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2021년10월11일)
聖 김 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요나의 표징밖에는 보여 줄 것이 없다고 하시네요.
구약의 요나 예언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불만을 가집니다.
그리하여 예언자가 되기 싫어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뛰어야 벼룩이지요.
우스개 소리로 부처님 손 바닥에
손오공이라 할까요?
요나는 사흘 동안 물고기 배 속에 있다가
결국 하느님 앞에 승복하며 살아나고
결국은 ‘니네베’로 갑니다.
당시 니네베는 이방인의 큰 도시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요나가 할 일은 도시의 멸망을 예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요나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은 회개합니다.
요나 역시 긴가민가하고 예언했는데,
니네베 사람들은 즉각
뉘우침의 단식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듯 이방인들도 요나의 외침에
회개하기 시작하는군요.
예언자가 ‘되기 싫어했던’ 사람의 설교를
감동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뻔뻔하게 표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을 보여 주면 믿겠다고
조건을 달면서 말입니다.
스승님께서는 그들의 간교함을 꾸짖으십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믿음 없이’ 기적을 바라는 것을
‘악한 행동’으로 규정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엄청난 말씀입니다.
기적을 호기심의 대상으로 만들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기적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입니다.
누구나 기적의 장소에 가고 싶어 하겠지요.
비단 호기심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더욱 뜨겁게 기도하며
영적 목마름을 적셔 줄
시원한 체험을 갈구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어찌 잊고 있을까요?
미사를 통하여 기적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주님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갈증을 해소해 줄 은총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은 신기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매일매일을
‘기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일상의 기적’을 모르는 사람이
특별한 기적에 감동할 수는 없겠지요.
신기해할 수는 있어도 감동을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감동 역시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내 이야기 · 공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묵상(2021년10월13일) (0) | 2021.10.12 |
---|---|
오늘의 묵상(2021년10월12일) (0) | 2021.10.11 |
오늘의 묵상(2021년10월10일) (0) | 2021.10.09 |
오늘의 묵상(2021년10월09일) (0) | 2021.10.09 |
오늘의 묵상(2021년10월08일) (0) | 2021.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