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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1년12월06일)

주님의 착한 종 2021. 12. 5. 23:52

오늘의 묵상(2021년12월06일)

 

 

한때 우리나라에는 빗나간 의리로 포장한

조폭영화가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청소년들이 조폭영화의

빗나간 의리를 모방하여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얼마 전에는 ‘으리’라는 말이 유행했었는데

모 배우가 광고 방송에서

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사나이다운 모습으로

의리를 ‘으리’라고 발음하여,

‘의리’ 대신 ‘으리’가 유명해졌지요.

 

 

의리라는 말은 본디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를 말하기도 하고,

인간관계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올바른 도리를 뜻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좋은 뜻을 가진 말이지요.

 

그런데 이 의리라는 말이

'의리 축구'니 '의리 공천'이니 하면서

가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말로

쓰이기도 하더군요.

의리라는 말의 불행이고,

우리 사회의 불행이기도 합니다.

 

옛 어른들은 평생에 좋은 친구가

한 사람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

말씀하셨는데.

그런 친구를 둘 이상 두었다면

세상이 부럽지 않다고 하시겠지요?

 

 

오늘 복음은 루카 5,17-26 입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중풍에 걸려 신음하고 있던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지만,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주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그는 자신의 병이 낫기를 희망하며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비록 몸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주님을 뵙겠다는 희망의 끈만큼은

놓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무엇을

간절히 바라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때가 왔습니다.

주님께서 그들 가까이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주저하지 않고 중풍 병자 친구를

들것에 싣고 주님께 데리고 갑니다.

 

 

사람이 많아도 아랑곳하지 않는군요.

 

친구의 일이라면,

주님을 만나 뵈려는 친구의 열망을

미루어지게 하려고 지붕에 올라가

천장을 뚫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중풍 병자와 친구들은 주님을 뵙는 일에

한 마음 한 뜻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셨고

 한 마음 한 뜻이 된 그들을 칭찬하시고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서두에 제가 친구며 의리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 친구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예수님께서 그 환자의 소원을 들어주신 것은,

그 친구들의 의리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공동체가 마음을 모아 구하면,

무엇이든지 주님께서는 모두 다

들어주신다는 것을 일깨워주시는 것이

오늘 복음의 핵심이 아닐까요?

즉, 개인은 공동체의 한 구성원일 뿐이지만,

각 개인이 서로 마음을 모을 때

큰 힘을 발휘하는 공동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당시의 통념상 당연히 논란의 여지가

넘치는 말씀입니다.

당연히 즉각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이의를 불러오게 되지요.

 

저 사람은 누구인데

감히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로서는 당연한 의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당하게 답하시며

또 물으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물론 “죄를 용서한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히 쉬울 것입니다.

 

일어나 가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하거니, 하지 못하거나,

바로 판명이 날 것이지만

 

죄룰 용서한다”고 하면 그렇게 말해도

죄가 용서되었는지’ ‘아닌지’

증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것은

아무나 말할 수 없겠습니다.

말씀 드린 대로 결과가 즉각

드러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기적의 말씀을 하십니다.

결코 아무나 ‘말할 수 없는 말씀’을 던지십니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그러자 중풍 병자가 벌떡 일어나 걸었습니다.

 

 

예수님의 ‘천상 능력’이 증명된 것이고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의 눈에도

그분께는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은

분명한 사실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인색해지면’

내면 세계는 굳어지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인색해진 바리사이들은

기적을 보고서도 마음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만큼 굳어 있기 때문이지요.

 

한의학에서는 ‘몸이 굳어지는 현상’을

불인(不仁)이라고 한답니다.

어질지 못하면 마비된다는 암시입니다.

 

 

잠시 생각해 봅시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상처가

치유되도록 돕기 위해

무엇을 하였나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내가 병자의 입장에 있다면

어떻게 치유를 청할까요?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여

내가 치유 받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각 개인이 서로 마음을 모을 때

큰 힘을 발휘하는 공동체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한 공동체가 되어

기도해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양 가온 데레사 어린이와

장옥심 로사리아 자매님을 비롯하여

여러분께서 기억하며 마음 아파하는,

병마와 싸우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주님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한 말씀만 하소서.

그러면 저들이 곧 나을 것입니다.

제 영혼도 곧 나을 것입니다.”

 

아멘.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