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테스트
고등학교 때 피정(避靜)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프로그램 첫머리에 한 수녀님께서 자리에 모인 우리에게
시험지를 나누어 주며 3분 안에 풀라고 하셨습니다.
받아 보니 맨 위에 '끝까지 다 읽어 보고 문제를 푸시오' 라고 쓰여 있고
그 밑에 꽤 많은 문제들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수녀님은 초 시계를 꺼내 "5초, 10초" 하며 시간을 재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라는 것이 고작 숫자를 쓰라거나, 동그라미를 그리라거나,
이름을 거꾸로 써 보라는 등 피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듯한
것들이었지만 누구 하나 의문을 제기하거나 투덜거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째깍째깍 초침 소리를 의식하며 모두들 최대한 빠르게
연필을 움직일 뿐이었습니다.
3분이 다 되어갈 무렵 여기저기서 "어머나!"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맨 끝 문항을 보는 순간 내 입에서도 절로 "어머나!"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끝까지 읽어보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문제를 풀 필요는 없습니다.
시험지에 이름만 쓰십시오."
당혹해 하는 우리를 보고 수녀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지 첫머리에 끝까지 다 읽어 보고 풀라고 쓰여 있는데
무엇이 그렇게 급하셨나요?
내가 시간을 재고 있고 옆 사람이 열심히 푼다는 이유로
그 문제들을 서둘러 풀었나요?
남들이 다 탄다는 이유로 목적지도 모르는 기차에 올라탄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이 '3분 테스트'의 교훈이었습니다.
'왜?' 라는 질문 없이 그저 바쁘게 움직이는 것,
방향 감각 없이 빠른 속도에 휘말리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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