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2020년08월23일 주일 : 성인 - 리마의 성녀 로사 동정

주님의 착한 종 2020. 8. 22. 16:08

St Rose of Lima-MURILLO,Bartolome Esteban.

Oil on canvas.Museo Lazaro Galdiano,Madrid

 

 

축일: 823

리마의 성녀 로사 동정

Saint ROSE of Lima
Santa Rosa da Lima Vergine 
(Lima, Perù, 1586 - 24 agosto 1617 )
Born : 1586 at Lima, Peru as Isabel 
Died : 24 August 1617 at Lima, Peru 
Beatified :15 April 1668 by Pope Clement IX 
Canonized :2 April 1671 by Pope Clement X 
Rosa = dal nome del fiore(=rose )
Order of Preachers (Dominicans)

 


1492년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룸부스에게 그 지방의 신기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스페인 사람들 중에는 신대륙이 마치 무진한 보물로 충만되어 있는 옥토인 줄 생각하고

제각기 그 보물을 점유하고자 고국을 떠난 이가 적지 않았다.

 

특히 그로부터 40년이 경과한 후페루를 점령한 스페인 사람들은

토인들을 학대하며 심지어는 그들의 생명까지 빼앗는 심한 폭행까지 자행하여

선교사들은 그들의 비그리스도교적 행위를 경고했으나 아무 효과가 없었다.

그러니 이러한 대죄를 충분히 보속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이 결코 이 나라에 내려올 수 없게 되었으나,

다행히 나약한 여성으로영웅적 희생을 바침으로써 주님의 분노를 풀고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위에 건설할 기초를 닦은 분이 있었는데,이분이 바로 로사 동정녀다.

 

그녀는 1586년 페루의 수도인 리마에서 태어났다.

세례명은 이사벨라(작은 엘리사벳)였는데,

용모가 매우 아름다워 가히 장미꽃의 아름다움을 연상시키므로이름을 로사(장미꽃)라 부르게 되었다.

 

그의 양친은 마음씨가 훌륭한 분들로 처음에는 상당한 재산도 있었으나

운이 나빠서 모든 것을 다 잃어 가난한 가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조금도 동요됨이 없었고오히려 하느님께 더욱 굳은 신뢰심을 갖게 되었다.

그들의 10여명 자녀 중에 로사는 장녀였다.

 

로사는 철이 들기 시작할 때부터 하느님의 기이한 섭리로 보속희생박애(博愛)등의

숭고한 정신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았다.

그것은 즉 아직 어린이로서 몸에 대수술을 받았을 때에도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조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든지,

또 매주 3일간은 소량의 빵과 물로써 지내며편안한 침대 대신 판자 위에서 자는 것 등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커감에 따라 더욱 뚜렷이 나타났으며,

여러 가지로 고행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그대로 실행했다.

그녀는 자기의 미모가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케 할까 염려하여 후추가루로 얼굴을 비볐으며,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잘라서 약간이라도 그녀의 미를 손상시키려 애을 썼다.

 

뜰 한구석에는 작은 방을 꾸미고 그 안에서 몇 시간이고 기도와 묵상으로 지내며

죄인들에게 자비를 내려 주시기를 하느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나머지 몇시간은 자수나 기타 편물에 소비하고수면 시간은 불과 두세 시간 정도였었는데,

실로 이러한 엄격한 생활은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한 것으로,

주님의 특별한 도움이 아니고서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위였다.

실제로 하느님께서 혹은 성인들이 나타나서 그녀를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준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육신의 고행에 힘쓰던 그녀는 가끔 하느님께 버림을 받은 것과 같은 고적함과

가지가지 영신적 고민의 시련도 당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게세마니 동산에서 예수께서 받으신 고통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신심이 두터운 부모들도

그녀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행을 그만두고 빨리 결혼하라고 재촉했고,

그말을 듣지 않는다 하여 엄히 책망하며 때로는 심한 매질까지 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고통을 아무에게도 하소연할 곳이 없는 로사는

조금도 안색을 변하지 않고 더욱 부지런히 가정 일을 보살피면서,

남몰래 조용한 곳에서 부모를 위해 주님의 은혜를 청했다.

 

그리고 하느님께 맺은 정결 서원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20세때 성 도미니코 제3회에 들어가

부모의 슬하에 있으면서도 가장 완전한 수도 생활을 하고 영혼 구원을 위해 자신을 전부 봉헌했다.

 

그녀의 방은 비좁았지만 그녀의 열성을 기뻐하시는 하느님의 은혜로

마치 지상 낙원과 같이 되어그 주위에는 아름다운 장미꽃들이 만발했고,

새들은 두려운 기색도 없이 마음대로 방안에

들락날락하고 재잘거리며 기도하는 성녀와 같이 창조주를 찬미했다.

 

극기 생황에 권태를 낼 줄 모르는 로사는 주님의 모습을 따르고자

편태를 하고 가시관을 만들어서 자기 몸을 괴롭히며 석회 가루로 손을 태워

그 아픔을 하느님께 바치기도 했는데,

만약 지도 신부의 명령이 없었다면 얼마나 더 무서운 극기와 희생을 했을지 모른다.

 

이 같은 수도 생활은 하느님의 풍부한 은총을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번의 탈혼 중에 영신계의 진리를 맛보았으나,

겸손한 마음으로 타인에게는 일절 비치지 않고

지도 신부의 명령에 순명하는 뜻으로 그 일부를 밝혀 줄 뿐이었다.

 

매일 같은 준엄한 고행의 결과 로사는 건강을 잃고 매우 아픈 병고를 당했다.

전신을 태우는 듯한 고통은 아무리 치료를 받아도아무리 약을 써 보아도 낫지 않았다.

 

이런 고통울 기쁘게 생각하고 세상 사람들의 죄의 보속을 위해 주님께 바치기를 3년간,

최후가 가까이옴을 안 로사는 골고타의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고 3일째 되는 날,

예수의 이름을 세 번 부르고 조용히 눈을 감아 세상을 떠났다때는 1617 8 24일이었다.

그녀의 탄복할만한 희생은 천국에서 풍성한 상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녀는 아메리카의 제1의 성녀요남미(南美)의 꽃으로 찬양 받았으며,

그녀의 전구로 많은 기적도 일어났으므로 1617년에는 성인품에 오르게 되었다