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속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급변하는 환경에서 나이든 사람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급기야 외환위기라는 괴물의 내습으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나이 많은 사람은 직장에서 대거 퇴출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의 인생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두 번째 청춘을 만끽하고 있 는, 육순에 접어든 몇몇 지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H씨.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번듯한 회사에 취직하여 삼십 년 가까이 성실하게 일하 고 능력도 인정받아 부장을 거쳐 국장까지 오른 그에게도 외환위기의 한파는 예외 없이 닥쳐왔다. 퇴직금 외에 약간의 웃돈을 받고 명예퇴직이라는 '불명예' 퇴진을 당한 것이다. 이제 막 뜻을 펼칠 만한 때에 일을 접어야만 한다는 아쉬움보다 평생 을 남편만 믿고 고생한 아내의 처연한 얼굴과 몇 년만 더 뒷바라지하면 반듯한 사 회인이 될 두 아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왜 하필 나여야 하는가' 하는 억울함이 분 노와 배신감으로 번져 며칠을 술로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하는 걱정과 좌절이 앞섰지만, 가족의 격려 속에 눈높이를 최대한 낮춰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정직하게 쓴 이력서로는 단순 반복적인 저임금 직종의 취업에 번번이 퇴짜를 맞다가 부담될 만한 경력을 생략한 축약판 이력서를 낸 결과 몇 달 후 취직이 되었다.
아파트 경비직으로….
하느님이 제일 싫어한다는 것이 '깐죽거리고 건방떠는 자'라는데, 그게 바로 자기 였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이 참에 과거의 잘못도 속죄할 겸 딱부러지게 일해보 겠다고 단단히 결심을 하고 '친절봉사'를 모토로 출근했다.
사모님들의 업신여김과 잡상인들과의 씨름, 주차전쟁의 중재 역할 등 많은 어려움 도 시간이 지나면서 쉽게 적응할 수 있었고 입주자회의에서 우수 근무자로 선발되 어 금일봉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시에 받게 된 소방점검에서 아파트 관리소장이 곤욕을 치르고 있던 차에 점검 나온 출장자들과 우연히 얼굴을 마주치자 그들에게 부장님, 교수님 호칭과 함께 깍듯한 예우를 받으며 원만하게 일이 수습됐다.
그들은 예전 H씨의 까마득한 부하직원이었고, 연수원시절의 제자들이었다. 능력 있 는 상사였고 열성적인 교수였던 H씨의 새로운 인생이 그들에게는 감동적이었을 것 이다. 이로 인해 그의 전력이 노출되긴 했으나 평소의 성실함에 더해 입주민들에게 존경까지 받게 되었다. 관리소장의 임기만료 후 일약 관리소장으로 발탁되는 행운 도 돌아왔다.
C씨. 그 역시 대통령도 부러워할 만한 학교를 졸업한 후 종합상사에서 수출입국의 첨병 노릇을 하다가 대우실업, 율산실업의 신화가 이루어지던 당시 분위기에 휩쓸 려 창업대열에 뛰어들었다.
사업이라는 것이 능력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이라는 게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 이 어렵다고 하는데, 그에게도 무언가 부족하여 몇 년의 고생 끝에 회사를 접으면 서 '백수'대열에 합류했다.
간단치 않은 세월을 보내는 동안 가족과도 이별하고 고립무원인 채 홀로서기에 고 심하던 차에 희소식이 날아왔다. 알고 지내던 출판사의 호의에 힘입어 외국서적 번 역가로 데뷔하게 된 것이다. 두 권의 신간이 출판되어 호평을 받자 욕심을 내어 밤 샘작업을 하다 과로로 인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1년이 넘는 투병 끝에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고 주위 동료들의 보살핌이 계기가 되어 세상이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으며 감사하는 마음과 겸손해지는 망외 소득 도 얻게 됐다.
다시 한 번 그에게 기회가 왔다. 서울 근교의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교육기관 선생 님으로 초빙된 것이다.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평소 즐겨하던 오르간 연주 실력이 뒷받침돼 취미활동과 컴퓨터 교육을 맡기로 했단다.
단칸방의 숙소 제공과 최저생계비 수준의 보수이긴 하지만 육순에 접어든 그에겐 남은 생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할 마지막 기회가 온 것이다. 외롭게 혼자 지내 야 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영혼을 감동시킬 음악을 골라야 하고, 고국의 소식을 접하고 멀리 있는 친지와 연락할 수 있는 컴퓨터를 어떻게 쉽게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설렘에 들떠 있는 요즘이다. 인생 최고의 봄날을 맞은 것이다.
A씨. 그는 오늘도 새벽을 뚫고 농장으로 나간다.
한 그루에 1000원, 2000원밖에 쳐주지 않아도 새 생명을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성을 쏟던 묘목이 팔려갈 때는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심정이 되어 '좋은 데 가서 잘 자라다오' 빌어보기도 한다. 한때 알찬 중소 건설회사를 운영하던 그는 나 이가 들자 더 이상의 격렬한 몸싸움에 자신이 없어져 사업을 접기로 결심했다.
제주도로 내려가 자연에 묻히자는 낭만적이고 치기어린 꿈을 실현하기로 결단을 내 리고 감언이설로 부인을 꾀는데 성공한 그는 우선 집을 옮긴 후 나름대로의 시장조 사와 전문가 지도를 받아 5000여 평의 농장터를 구입했다.
건설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에게 땅을 갈아엎고 공사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 만 인근 주민들과 어울리고 땅은 정직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5년의 세월이 필요 했다. 새 인생을 시작하는데 꽤나 비싼 수업료를 낸 셈이다. 몸은 고달프지만 하루 하루가 즐겁단다.
이들 세 사람에게 '화려한 부활'이라는 과장된 찬사를 보내고 싶다.
우리가 주인공 노릇을 했던 과거는 잊고 무대에서 뛰노는 후배들에게 박수를 쳐 주 고,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놓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그들이 부럽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5060세대'가 사회를 등지고 떠난 것은 아니다. 힘들고 어 려운 것을 젊은이들에게 물려준 것뿐이다. 경륜을 가진 우리가 그들을 감독하고 질 책해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것 아닌가.
[이수문 하츠 대표]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