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마음으로 듣기
(가톨릭 인터넷 김 학선 님).
제가 어릴 적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니까
여섯 살이나 일곱 살쯤 되었을 거예요.
아버지께서 군대 생활을 강원도 인제에서 하신 까닭으로
저도 거기에서 얼마간 머물렀습니다.
어느 날 밤에 부모님은 저를 데리고 어디론가 외출을 하셨고,
그곳에서 나와서 아버지는 저에게 어머니와 다른 곳에 볼일이 있다고
하시면서 혼자서 집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훗날 그 지역에서 군대생활을 해서 알지만 그곳은 첩첩 산중에다
밤이면 불빛도 없는 암흑지역인데 하물며 40년도 더 지난 그 시절이야
오죽했겠어요?
혼자 집을 찾아가라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내가 마치 어둠 속에 버림받은 것 같은 비참한 느낌이 들었지만
남자는 씩씩해야 한다는 말에 세뇌 당한 탓인지
눈을 크게 부릅뜨고 집을 찾아 발걸음을 떼었지요.
제 발길이 나갈 앞 방향은 그저 바다같이 거대한 어둠뿐이었습니다.
하늘엔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이 있었지만
하늘의 별들 때문에 내가 걸어 가는 지상의 어두움의 농도가
상대적으로 더 깊고 짙을 뿐이었습니다.
어둠마저 훅 불어 꺼버린 절대의 어둠 속을 그렇게 걸어서 집까지 왔습니다.
가슴속엔 어둠 속에 혼자 버려졌다는 깊이 모를 슬픔과 분노를 품고..
그렇게 혼자서 말이지요. 속으로 많이 울었지만
그 후론 어느 누구 앞에서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곤 그 슬프고 비참한 느낌은 내 가슴의 깊은 심연 속에 묻어두고
살았고 그러다 보니 어른이 되어 있었습니다.
결혼해서 15년쯤 되었을 겁니다.
아내가 성당에서 토요일에 시작해서 일요일 오후 다섯 시쯤에 마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겠다고 부탁을 해서
그러지 않아도 아이들 키우느라 힘들어 하는 아내에게 쉴 틈도 주고
정신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승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은 워낙 밤 늦어서야 끝나도록 프로그램이 짜여져
그런대로 이해가 되었지만,
일요일에는 오후 5시 정도에 마치도록 되어 있었기에 늦어도 6시 경에는
아내가 집에 도착하리라고 짐작을 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돌아오질 않는 거예요.
8시쯤에 아내가 전화를 해서 프로그램이 지연되는 바람에 더 늦어질 것
같다는 말에 까닭 모를 분노가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게다가 차편이 없는 노인들을 댁까지 모셔다 드리고 나면
11시가 넘을지도 모르겠다고 할 때는
더 견딜 수가 없어서 전화통이 부서지도록 수화기를 내려 놓았어요.
그 후 3시간 이상을 전 지옥 속에서 살았습니다.
T V를 껐다 켰다 하면서 T V에 시선을 주어도 마음은 여전히 벌겋게
타는 석탄 난로 위에 올려져 있는 물 주전자처럼 펄펄 끓어 올랐습니다.
동네 어귀까지 갔다가 돌아오길 몇 차례를 했는지 모릅니다.
결국 11시가 훨씬 넘어서 돌아온 아내에게 펄펄 끓는 물을 끼얹듯이
분노를 퍼부었죠.
그렇게 강한 분노의 에너지가 제 속에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지요.
훗날 아내와 저는 느낌대화를 하면서 그날의 분노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앞에서 말씀 드렸던 제 어린 날의 상처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꺼내어 볼
수 있었습니다.
버림받았다는 그 슬프고도 비참한 느낌이..
그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슬며시 또아리를 틀고 나타나 저를 분노로
불타게 했던 겁니다.
어린 시절 제 비참했던 느낌을 듣던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저를 안으면서
“그랬었구나 나 당신 맘 알 것 같아요.” 하고 한 마디만 했을 따름인데
제 속에 어려서 받았던 상처와 아픔들이 눈물과 함께 주르르
흘러나왔습니다.
저요, 요즈음은 끄떡하면 잘 울어요.
법구경이라고 기억되는데
‘녹은 쇠에서부터 생겨 났지만 점차 그 쇠를 먹는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분노는 자신의 맘 속에서 생겨 나는데
그것이 커지면 자신뿐만이 아니라 이웃까지 파멸로 이끄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게 합니다.
마음의 상처를 가진 이웃들의 마음의 소리를 잘 들어주는 사랑의 귀가
한 사람뿐이 아니라 세상을 밝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