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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1년07월16일)

주님의 착한 종 2021. 7. 15. 23:49

오늘의 묵상(2021년07월16일)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멍에가 무엇인가요?

가수 김수희의 노래 멍에는 아신다고요?

ㅎㅎ

 

고향이 농촌인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면 금방 아시겠지만

멍에란 가축 특히 소나 말의 어깨에 씌워

쟁기를 뒤에 달아 끌기 위해

나무로 구부러지게 만든 기구를 말합니다.

 

국어사전에서 ‘멍에를 메다.’라는 말은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도록 얽매이다.’

라는 뜻이라고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멍에는

유다교에서의 가르침,

특히 하느님의 계명에 담겨 있는

가르침을 나타내는 표상입니다.

 

소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방향을 잡아 주는 역할을

멍에가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 쉽게 설명을 해볼까요?

운전할 때는 도로에 차선이 그려져 있어야

 자동차들이 엉키지 않고

잘 주행할 수 있겠지요?

 

자, 멍에는 이쯤 해두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고

바리사이들과 시비가 붙었습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다가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는데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제자들을 비난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안식일 규정에 따르면,

밀 이삭을 딴 것은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추수 행위가 되고,

손으로 이삭을 비비는 행위는

곡식을 타작하는 것과 같답니다.

 

바리사이들은 제자들이 이렇게

추수를 하고 타작을 했으니

율법의 규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지나친 율법주의로 말미암아

율법의 근본정신을 소홀히 여기는

이들의 태도를 나무라십니다.

 

그렇다면 안식일 법의 근본정신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왜 하필 안식일 법의 근본정신이 자비인지는,

안식일의 기원을 전하는 ‘천지 창조’의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렛날에 쉬십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굳이

휴식이 필요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휴식하신 것을

창세기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을 축복하시고자

쉬신 것임을 보여 줍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은

유배 생활이나 노예 생활 때문에

쉬고 싶어도 강제적으로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안식일만이라도 쉬면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간을 갖자는 데에서

생겨난 것이 안식일 법입니다.

 

곧 이 법은 약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에 대한

자비의 법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고생스럽게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은

다름아닌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씌워진 멍에는 바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런 규정들이 사람들을 얽어 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들이 이천 년 전

유다인들에게만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순절에 금육을 철저하게 지킨답시고

고기는 입에 대지 않는 대신에

값비싼 생선회를 먹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고기를 먹지 않았으니

금육은 잘 지켰는지는 몰라도

금육의 의미는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멍에, 곧 예수님의 가르침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도록

우리를 훈계합니다.

 

자동차가 차선을 벗어나거나 열차가 레일을 벗어나면

결코 제대로 달릴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잘 맞는 편한 멍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창조된 목적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일러 주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오늘도 기쁘게 살아가야만 하겠습니다.

 

어제 복음을 묵상하면서도 보았듯이

사랑’은 모든 법의 근본정신입니다.

우리도 바리사이들처럼

법을 지키고 있는 지에만 집착한 나머지

사랑의 마음을 담은 삶에

소홀한 것은 아닌지 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