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한국 천주교회는 사도좌와 뜻을 같이하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이민들에게 더욱 깊은 사목적 관심을 기울이고자 2001년부터 ‘이민의 날’을
지내고 있다. (주교회의 2000년 춘계
정기 총회). 보편 교회가
2019년부터 ‘세계 이민의 날’을 1월(주님 공현 대축일 이후 주일)에서 9월 마지막 주일로 이동함에 따라, 우리나라도 이에 맞추어 ‘이민의 날’을 지내기로 하였다.
(주교회의 2019년 춘계
정기 총회). 입당송 다니 3,29.30.31.43.42
참조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크신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고 끊임없이 은총을 내려 주시어 약속하신 그곳으로 저희가 달려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말씀의 초대 (제1독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주님께서 공평하다고 여기시는
인생길을 전해 준다. 의인이라 할지라도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면 죽을 것이며, 악인이라도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살 것이다. (제2독서) 바오로 사도는 무슨 일이든 이기심과 허영심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하라고 당부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간직해야 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신 마음이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드시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참되게 실천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하신다. 그리고 의로운 길에 대한 가르침을 믿은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신다. <악인이라도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면,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화답송 시편
25(24),4-5.6-7.8-9(◎ 6ㄴ 참조) 제2독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1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눈다면,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1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눈다면, 복음환호송 요한 10,27
참조 복음 <맏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신경> 보편지향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물기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가 드리는 예물을 받아들이시어 이 제사로 저희에게 온갖 복을 내려 주소서. 영성체송 시편
119(118),49-50 참조 영성체 후 묵상 <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
신비로 저희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시어 저희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전하며 그 수난에 참여하고 그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꽤나 불편합니다. 나보다 못한 이들, 죄인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꽤나 불편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잘한다고 생각해서 한 모든 일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불편하고, 분명히 잘못된 것인데 용인되는 듯하여 불편하고, 그래서 복음의 예수님이 얄밉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왜 불편한가를 되묻는 것은 어떨까요? 무슨 기준으로,
어떤 상식으로 우리의 불편함을 파헤쳐 볼 수 있을까요? 대개 불편함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태도에서
비롯한다고 봅니다. 둘째 아들을 찬찬히 묵상해 봅니다. 그는 포도밭 일을 하기 싫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들 된 이가 아버지의 청을 거절하기도 힘들었겠지요. 일은
하기 싫으나 아들로서의 본분을 다하고자 둘째 아들은 포도밭에 가겠노라 답하였을 것입니다. 둘째 아들을 탓할 이유는 없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네 삶의 모습이니까요. 하기 싫은 일이 더 많고, 그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웬만하면 쉽고 하고
싶은 일만 하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니까요. ‘예.’도 아니고 ‘아니요.’도 아닌, 서로
얼굴 붉히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말과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자세, 이런 자세가 오늘 복음의 예수님보다
더 얄밉지 않으신가요? 세리와 창녀들도 솔직하였습니다. 시대의 죄인으로서 솔직한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는 이들이었지요. 믿음도 그렇습니다. 긴가민가 뭉그적거리는 자세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솔직히 답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저는 믿음이 약합니다. 너무 약하여 포도밭까지 걸어가기가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빌고 빌 뿐입니다.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사, 저를 위하여 빌어 주십사 신앙 공동체에 함께하시는 여러분에게 부탁드릴 뿐입니다. 세리와 죄인 취급받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 뿐입니다.
이 못난 사람도 하느님 나라에 가고픈 마음이 있으니까요.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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