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2007년 11월 12일 성 요사팟 주교 기념일

주님의 착한 종 2007. 11. 12. 08:42

11 12일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1독서 : 지혜 1,1-7

지상의 통치자들이여 정의를 사랑하여라.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순진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아라.

주님을 떠 보지 않는 사람들이 주님을 찾게 되고

주님은 당신을 불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신다.

사악한 생각을 가진 자들은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고

전능하신 분을 시험하려는 어리석은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한다.

지혜는 간악한 마음 속에 들지 않으며

죄로 물든 몸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를 가르쳐 주시는 성령은 거짓을 물리치고

지각 없는 생각을 멀리하시며 악을 일삼는 자로부터 떠난다.

지혜는 사람을 사랑하는 영이다.

그러나 신성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그의 뱃속을 꿰뚫어 보시고

그의 마음을 들여다 보시며

그의 하는 말을 듣고 계신다.

주님의 성령은 온 세상에 충만하시며 모든 것을 포괄하는 분으로서

사람이 하는 말을 다 알고 계신다.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복음 : 루가 17 1-6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죄악의 유혹이 없을 수 없지만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다.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잘못을 저지르거든 꾸짖고

뉘우치거든 용서해 주어라. 그가 너에게 하루 일곱 번이나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그 때마다 너에게 와서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니까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지옥이란 타인과 단절된 자기 자신>

 

용서란 주제로 어떤 신부님께서 강론을 하고 계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강론을 생동감 있게 해보려고 신자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혹시 형제자매님들 가운데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신 분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신자석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썰렁하고 난감한 침묵만이 맴돌았습니다.

 

‘누군가 반드시 한 명은 있겠지’ 했었는데, 단 한 명도 손들지 않으니

신부님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절박한 목소리로 신부님께서 다시 외쳤습니다.

 

“정말 아무도 없습니까?

옆 사람 눈치 보지 마시고 소신껏 손들어 보세요!

 

그때, 저 뒤에서 한 할아버님께서 힘겹게 손을 드셨습니다.

 

겨우 곤경에서 빠져 나온 신부님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님께 다시 질문했습니다.

 

“할아버님, 정말 대단한 신앙인이십니다.

어쩌면 그렇게 용서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잘 실천하고 계십니까?

어떻게 그 어려운 용서가 가능했는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셨으면 더 이상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었는지 잠깐 말씀해주시지요.

 

얼마나 연세가 많이 드셨던지 할아버님께서는 힘겨운 목소리로

겨우 말씀하셨습니다.

 

“응, 많았는데···이젠 다 죽었어.

대단한 신앙인은 무슨 대단한 신앙인?

 

우리가 끊임없이(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단순한 기쁨’에서 피에르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쓰고 계십니다.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사르트르는 썼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반대라고 확신한다.

타인들과 단절된 자기 자신이야말로 지옥이다.

 

한 울타리 안에 살아가면서,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가면서

상처와 아픔이, 그로 인한 고통이 전혀 없다면

그것은 좀 특별한 경우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한편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완전히 죽이고 살아가는 일방적인 관계이거나,

아예 서로를 외면하거나 무시하며 살아가는 비정상적인 관계 맺음일

경우가 그러하지요.

 

가족구조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제대로 한번 살아보려는 사람들에게

관계 안에서의 상처는 필수적인 것이기에,

거기에 따르는 용서 역시 필수적인 것입니다.

 

용서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과목’입니다.

일상생활 안에서 밥 먹듯이 되풀이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때로 태연하고 무심하게

반복되어야 할 삶의 의무가 용서입니다.

 

타인으로 인해 상처받고 타인과 단절된 자신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도

용서는 필수입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또 이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지름길 역시 용서입니다.

 

지옥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그 순간의 삶입니다.

 

‘용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용서 못 한다’는 마음,

억울한 마음, 복수심으로 가득한 마음, 꽁한 마음, 옹졸한 마음을

유지한 채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지옥에 있는 것입니다.

 

다음의 글귀를 한번 묵상해보십시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존재, 모순적인 존재, 이중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용서해야만 하는 불쌍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보다 쉽게 용서가 가능할 것입니다.

 

“나는 인간의 마음이 상처 입은 독수리 같다고 여긴다.

그림자와 빛으로 짜여져, 영웅적인 행동과 지독히도 비겁한 행동

둘 다 할 수 있게 있는 게 인간의 마음이요,

광대한 지평을 갈망하지만 끊임없이 온갖 장애물에, 대개의 경우

내면적인 장애물에 부딪치는 게 바로 인간의 마음인 것이다.

(피에르 신부, ‘단순한 기쁨’)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상처 입은 독수리’들을 만나

끊임없는 죄의 용서를 통해 그들에게

희망을 다시 안겨주던 치유자이셨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