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 다른 현장] 인터넷 창업 몰 '매직시스템'대표 이남희 씨
지옥에서 천당까지, 온탕과 냉탕. 극과 극을 뜻하는 단어는 수두룩하다. 하지만 매직시스템의 이남희(43) 대표는 이런 단어를 듣고 볼 때마다 묘한 미소를 짓는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가 발생한 지 딱 10년째죠. IMF는 제게도 특별합니다." 그는 당시 부산의 중소기업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식품가공 기계를 만드는 회사였다. 하지만 IMF 체제라는 괴물은 작은 회사의 알량한 영업사원조차 거리로 무참히 내몰았다.
"겨울이었잖습니까. 보일러 멜로디가 울리는데 1만원짜리 한 장만 있어도 콜라병 들고 석유를 사러 가고 싶었어요." 이후 남(?)들처럼 포장마차도 해보고 택시도 몰았다.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탐탁지 않았다. 돈이 돌아야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택시도 탈 테지만 실제 상황은 그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가 그처럼 실업자였다. "그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실업자를 상대로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죠." 아이디어를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일자리 정보를 모아 가정까지 우편으로 배달해 주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녹록지 않았다. 아이디어는 참신했지만 현실의 벽이 너무 컸다. 구인·구직의 통계를 만들고 정보를 유통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몇 개월을 더 버티다 결국 사업을 접었다.
"그 다음에 시작한 것이 '인터넷 창업 몰'입니다. 지금의 매직시스템이죠." 오프라인 취업에서 온라인 창업으로의 아이템 전환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컴퓨터활용 능력이 문제였다. "말 그대로 컴맹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물러설 수도 없었다. 벼랑 끝 심정으로 컴퓨터를 배웠다. 독하게 공부하자는 '독학(毒學)'이었고 혼자서 터득하자는 '독학(獨學)'의 과정이었다. 사실 그는 이전부터 독학에 능했다. 경북 안동 출신인 그는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고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이후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치렀고 대학도 방송통신대학 법학과를 다니다 3학년 때 포기했다.
"창업정보 사이트는 시작이 좋았습니다. 외환 위기가 절정에 이를 무렵이었으니 창업을 하겠다는 사람도 구직자만큼 많았죠." 사이트를 개설한 지 3개월 만에 하루 방문객이 3천명을 웃돌았다.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고 그때부터 다양한 아이디어로 승부수를 띄웠다. 주식지수처럼 흐름과 시세를 한눈에 보여주는 '창업지수'를 개발하기도 했다. "어떤 업종이 지금 뜨고 있는지, 어떤 업종이 쇠락기에 접어들었는지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보여주는 아이템이었습니다." 이 아이템은 나중에 특허로 등록했다.
사이트 신뢰가 쌓이면서 접속 건수도 크게 늘었다. 하루 10만건 이상이 접속한 경우도 허다했다. 당연히 광고와 사업 제휴가 잇따랐다. "가맹점을 모집하려는 프랜차이즈 광고가 넘쳤습니다." 거의 5년 동안 창업 사이트 전국 1위를 고수했다고 그는 자랑했다. 그것도 2위와 현격한 차이를 둔 1위였다. 국내 전체 사이트 순위에서도 200위권을 넘나들었다. "모니터만 보고 있으면 돈이 들어왔습니다. 월 순수익이 1억원을 웃돌았죠." 직원도 15명까지 늘렸다.
하지만 온탕에 늘 있을 수만은 없었다. 3년 전부터 다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사이트 접속 건수도 1만건 내외로 뚝 떨어졌다. "광고 가격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굳이 접속 건수를 늘려야 한다는 절박감도 없습니다."
그는 IMF 이후 번성일로를 달려온 창업이 최근 한풀 꺾인 상태라고 진단했다. "지금 자영업의 35%가 생계형입니다. 마지못해 가게 문을 열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만두고 싶어도 대안이 없고 가게를 팔아넘길 수도 없는 상황이죠."
그는 대뜸 책꽂이의 두툼한 책들을 가리켰다. 아직 제본되지 않은 상태의 10여권이었고 줄잡아 수천쪽은 될 듯했다. "IMF 이후 설립된 자영업 리스트입니다. 아마 1만개 업체는 족히 될 겁니다. 그런데 이들 업체가 다 망했습니다." 이른바 '망한 자영업 리스트'였다. 그 망한 업체의 리스트를 애써 모아둔 이유로 그는 "자영업의 성공이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최근 사이트 운영과 더불어 창업 강의에도 나서고 있다. 강의의 대부분은 서울과 경기도 일대의 대학과 기업이라고 했다. 부산·경남지역보다 아무래도 수도권의 창업 열기가 여전히 더 높기 때문이었다. "한여름을 제외하면 월 10일가량을 창업 컨설팅 및 강의로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또 다른 기회를 엿보고 있다. '실패 속에서 성공을 찾고 위기가 곧 기회'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창업을 처음 하려는 사람일수록 음지보다 양지만을 보려는 속성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양지보다 음지를 제대로 꿰뚫어 봐야 성공 확률이 높습니다." 전국 최고의 창업 정보 사이트를 운영해온 그의 '7전8기 창업론'이다. 백현충기자 choong@busanilbo.com
"위기가 곧 기회, 실패 속에서 성공 찾았죠"
IMF 때 중소기업 영업사원서 퇴출… 독학으로 사이트 개설
5년간 고수익 올리며 사업 번창… 광고 부족으로 최근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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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가 발생한 지 딱 10년째죠. IMF는 제게도 특별합니다." 그는 당시 부산의 중소기업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식품가공 기계를 만드는 회사였다. 하지만 IMF 체제라는 괴물은 작은 회사의 알량한 영업사원조차 거리로 무참히 내몰았다.
"겨울이었잖습니까. 보일러 멜로디가 울리는데 1만원짜리 한 장만 있어도 콜라병 들고 석유를 사러 가고 싶었어요." 이후 남(?)들처럼 포장마차도 해보고 택시도 몰았다.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탐탁지 않았다. 돈이 돌아야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택시도 탈 테지만 실제 상황은 그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가 그처럼 실업자였다. "그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실업자를 상대로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죠." 아이디어를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일자리 정보를 모아 가정까지 우편으로 배달해 주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녹록지 않았다. 아이디어는 참신했지만 현실의 벽이 너무 컸다. 구인·구직의 통계를 만들고 정보를 유통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몇 개월을 더 버티다 결국 사업을 접었다.
"그 다음에 시작한 것이 '인터넷 창업 몰'입니다. 지금의 매직시스템이죠." 오프라인 취업에서 온라인 창업으로의 아이템 전환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컴퓨터활용 능력이 문제였다. "말 그대로 컴맹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물러설 수도 없었다. 벼랑 끝 심정으로 컴퓨터를 배웠다. 독하게 공부하자는 '독학(毒學)'이었고 혼자서 터득하자는 '독학(獨學)'의 과정이었다. 사실 그는 이전부터 독학에 능했다. 경북 안동 출신인 그는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고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이후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치렀고 대학도 방송통신대학 법학과를 다니다 3학년 때 포기했다.
"창업정보 사이트는 시작이 좋았습니다. 외환 위기가 절정에 이를 무렵이었으니 창업을 하겠다는 사람도 구직자만큼 많았죠." 사이트를 개설한 지 3개월 만에 하루 방문객이 3천명을 웃돌았다.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고 그때부터 다양한 아이디어로 승부수를 띄웠다. 주식지수처럼 흐름과 시세를 한눈에 보여주는 '창업지수'를 개발하기도 했다. "어떤 업종이 지금 뜨고 있는지, 어떤 업종이 쇠락기에 접어들었는지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보여주는 아이템이었습니다." 이 아이템은 나중에 특허로 등록했다.
사이트 신뢰가 쌓이면서 접속 건수도 크게 늘었다. 하루 10만건 이상이 접속한 경우도 허다했다. 당연히 광고와 사업 제휴가 잇따랐다. "가맹점을 모집하려는 프랜차이즈 광고가 넘쳤습니다." 거의 5년 동안 창업 사이트 전국 1위를 고수했다고 그는 자랑했다. 그것도 2위와 현격한 차이를 둔 1위였다. 국내 전체 사이트 순위에서도 200위권을 넘나들었다. "모니터만 보고 있으면 돈이 들어왔습니다. 월 순수익이 1억원을 웃돌았죠." 직원도 15명까지 늘렸다.
하지만 온탕에 늘 있을 수만은 없었다. 3년 전부터 다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사이트 접속 건수도 1만건 내외로 뚝 떨어졌다. "광고 가격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굳이 접속 건수를 늘려야 한다는 절박감도 없습니다."
그는 IMF 이후 번성일로를 달려온 창업이 최근 한풀 꺾인 상태라고 진단했다. "지금 자영업의 35%가 생계형입니다. 마지못해 가게 문을 열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만두고 싶어도 대안이 없고 가게를 팔아넘길 수도 없는 상황이죠."
그는 대뜸 책꽂이의 두툼한 책들을 가리켰다. 아직 제본되지 않은 상태의 10여권이었고 줄잡아 수천쪽은 될 듯했다. "IMF 이후 설립된 자영업 리스트입니다. 아마 1만개 업체는 족히 될 겁니다. 그런데 이들 업체가 다 망했습니다." 이른바 '망한 자영업 리스트'였다. 그 망한 업체의 리스트를 애써 모아둔 이유로 그는 "자영업의 성공이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최근 사이트 운영과 더불어 창업 강의에도 나서고 있다. 강의의 대부분은 서울과 경기도 일대의 대학과 기업이라고 했다. 부산·경남지역보다 아무래도 수도권의 창업 열기가 여전히 더 높기 때문이었다. "한여름을 제외하면 월 10일가량을 창업 컨설팅 및 강의로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또 다른 기회를 엿보고 있다. '실패 속에서 성공을 찾고 위기가 곧 기회'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창업을 처음 하려는 사람일수록 음지보다 양지만을 보려는 속성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양지보다 음지를 제대로 꿰뚫어 봐야 성공 확률이 높습니다." 전국 최고의 창업 정보 사이트를 운영해온 그의 '7전8기 창업론'이다. 백현충기자 choong@busanilbo.com
출처 : 생생소호무역 양천삼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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