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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1년08월01일)

주님의 착한 종 2021. 7. 31. 17:54

오늘의 묵상(2021년08월01일)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어제 저녁은 무척 바빴지요?

축구 보다가 야구 보다가

야구 보다가 축구 보다가

배구는 어떻게 되었나? 스마트 폰 보다가..

배구는 극적으로 이겼고

축구와 야구는 졌습니다.

그래도 잘 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높은 연봉을 받으며,

국민들의 성원과 인기를 누리고 있는 종목보다

친선경기를 할만한 다른 팀도 없고

그나마 언제 문을 닫을 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실업팀 안에서

이를 악물고 훈련을 했건만

그런 선수가 있었나?..

 

이런 선수들이 대한민국을

더 자랑스럽게 한다는 사실..

정말 딱하지 않습니까?

진심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어쨌든 오늘은 8월1일 연중 제18주일입니다.

8월에는 저희 가정에 경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작은 딸 소영 글라라가 자기를 닮은

예쁜 딸 아기를 낳을 거에요.

글라라도 8월 한 여름에 태어났지요.

 

노래 가사를 바꾸어야 되겠어요.

 

여름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을..

또는

8월의 어느 멋진 날에… 로요.

 

 

아기가 태어나면 실비아 마님이 바빠지겠지요.

두 손녀에, 또 손녀 하나..

아무리 힘들어도,

그래도 손녀를 돌보는 것을

기쁘게 감내할 수 있는 이유는

하느님이 모든 생물체에,

특히 인간에게 허락하신 사랑의 결정체

바로 모성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동물들의 본능적인 모성애가 아니라

내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 지속되는

어머니의 모성애.

바로 하느님의 인간 사랑을 닮은 완전한 사랑 .. 

 

 

오늘 말씀의 주제는 ‘생명의 빵’입니다.

모세는 마라에서 쓴물을 단물로 만들어

목마른 이스라엘 백성에게 먹이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불리 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심을 선언하십니다..

 

 

제1독서는 16, 2-4.12-15 입니다.

오늘 제1독서를 묵상하면서

얼듯 생각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뽀야입니다.

 

뽀야는 우리 집에서 13년을 살다가 떠난

견종이 비글인 강아지입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우리 집에 와서

가족들의 사랑 속에서 살다가

어디 아픈 곳도 없이 돌연히

어느 날 아침에 행복하게 떠났지요.

 

우선 제1독서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종살이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주님께 불평불만을 터뜨립니다.

어리석은 백성은 자기들을 살리시기 위해

해방시키시는 하느님의 계획보다는

자기들을 노예로 만들고 억압하는

지배자의 계획을 더 좋아하고

빵을 배불리 먹던 그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배고픔에 따른 그 유혹은

자유와 해방과 생명을 뿌리치고

이미 얻은 자유를 달콤한 노예살이에

다시 팔아 넘기고 싶은 유혹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침마다 먹을 만큼씩만

거두어들이게 만나를 내리십니다.

모든 사람은 필요한 재화를 모자라지 않게

차지할 권리를 갖습니다.

쓰고 남는 것을 쌓아 놓는 일은

탐욕과 불평등을 낳게 됩니다.

 

 

노예살이에서 해방되었어도

이스라엘은 주님께 불평을 터뜨립니다.

어리석은 백성은 해방의 주님보다

빵을 배불리 먹던 그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을

고통으로만 여기는 사람은

고통을 통해서 오는

주님의 은총을 받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고통을 통해서도

은총의 선물을 내리시는 분입니다.

 

 

우리 뽀야는 배고픔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식탐이 심해 체중이 불어

다이어트가 절실해서 마님과 딸들은

먹이를 줄였지만 저는 그게 마음에 걸려

갈비며 삼겹살이며 먹을 거리를 몰래 먹였습니다.

그리고는 산으로 공원으로 열심히

함께 다녀 살을 뺐습니다.

저도 뺴고 뽀야도 뺴고.

ㅎㅎ

 

우리 뽀야는 노예살이의 중노동도,

채찍질도 학대도 없이

실컷 먹고, 마음대로 낮잠 자고 했으니

이집트의 이스라엘과 비교하면

뽀야가 훨씬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요?

 

 

제2독서는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4, 17.20-24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이방인처럼 살지 말아야 합니다.

이방인들은 헛되고 부질없는 가치관을 가지고 삽니다.

하느님을 등진 인간은 하느님께 돌아서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진리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대로 듣고 배우고 행한다면,

어리석은 생활을 정리하고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리고 가치관을 새롭게 하여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새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사람이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만나면

새롭게 변화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새롭게 된 사람은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자유와 진리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사람이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만나면

새롭게 변화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행하면

주님의 새사람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새롭게 된 사람은

바르고 거룩한 생활을 합니다.

 

 

오늘의 복음은 요한복음 6,24-35입니다.

예수님께서 티베리아 호수 건너편에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러자 군중들은 예수님을 찾아 다닙니다.

배부름과 음식의 풍요로움을

계속 만끽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기들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거저 주어지는 부유함을 누리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삶을 추구하려는 인간들에게

스스로의 노력을 요구하십니다.

육체적 생명을 위한 양식 외에도

예수님께 인격적으로 의존하고 매달려야만

참 양식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참된 양식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빵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빵을 많게 한 기적의 현장에 있던 군중은

예수님의 일행을 찾아 나섭니다.

군중이 기억하는 것은 빵의 기적으로

자신들의 육신의 허기가 채워졌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뽀야가

어떤 신부님이나 박승웅 바오로 형제,

또는 명절날 집에 찾아오는 저의 형제들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똑 같지 않을까요?

 

뽀야는 이런 분들을 만나는 날은

마음껏 포식을 할 수 있는 날이었거든요.

그들이 뽀야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뽀야는 알지 못했고 알 필요도 없지요.

단지 만나면 먹을 것이 주어진다는 기쁨만이

뽀야의 관심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기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빵의 기적은 영적 선물의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영적 양식을 주심으로써

영혼을 배부르게 해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께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당신을 믿으면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으면 더 이상의

배고픔과 갈증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의 원의를

충만히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배고픔과 갈증은

세상이 주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양식에만 맛들이다 보면

영적인 양식에 대한 입맛을 잃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자신의 삶에 받아들이는 사람은

영적인 배고픔과 갈증이 해소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을 우리에게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소화시키도록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참된 인간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을 받아들이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세상이 주는 달콤한 식단을

끊지는 못하더라도

절제할 줄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생명의 빵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육체는 활기찬데 영혼은 굶주려 있다면

삶의 균형은 무너질 것입니다.

 

예전보다 훨씬 삶은 편해지고 풍요로워 졌는데

범죄는 더윽 더 기승을 부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영혼에게 생명력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적 음식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왜 살고 있는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답변이 주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안에 답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기에 ‘생명의 빵’이라 하셨습니다.

신앙인은 영성체를 통해

생명의 빵을 체험합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영성체인지요!

 

오늘도 정상적인 미사가 집전되지 못해

공소예절이나 방송으로 미사를 보고

제한적으로 지정한 시간에 상당에 가면

영성체를 모실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루 빨리 마스크가 없는 세상으로

돌아오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병고나, 가정사 또는 어떤 이유로든

고통을 받고 있는 분들에게

그리고 미얀마의 국민들을 위해

주님의 자비를 청합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에고...

쓰다가 보니 오늘 묵상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