼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공장에서 이익이 나는 것을 2공장에 재투자 한다는 공인들의
말은 - 물론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지만 - 꼬리를 물고 사라지지 않아서
툭하면 회사의 전체 분위기가 어수선해 지는 일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결국 작년 12월에 사장님과 저녁을 먹는데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셨는지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사장님 : 내가 1 공장을 매각하려고 하는데 김부장 생각은 어떠냐!~
나 : 어떤 식으로 매각하실 생각이신데요?
사장님 : 설비와 금형, 영업권까지 포함하여 전부 매각할 생각이다.
나 : 그렇다면 결국 한국 사람에게 매각을 하여야 하는데 그런 사람
찾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요. 에이전트와 바이어가 중국인과는 거래를
하지 않으려 할 겁니다.
사장님 :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그러니 시간을 두고 적임자를
찾아 볼 수밖에.!~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한쪽 구석이 서운해짐을 느꼈습니다.
모든 일이라는 것이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도 중요한 법인데
결국 이리 결론이 나는 수밖에 없구나.. 라고 생각을 하니
지난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 나름대로 회사에 많은 정열을 쏟았던
것이 그리 허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동안 그 상실감과 허탈감에 많이 휘청거렸습니다.
올해 봄에 결국은 사장님과 크게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직원이야 오너가 하라면 하는 수밖에 없지만 결국은 회사의 정리 문제가
금전과 결부되어 한동안 직장을 떠나 있었습니다.
3개월 후에 다시 복직을 해보니 공인들과의 해후는 잠깐이고 상황은
이미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최악으로 치닫도록 방조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이제 마지막
힘겨루기 상황을 사용자와 노동자가 서로 조장을 했습니다.
그 결과 2007년 8월 13일 내 생애 가장 잔인하고 길었던
여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흔히 전쟁이란 서로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이지만 전쟁만큼 상황을 빨리 종결하는 방법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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