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91 년 上海 교통학교와 태평양 직업기술 학교를 합자로 설립하였으나 정작 졸업생들이 대학교 시험을 치를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여러 차례 정부 관리들에게 하소연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학교의 문을 닫고 인민폐 3,000 만元 (한화 40 억원 상당)을 날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 사실이 해방일보와 인민일보에 보도되자 중국 각지로부터 많은 초청장이 날라 왔다. 그 중 四川省 成都에서 온 8 쪽의 긴 편지는 林志昇을 크게 감동시켰다. 그를 더욱 깜짝 놀라게 한 것은 成都를 방문했을 때이다.
1994 년 그가 탄 비행기가 成都 공항에 도착했을 때 成都市
공항을 나서자 10 대의 경찰 차량이 요란하게 교통 통제를 하며 그의 차량을 캄보이 하였다. 王市長은 그의 옆에 앉아 열정적으로 말했다. " 成都시는 모든 노력을 다하여 당신의 학교 설립 꿈을 지원해 주겠다. 그리고 완전히 당신의 방식대로 가르치게 하겠다. 그리고 절대로 간섭하지 않겠다. 상해에서와 같은 불행은 발생하지 않을 테니 절대로 안심하기 바란다. "
林志昇은 그해 오랫동안 문을 닫아 잡초가 무성한 匯德중학을 사들여 成都 태평양 학교로 이름을 바꿔 운영하였다. 그리고 1998 년에는 경영이 중단된 嘉好 실험학교를 구매해서 1999 년 恩立德 대학으로 설립하였다. 2000 년에는 귀족 유치원인 星星 외국어 학교를 설립했다.
그는 1-2 명의 학생들을 북경대학이나 청화대학 등 유명 대학에 입학시켜 지명도를 높였고 대학 진학률을 전체적으로 크게 높였다. 그의 학교는 1 년 학비를 인민폐 2 만元 (한화 260 만원 상당)을 받았지만 수많은 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가 세운 몇 개 학교의 학생수가 2 천명을 넘어섰다. 수입규모는 인민폐 4,000 만元 (한화 52 억元 상당)에 달했다.
그가 돈을 벌기 시작하자마자 골치 아픈 문제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1998 년 嘉好 실험학교를 세울 때 인민폐 3,200 만元을 주고 구매했는데 이중 800 만元은 설립자인 鄒嘉에게 지불하고 나머지 2,400 만元은 설립자 鄒嘉의 채무를 모두 갚아 주었다.
그러나 2000 년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차용증들을 끝없이 들고 나타나 鄒嘉의 채무를 갚아 달라고 소란을 피웠다. 鄒嘉는 숨어 버리고 나타나지 않았다. 채무자들의 행패로 학생들이 수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현지 정부는 우선
그러자 또 楊씨라는 사람이 인민폐 380 만元 (한화 5 억원 상당)짜리 차용증을 가지고 나타나 돈을 갚아달라고 횡포를 부렸다. 林志昇이 지불을 거부하자 楊씨는 법원에
사태가 악화되자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가 문을 닫는 것으로 생각하고 학교로 찾아와 학비를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모든 돈은 법원이 압류해 가서 돌려 줄 돈이 없었다. 그러자 학부모들은 액자를 뜯어내고 골동품을 부수고 컴퓨터를 내던지며 횡포를 부렸다.
林志昇은 어쩔 수없이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대만에서 자금을 빌려다가 이들을 갚아 주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林志昇이 아직도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일부 깡패들이 그를 볼모로 잡아가 두들겨 패며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였다.
그는 " 내 돈은 이미 법원에 압류되어 있으니 당신들이 법원의 서기관을 설득하면 돈을 찾아 올 가능성도 있다." 라고 말했다. 깡패들은 그를 끌고 서기관에게 데리고 갔다. 깡패들이 잠시 부주의한 틈을 타서 그는 서기관에게 쪽지를 건냈다. " 내가 볼모로 잡혔으니 경찰에 신고해 주세요. "
그러나 법원의 서기관은 깡패들에게 쪽지를 펴 보이며 " 나에게 경찰에 신고해 달란다. 신고할까 ? " 라며 林志昇을 놀렸다. 그러자 깡패들은 " 좋아, 신고해라 " 라며 몇 명의 경찰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경찰들은 깡패들에게는 아무런 제제도 하지 않고 林志昇만을 때리고 감옥에 집어 넣었다. 그의 대만동포증, 여권 및 기타 신분증 자료를 모두 압수하였다.
그는 감옥에서 단식으로 항의했다. 그를 처음에 초청했던
" 그러면 왜 나의 모든 신분증을 빼앗아 갔는가 ? " 라고 묻자 " 증명서는 우리가 보관하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 라고 꼬리를 감췄다. 그는 2 주일 뒤 감옥에서 풀려났으나 4 명의 사복 경찰에 의해 집안에 갇혔다. 그리고 반년 동안 집안에 갇혀 문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한 기회를 잡아 탈출할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배를 타고 열차, 버스를 타고 필사적으로 멀리 도망쳤다. 대만동포증을 빼앗긴 그는 몰래 배를 타고 金門島로 탈출해 옴으로써 중국에서 학교를 운영하려던 꿈도 함께 버리고 왔다.
목숨만 건져 온 것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의 모든 재산은 가짜 차용증들에 의해 모두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자료원 ; 대만의 중국투자 피해자 협회 고위방 회장)
(작성 : kotra아카데미 중국전문 연구위원 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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