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의 결혼반지> -TV동화 행복한 세상-
나는 아버지가 쉰 되던 해 태어났습니다.
말 그대로 늦둥이인 나를 부모님은 끔찍이도 아끼셨습니다.
말 그대로 늦둥이인 나를 부모님은 끔찍이도 아끼셨습니다.
“어이구 이놈 커서 장가갈
때까지는 살아야 할 텐데...”
하지만 다 늙어 얻은 아들 업어주랴 안아주랴,
논밭에 엎드려 허리 휘도록 일하랴,
늘 허덕이던 부모님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차례로 세상을 뜨셨습니다.
그때부터 늦둥이 뒷바라지는 큰형님 내외의 차지가 되버렸습니다.
큰형 내외는 시장모퉁이에 있는 손바닥만한 가게에서 야채를 팔고
꽁보리밥과 국수로 끼니를 때우며 나를 대학공부까지 시키셨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장교로 입대한 나는 결혼을 약속한 사람과 함께
큰형님 내외를 찾아갔습니다.
“나한테는 부모님 같은 분들이야. 인사 드려.”
어렵게 공부를 시켰으니 이제 조카들 등록금쯤은
책임져야 마땅할 동생이 결혼을 하겠다니 실망이 크셨을 테지만,
두 분은 사랑에 눈이 먼 동생의 앞길을 그저 축하해 주셨습니다.
두 분은 사랑에 눈이 먼 동생의 앞길을 그저 축하해 주셨습니다.
전방근무중이라 이런저런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맞이한 결혼식날.
큰형님 내외와 전투복을 입은 채 달려온 전우들의 축복 속에
식이 시작되고 굳은 서약의 징표로 반지를 나눠 낀 뒤,
주례사가 이어졌습니다.
“예, 방금 신랑신부가 나눠 낀 사랑의 반지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동생을 훌륭하게 키워낸
큰형님 부부의 결혼반지를 녹여서 만든 것입니다.”
가난한 시동생을 위해 어버이보다 더 깊은 사랑을 베푼
형과 형수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동안,
결혼식장은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나는 눈물을 삼키며 결심했습니다.
결혼반지를 녹여 다시 굳혀낸 형님과 형수님의 그 뜨거운 사랑을
죽어도 죽어도 잊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 <역사시험>
어느 학교의 역사시험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가 출제되었다.
“조선시대 신분 계급 중 가장 낮은 계급은?”
그런데 이 문제는 TV에서 인기 있는 사극 드라마를
한 번만 보았어도 충분히 맞힐 수 있는 쉬운 것이었다.
정답은 물론 “천민”이었다.
답안을 채점하던 선생님은
기상천외한 답을 발견하곤 뒤로 넘어졌다.
어떤 학생의 답안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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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쇤네’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픈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마음을 순화시켜야겠네요.
Sous Le Ciel De Paris (파리의 하늘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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