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밤이었다.
어느 교우 두 분이 회합을 마치고 내 방에 들어와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중 한 분이 잠깐 혼자만의 시간을 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가끔 방에서 고해성사를 준적이 있기 때문에 그런줄로 알았다.
그런데 그분은 의외로 흰 봉투를 내 책상위에 놓았다.
그것은 거의 일년 교무금에 해당할 만큼 큰 액수의 돈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거절을 했다.
돈을 받을 만큼 궁핍하지도 않을 뿐아니라,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이유에서 였다.
그러자 그 교우는 당황하며 마음의 정성을 거절하지 말아달라고
굽히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돈을 가장 유익한 방법으로 사용하기로 다짐하면서
받았다.
한 사람이 생각났다.
아주 명랑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명랑하고 생활에 그늘이 없어 보이던 그가
바로 며칠 전에 밤늦도록 자신의 얘기를 한 일이 있었다.
그처럼 언제나 명랑한 사람에게도 눈물이 있었고...
그의 안스러운 생활에 보탬이 될 수 없었던 내 처지가 초라하게
느껴졌었다.
바로 그 사람이 성당 구내에 있는게 아닌가!
꼬마를 시켜서 잠깐 들르시라고 전했다.
언제나 처럼 웃는 낯으로 그는 들어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담배를 권하면서 얘기를 꺼냈다.
“우선 이것을 받으십시오.
이것은 누군가가 방금 당신을 위하여 놓고 간 겁니다.
이 다음에 하느님 대전에서 그분의 공로가 커지도록
그분의 이름은 밝히지 맙시다.
그건 그분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깜짝 놀라면서 몇 번이나 사양을 했지만
마침내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신부님,
이것을 제가 받았으니까 얘기하겠습니다.
실은 제가 지금 감기에 걸려서 겨우겨우 회합에 나왔습니다.
아이들도 아파서 누워있습니다.
약국에서 외상으로 약을 구입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빚이 밀려 있어서 그럴 염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까까지 오늘 저녁 회합에서
누구에게 아이들의 약값을 빌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마침 성당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저는 무조건 들어가 불을 다 끄고 혼자 꿇어 앉아 기도했습니다.
하느님은 어찌 이렇게도 저에게 시련을 내리시는가...!
떼를 쓰고 있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대답이 없으신 하느님이 원망스러웠던 것입니다.”
정말 우연한 일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그건 바로 하느님의 손길이라 생각되었다.
내가 만일 그 돈을 내 맘대로 사용했다 하더라도
아무도 나에게 손가락질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경우에는
나는 하느님의 손길을 가로막은 것이 되고 만다.
누구에겐가로 향했던 하느님의 손길을……,
( 김 영교 신부님 글 )
'하늘을 향한 마음 > 마음을 열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다섯살에 엄마가 된 이야기 (0) | 2007.07.16 |
---|---|
울타리 없는 어린이 대공원 (0) | 2007.07.16 |
어느 산부인과 간호사의 고백 (0) | 2007.07.12 |
3소」부인과「4쇠」남편 (0) | 2007.07.12 |
세상을 보게 해 주는 창문(좋은 글, 반딧불에서 담습니다.) (0) | 2007.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